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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 협상하자면서 계속 지체시키는 日…'약탈 문화재' 보호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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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 협상하자면서 계속 지체시키는 日…'약탈 문화재' 보호하겠다고?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번외편 ⑤ 문화재 반환에 반대한 문화재보호위원회 (2)

전문가회의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문화재보호위원회

제5차 회담 개최 후 한국 측은 제2회 문화재소위원회(1961년 2월 1일)에서 문화재 전문가 간의 전문적인 논의를 통해 반출 문화재의 실태를 파악하자고 제안했고, 일본 측도 이에 동의했다.

한일 양국은 3월 7일에 제1회 전문가회의를 개최한다. 황수영 전문위원과 문화재보호위원회의 마쓰시타 다카아키(松下隆章) 미술공예과장, 사이토 다다시(斉藤忠) 문화재조사관이 참가했다. 5월 8일에 열린 제2회 전문가회의에는 이홍직 전문위원이 새롭게 참가했다. 제5차 회담 기간 중 두 차례 열린 전문가회의에서 한일 양국은 고대 분묘 출토 유물, 사찰의 석조물, 고서적 및 '문화재 반환의 7항목'의 일부를 논의했다.

제5차 회담에서 전문가회의가 열리기는 했지만, 문화재보호위원회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는지 황수영 전문위원은 제1회 전문가회의에서 "현안 중의 문화재 문제는 전문가에 의한 솔직하고 실질적인 토의가 있어야 함은 귀측에서도 이의가 없을 것인바, 과거에 귀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앞으로 주 일회 이상의 회합을 갖고 쌍방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기를 바란다"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 황수영 전문위원과 유태하 수석대표가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전문가회의 참가 태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모습이 담긴 외교문서. ⓒ 한일회담 관련 한국외교문서

황수영 의원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전문가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문화재보호위원회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태하 수석대표는 4월 25일에 사와다 렌조(沢⽥廉三) 수석대표를 방문하여 "문화재 문제는 문부성 측이 도무지 심의에 잘 응하지 않고 있으며, 3월 중순에 약속한 대로 빨리 1명 또는 2명의 전문가를 지정하여 우리 측 전문가와 접촉케 하여주기 바란다"며 지지부진한 전문가회의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후 13일 지나고 제2회 전문가회의가 열렸는데, 이주일이 다 되어 열린 것을 보면 문화재보호위원회가 여전히 전문가회의 참가를 꺼려했고, 이로 인해 제5차 회담에서 전문가회의가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6차 회담에서도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한국 측은 제5차 회담 당시 전문가회의가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한 이유가 문화재보호위원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번 회담 시의 이야기를 하겠는데, 도무지 회합의 개최가 잘 안되어서 곤란했다. 그때 고충을 말한 일도 있지만 장소의 선택이 잘 안되고 일단 모이자고 하면 물론 바쁘겠지만 일이 바빠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고 모여도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해달라느니 어떠느니 말하였다.

전문가회의는 제6차 회담에서 더 많이 열렸고 여러 문화재를 논의했지만, 한국 측은 아래와 같이 만족할 만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전문가회의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보고하여 두겠다. 그동안 전후 5회 개최하였는데, 여기서는 반환이니 하는 이야기는 빼고 소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더 구체적으로 사실 확인을 해 갔고 조사 의뢰도 하였는데, 일본 측에서 우리가 만족할 만한 회답이나 조사가 반드시 되었다고 볼 수 없는 유감도 있었으나, 하여간 계속해서 사실 확인을 하여 왔다.

한국 측은 문화재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문화재의 반출 경위·소유자·소재지 등 전문적인 사안을 논의하는 전문가회의를 개최하여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하고자 했다. 황수영 전문의원은 일찌감치 제4차 회담부터 문화재 반환 교섭에 직접 참가해 왔고, 이홍직 전문위원은 제5차 회담부터 참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문화재 반환 교섭 참가를 꺼렸고, 전문가회의에도 되도록 참가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로 인해 제5차 회담에서 전문가회의는 단 두 개최되었을 뿐이다. 제6차 회담에서는 전문가회의가 여섯 차례 열렸지만, 한국 측은 '만족할 만한 회답'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특별위원회를 결렬시킨 문화재보호위원회

문화재보호위원회는 한일 양국이 합의한 특별위원회에 아예 불참하며 특별위원회를 결렬시키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특별위원회는 한국 측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한 회의로 공식 회의인 문화재소위원회의 권한을 가지면서 전문가들이 논의한 내용을 결정하는 회의였다(칼럼 제1부 ⑦ 참조).

한일 양국은 문화재소위원회 대표 간 비공식회의(1962년 2월 1일)에서 특별위원회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 측의 기대와는 달리 특별위원회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문화재보호위원회가 계속 참여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 특별위원회 개최와 관련하여 곤란함을 토로하고 있는 외무성이 모습이 담긴 외교문서. ⓒ 한일회담 관련 한국외교문서

제6회 문화재소위원회(1962년 2월 16일)에서 한국 측은 좀처럼 진전이 없는 특별위원회 개최에 대해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참가를 요청한다. 일본 측은 문화재보호위원회가 한국 측의 문화재 목록을 먼저 검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아래와 같이 답변한다.

솔직히 말해서, 문부성 측은 아직도 의혹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다 싶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니, 우선 문부성으로 하여금 목록을 검토케하면, 오히려 앞으로 진전을 볼 수 있을런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생각은 가지고 있으나, 문부성 측에서 움직여주지를 않고 있어 입장이 난처하다.

한국 측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외무성도 '억지로 끌다 싶이하여', '입장이 난처하다'고 말한 바와 같이 한국 측과 문화재보호위원회 사이에서 곤란한 입장이었다. 외무성은 문화재 반환 교섭을 외교 문제로서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한국 측의 요구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문화재보호위원회가 전문가회의나 특별위원회에 참가하도록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문화재 반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외무성을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무성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측이 불만을 토로하고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참가를 재촉하니 외무성은 난처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국 측은 회의가 끝날 무렵 "그러면 우리 측에서 먼저 목록을 수교하면 다음 회의부터는 귀측의 전문가가 회의에 출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고, 일본 측은 "될 수 있는 한, 출석하도록 노력은 하겠으나, 보장은 할 수 없다"고 답했다.

▲ 이세키 유지로 아시아국장을 직접 찾아가 불만을 토로하는 한국 측의 모습이 담기 외교문서. ⓒ 한일회담 관련 일본외교문서

한국 측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2월 22일과 23일에 걸쳐 두 차례 이세키 유지로(伊関佑二郎) 아시아 국장을 찾아가 문화재소위원회 진행과 문화재 목록 제출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일본 측의 연락은 여전히 없었다. 이에 한국 측은 2월 26일에 모리타 요시오(森⽥芳夫) 북동아시아과 사무관을 찾아 "문부성(문화재보호위원회: 필자 주)은 왜 이런 것인가. 이럴 때 문부성보다 오히려 이세키씨와 얘기가 더 잘 되고 적극적이다"라고 문화재보호위원회를 비판한 후 문화재소위원회를 열어 문화재 목록을 제출하고 이를 설명하겠다고 전했다.

한국 측의 요청대로 이틀 후 제7회 문화재소위원회가 열렸다. 회의가 시작되자 일본 측은 문화재보호위원회에 한국 측의 의견을 전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만한 회답이 없다"고 전했다. 한국 측은 '반환청구 한국문화재 목록'을 전달한 후 이를 간단하게 설명했고, 일본 측은 "본 목록은 참고 자료로 받아서 문부성으로 하여금 검토케 하겠으며, 다음 회의에 전문가가 출석하도록 노력하여 보겠다"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날 즈음 한국 측은 저녁 식사 자리에 일본 측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고, 일본 측도 문화재보호위원회에 연락해 보겠다고 답했다.

한국 측은 3월 2일에 일본 측을 초대하여 만찬회를 열었다. 하지만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만찬에 참석할 의사가 없다고 거절"했다. 이에 한국 측은 문화재보호위원회가 참가한 특별위원회를 개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고, 결국 특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재보호위원회는 문화재 반환에 반대하는 입장을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었다. 한국 측과 교섭하는 외무성은 문화재보호위원회를 무시할 수 없었다.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전문위원들은 당시 일본의 정계·재계·학계의 유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무성은 문화재보호위원회를 문화재 반환 교섭에 참가시키기 위해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위원회는 전문가회의 참가를 꺼려했고, 참가하더라도 한국 측이 만족할 만한 대답이나 조사를 하지 않았다. 특별위원회에는 아예 참가조차 하지 않아 이를 결렬시키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문화재보호위원회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는 외무성과의 내부 논의뿐만 아니라 한국 측과의 교섭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을 지체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 참고문헌

한일회담 관련 한국정부 외교문서 및 일본외교문서

류미나, '한일회담 외교문서'로 본 한·일 간 문화재 반환 교섭', <일본역사연구> 제30집, 2009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엄태봉 강원대학교 교수

엄태봉 교수는 문화재 반환 문제, 강제동원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인식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한일 관계 전문가다. 역사인식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교과서 문제는 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일본 '영토·주권 전시관'의 영토 문제 관련 홍보·전시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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