메인화면으로
런던이 너무 강한 나라, 영국은 왜 지방의 힘을 되살리려 하는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런던이 너무 강한 나라, 영국은 왜 지방의 힘을 되살리려 하는가?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한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가 오히려 그 나라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까?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이 질문이 영국을 보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도시이자 문화·교육·관광의 중심이다. 웨스트민스터에는 의회가 있고, 와이트홀에는 중앙정부 부처가 모여 있으며, 시티 오브 런던은 세계 금융의 핵심 거점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까지 시야를 넓히면 대학과 연구기관, 자본과 인재가 영국 남동부의 비교적 좁은 공간에 놀라울 만큼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런던이 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런던과 나머지 영국 사이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졌다는 데 있다. 2023년 런던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35,361파운드, 잉글랜드 북동부는 19,977파운드였다. 웨스트민스터와 시티 오브 런던을 합친 지역은 79,555파운드로 영국 평균의 세 배를 웃돌았다. 잉글랜드에서 1인당 가처분소득이 가장 낮은 10개 지역은 모두 미들랜즈와 북부에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은 언제부터 이런 구조를 갖게 됐을까? 오늘날의 격차가 산업화 이후 줄곧 이어져 왔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당시 영국에는 오히려 지금과 상당히 다른 경제지도가 존재했다. 이 차이를 살펴보면 지역격차를 고정된 운명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런던의 정치와 행정, 북부의 공장

런던에 정치와 행정, 상업과 금융이 집중되는 현상은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 로마 지배기부터 런던은 템스강을 낀 항구도시이자 행정·상업의 주요 거점이었다. 중세 이후에는 왕권과 행정기관, 사법기관, 의회가 런던과 웨스트민스터에 집중됐다. 웨스트민스터가 정치의 공간으로, 시티 오브 런던이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정치·행정·경제 기능이 한 도시에 중첩됐다.

제국의 팽창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했다. 세계 곳곳의 상품과 자본, 정보가 런던으로 흘러들었고 제국을 관리하는 정부조직과 금융기관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런던은 한 나라의 수도를 넘어 영제국의 행정 본부이자 세계 교역망의 거대한 결절점이 됐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또 하나의 영국이 등장했다. 맨체스터의 면직물, 리버풀의 항만과 무역, 리즈와 브래드퍼드의 모직물, 셰필드의 철강, 뉴카슬과 더럼의 석탄은 영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런던이 국가와 제국의 머리였다면 산업도시들은 경제적 몸통이었다. 19세기 영국의 국력을 런던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산업화가 번영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북부와 미들랜즈의 산업도시들은 막대한 부와 함께 과밀주거, 공해, 빈곤과 열악한 노동조건도 만들어냈다. 훗날 두 차례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1845년 소설 <시빌(Sybil)>에서 부자와 빈자가 마치 서로 다른 나라 사람처럼 살아가는 영국을 '두 국민(two nations)'으로 묘사했다. 산업화가 만든 사회적 분열을 압축한 유명한 표현이었다.

ⓒ연합뉴스

'세계의 공장'에서 침체지역으로

그런데 20세기가 되자 상황이 역전됐다. 영국 산업을 떠받치던 바로 그 지역들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조선·철강·면직물 같은 전통 산업은 국제경쟁과 수요 변화 속에서 흔들렸다. 산업이 지역적으로 집중돼 있었던 만큼 충격도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1930년대 남부 웨일스, 잉글랜드 북동부, 스코틀랜드 중부에서는 대량실업이 일상화됐다. 1936년 북동부의 조선도시 재로(Jarrow)에서 실업자 약 200명이 일자리를 요구하며 런던까지 걸어간 '재로 행진'은 이 시대를 상징한다. 2차 대전 직전 재로에서는 노동자의 70퍼센트 이상이 실업 상태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전후 영국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와 완전고용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과 공공기관을 런던 밖으로 옮기고 산업시설과 일자리를 쇠퇴지역에 유치하려 했다. 쇠퇴지역의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도록 두기보다, 그들이 사는 곳에 고용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기관과 일자리를 물리적으로 이전하는 것과 한 지역이 스스로 기업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공장과 공공기관을 옮기면 일정한 수준의 일자리와 소비는 생겨난다. 그렇다고 대학과 기업, 숙련노동, 주거와 문화, 교통이 맞물리는 자생적인 성장구조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사이 경제 자체가 변하고 있었다. 제조업 고용은 장기적으로 감소했고 1970년대 이후 탈산업화가 가속화됐다. 1980년대 새처(Margaret Thatcher, '대처'라는 관용 표기는 발음을 잘못 표기한 것) 정부는 시장화와 산업 구조조정을 급진적으로 추진했다. 영국 제조업의 쇠퇴를 새처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 쇠퇴는 이미 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세계경제의 변화 역시 결정적이었다. 다만 그 사회적 비용이 북부와 미들랜즈의 산업지역에 유난히 집중된 것은 분명하다.

공장은 쇠퇴하고 시티는 세계로 갔다

거의 같은 시기 런던에서는 정반대의 변화가 진행됐다. 1986년 금융시장 규제개혁, 이른바 '빅뱅(Big Bang)'은 그 전환을 상징했다. 런던 금융시장의 오래된 거래관행과 규제가 대폭 개편되면서 국제 금융회사들이 빠르게 진입했다. 이후 금융, 정보통신, 전문서비스, 고등교육, 문화산업 같은 지식집약적 산업이 성장하면서 런던은 탈산업화의 패자가 아니라 최대 수혜자로 부상했다.

여기에는 자기강화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좋은 일자리가 인재를 끌어들이고, 풍부한 인재는 다시 기업의 입지를 유도한다. 기업과 고소득자가 집중되면 문화와 전문서비스가 발전하고, 이러한 생활환경과 서비스의 축적은 더 많은 사람과 투자를 불러들인다.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이런 현상을 규모의 경제와 시장 규모, 노동력의 집적이 서로를 강화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한번 형성된 경제적 우위는 단순히 유지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많은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며 스스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성장은 이러한 집적의 효과가 장기간 누적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역균형 차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수도에 모인 기관 몇 개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기업 하나, 연구소 하나, 대학 하나를 유치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이들이 서로 연결되고, 인재가 정착하고, 다시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개별 시설의 입지보다 그 시설들이 지역 안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영국의 지역격차가 단순한 소득격차를 넘어 교육, 교통, 건강, 기대수명, 주택가격과 정치적 영향력이 겹쳐지는 '공간적 불평등(spatial inequality)'으로 발전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영국의 지역 생산성과 경제지리를 연구해온 매캔(Philip McCann)은 이런 불균형을 개별 지방도시의 실패라기보다 국가 전체의 공간구조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장의 성과와 기회가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 강한 중앙집권적 국가구조가 겹쳐졌다.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1990년대 말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에 의회와 행정부를 설치하거나 복원하며 대대적인 권력이양(devolution)을 추진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달랐다. 잉글랜드 전체를 대표하는 별도의 의회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주요 재정과 정책은 계속 웨스트민스터의 중앙 의회와 와이트홀에서 결정됐다. 지방의 문제를 지방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지방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중앙정부가 결정하는 역설이 생겼다.

브렉시트는 지역의 반란이었나

이 오랜 균열이 가장 극적으로 정치화된 사건이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였다. 물론 이를 '가난한 북부가 부유한 런던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이라고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북부에도 유럽연합 잔류표가 많았고 런던과 남동부에도 탈퇴표가 상당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웨일스의 투표 양상도 달랐다.

그럼에도 브렉시트가 지역 문제를 영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2019년 총선에서는 수십 년 동안 노동당을 지지해온 잉글랜드 북부와 미들랜즈의 이른바 '레드 월(Red Wall)' 지역 상당수가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이들에게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이라는 제도 하나에 관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산업 쇠퇴 이후 누적된 박탈감, 정치·경제 엘리트에 대한 불신, 이민과 정체성 문제가 서로 포개져 있었다.

영국의 포퓰리즘과 선거정치를 연구해온 구드윈(Matthew Goodwin)과 포드(Robert Ford)는 이런 변화를 계층, 교육 수준, 지역 정체성의 변화가 겹친 결과로 분석한 바 있다. 레드 월의 변심을 단순한 경제적 불만이나 문화적 반발 가운데 하나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의 정치적 선택을 이해하려면 일자리와 소득의 변화뿐 아니라, 주민들이 자신과 공동체의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북부 전체를 하나의 '버림받은 지역'으로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산업도시와 대학도시, 항만도시와 관광도시, 대도시와 소도시는 처지도 다르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다르다. 잉글랜드의 정체성과 지역정치를 연구해온 데넘(John Denham)도 '뒤처진(left behind) 지역'이라는 단순화된 하나의 범주가 지역 내부의 차이를 가릴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북부를 하나의 피해지역처럼 묶어버리면 각 도시가 가진 산업적·사회적 자산과 서로 다른 문제를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지역균형이 모든 지방에 똑같은 처방을 적용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문제는 브렉시트 이전부터 정치권도 인식하고 있었다. 2014년 보수당 재무장관 오즈번(George Osborne)은 '북부 파워하우스(Northern Powerhouse)'를 제시했다. 맨체스터와 리즈, 리버풀, 셰필드 등 북부 도시들을 교통·과학·도시자치로 연결해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핵심은 런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북부가 다시 자체적인 경제적 힘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 제안에서 주목할 점은 개별 지방도시의 성장뿐 아니라 도시 사이의 연결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한 도시에 살면서 다른 도시에서 일할 수도 있으며, 대학과 기업, 공항과 병원도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이용한다. 지역균형의 단위가 반드시 하나의 시나 군일 이유는 없다. 여러 도시가 하나의 생활권과 경제권으로 연결될 때 수도와 경쟁할 만한 규모와 다양성을 갖출 수 있다.

사는 곳이 운명이 되는 나라

브렉시트 이후 존슨(Boris Johnson) 정부는 이 문제를 '레벨링 업(Levelling Up)'이라는 구호로 전면화했다. 존슨은 2021년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지리적 위치가 결국 운명이 되고 있다(For too many people, geography turns out to be destiny)"고 진단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사느냐가 교육과 소득, 건강과 고용의 기회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레벨링 업은 철도와 도로, 연구개발, 도시재생, 교육과 분권을 통해 지역격차를 줄이겠다는 야심찬 정책이었다. 그러나 한계도 곧 드러났다. 지방에 각종 기금을 배분하면서도 중요한 재정권한은 중앙정부가 계속 쥐고 있었다.

특히 지역별로 사업계획을 제출하게 하고 중앙이 경쟁을 통해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해버렸다. 지방정부가 장기적인 지역전략보다 다음 공모사업에 맞는 계획을 만드는 데 힘을 쓰고, 정책의 시간도 지역경제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예산주기에 맞춰지는 문제가 생겼다.

영국 지방정부를 연구해온 윌슨과 지방 거버넌스·분권 연구로 잘 알려진 스토커(Gerry Stoker) 역시 영국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재정과 정책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이양을 선언해도 재정과 주요 정책결정권이 중앙에 남아 있다면 실질적인 자율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 주어진 사업의 수와 지역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위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영국의 지역정책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지방으로 돈을 보내는 것만으로 런던 집중을 해결할 수 있는가? 돈을 어디에 쓰고, 어떤 산업을 키우며, 교통과 주택을 어떻게 설계할지를 궁극적으로 와이트홀이 결정한다면 그것은 분권이라기보다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지역개발정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

런던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옮긴다

2024년 노동당 집권 이후에도 지역 불균형과 분권은 핵심 의제로 남았다. 스타머(Keir Starmer) 정부가 분권의 방향을 제시했고, 2026년에 맨체스터 광역권 시장 출신인 버넘(Andy Burnham)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강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됐다. 광역권 차원에서 정책을 조정해온 경험이 국가 차원의 권한 재배분 논의와 맞닿게 된 것이다.

버넘이 맨체스터에서 추진해온 접근법의 특징은 단순히 지방에 사업 하나를 더 주는 데 있지 않았다. 교통·주택·보건·산업정책을 각각 중앙부처의 개별 사업으로 다루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고 이동하는 광역권 안에서 함께 설계하려는 데 있었다. 생활권은 하나인데 정책은 여러 중앙부처로 나뉘어 있다면 지역경제를 통합적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기업을 유치해도 교통과 주택이 따라오지 않고, 산업을 육성해도 대학과 인재정책이 따로 움직인다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26년에는 잉글랜드의 광역권에 교통·주택·계획·경제개발 등의 권한을 확대하는 새로운 분권체계도 법제화됐다. 이는 1990년대 블레어 정부의 권력이양과 성격이 다르다. 당시 개혁이 주로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와 중앙정부의 관계를 재조정했다면, 최근의 실험은 잉글랜드 내부의 권력지도를 다시 그리는 데 초점이 있다.

그러나 분권에도 역설이 있다. 권한을 지방으로 넘긴다고 지역격차가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 있는 대학과 기업, 충분한 세원과 행정역량을 가진 지역은 새 권한을 훨씬 잘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일수록 오히려 새 권한을 활용할 기반이 부족할 수도 있다. 잘못된 분권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는 대신 강한 지방과 약한 지방 사이의 격차를 키울 수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문제는 중앙집권이냐 분권이냐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중앙이 책임지고 무엇을 지방이 결정할 것인지, 권한과 재정과 책임을 어떻게 함께 배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지역마다 다양한 출발조건을 보정하는 중앙의 역할과 지역의 선택권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지역정책은 주로 "뒤처진 지방에 무엇을 줄 것인가"를 물었다. 최근 영국의 분권 논의는 점차 "그 지역의 미래를 왜 다른 곳에서 결정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두 질문은 닮았지만 전혀 다르다. 앞의 질문에서 지방은 지원의 대상이다. 뒤의 질문에서 지방은 선택과 책임의 주체다.

런던이 문제가 아니라, 런던만 강한 것이 문제다

처음에 던진 질문, 곧 한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가 그 나라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가에 대해 영국의 역사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는다. 런던의 성공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런던만큼 강한 다른 선택지가 사라져버린 것이 문제였다.

19세기 영국에는 런던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경제와 연결된 도시들이 있었다. 맨체스터에는 제조업이, 리버풀에는 항만과 무역이, 셰필드에는 철강이, 북동부에는 석탄과 조선이 있었다. 런던은 여러 차원에서 압도적으로 수도의 지위를 누렸지만 영국 경제의 유일한 성장축은 아니었다. 20세기의 탈산업화가 바꾼 것은 지방의 소득만이 아니었다. 여러 지역이 세계경제와 직접 연결되던 통로가 약해졌고, 새롭게 성장한 금융과 지식산업은 런던과 남동부에 훨씬 강하게 집중됐다. 경제적 거리는 점차 정치적·심리적 거리로 번져갔다.

이렇게 보면 영국이 지금 풀려는 문제도 보다 명확해진다. 수도에 있는 것을 얼마만큼 지방으로 옮길 것인가, 런던의 크기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만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닿기 어렵다.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지역을 다시 여러 곳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더 어려운 질문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역설이 따른다. 지역 간 출발조건의 격차를 줄이고 기반을 갖추려면 중앙정부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 스스로 성장경로를 선택하게 하려면 중앙정부는 일정한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균형을 만드는 중앙의 역할과 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디까지 중앙이 책임지고, 어느 지점부터 지방이 선택하게 할 것인가? 영국도 아직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한 세기에 가까운 시행착오는 지역균형에 간단한 처방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국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완성된 모범답안이라기보다 질문을 바꾸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수도에 무엇이 너무 많이 모여 있는가를 묻는 데서 나아가, 수도 이외의 장소에서도 성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야 한다. 정치와 행정, 기업과 대학, 문화와 인재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라라면 결국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영국이 지방의 힘을 되살리려 하는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다.

영국의 경험이 한국에 남기는 질문

한국도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고 혁신도시를 조성해왔다. 최근에는 여러 도시를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는 초광역권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관의 주소를 바꾸거나 새로운 권역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지역 대학의 인재가 그곳에서 일하고 정착할 여건까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험에서 한국이 참고할 대목은 지역의 산업·대학·교통·주거를 실제로 맞물리게 하는 일이다. 지역 대학에서 배운 인재가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이웃 도시로 통근할 수 있으며, 그곳에 계속 살 수 있어야 하나의 경제·생활권이 형성된다. 중앙부처의 사업을 따로따로 내려보내는 방식으로는 이런 연결을 만들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에 동일한 수준의 권한과 예산을 나눠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중앙정부는 출발조건이 불리한 지역의 재정과 기반을 보완하고, 지방에는 저마다의 성장경로를 선택할 권한을 줘야 한다. 영국의 시행착오에서 한국이 참고할 것은 개별 제도보다 중앙의 지원과 지방의 선택권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