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국제여성의 날입니다. 2026년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여전히 여성·성소수자 등 많은 소수자들은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여성파업은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앞당기고 성평등을 진전시켰습니다. 한국에서도 '지금 여기에 실질적 성평등!'을 요구하며 국제여성의 날을 앞둔 3월 6일에 3·8여성파업대회를 합니다. 3·8여성파업대회에 함께 하는 단위들이 3·8여성파업의 의미를 나누고자 연재합니다. 편집자.
남태령에서 농민과 비농민 시민 연대는 10중 경찰 차벽을 열어냈습니다.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는 남태령이라는 공동 경험이 망가진 사회를 재조직하는 역사적 상상력의 거점이라는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남태령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지키고 구한 평등과 돌봄, 환대와 투쟁을 고정된 서사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고 해석하고 전승하고자 모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우정을 이어가고 서로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했습니다.
계엄 광장과 남태령을 온몸으로 지킨 것은 여성입니다. 한국에서 자살률과 타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인 10대, 그리고 2030 여성은 당면한 폭력과 죽음에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는 5·18 광주 젠더폭력 생존자 여성들이 시민 유체를 수습하던, 계엄 트라우마 재경험 속에서도 국회 앞으로 달려가던 모습과 겹칩니다.
가장 적나라한 폭력에 맞서 가장 용감하게 싸워온 여성은 폭력과 착취 앞에 스스로를 가장 자책해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노동 현장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은 노동의 재생산과 사회적 재생산 자체를 전담해왔음에도 정당한 인정과 분배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의 책임이라고 비난당했습니다.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는 이 부정의한, 부조리한 구조에서 노동하고 관계 맺는 젊은 여성 동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자책하지 말고 더 뻔뻔하게 삽시다. 혼자서 힘들면 도망칩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같이 싸웁시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서 싸워나가는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대의한다는 정부도, 우리 노동의 사용자도, 우리 스스로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를 기계화하고, 성적으로 도구화하며,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본과 국가를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성폭력에, 땅의 수탈과 지구의 파괴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분할 통치하며 밑바닥 노동으로 끌어내리고 있습니까?
우리 여성은 파업합니다. 진짜 착취를 은폐하는 가짜 혐오와 증오를 파업합니다. 심미노동과 감정노동, 돌봄노동 등 여성의 몸을 옭아맨 성별화된 규범 수행을 파업합니다. 무엇보다 각자도생의 사회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불안과 고립으로부터 파업합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우리가 본디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맺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기를 권리를 박탈했습니까? 누가 우리를 저임금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과 정상가족의 굴레에 가두고, 너희의 가치와 역할은 그정도라고 믿게 만들었습니까?
여성 농민은 토종 씨앗을 매개로 지구의 종 다양성을 순환시키고 식량주권을 수호하는 노동을 일컬어 여성 농민의 권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일 수 있는지부터 다시 사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재사유할 시간을 돌려받기 위해 파업합니다. 임금노동이 앗아간 사람들과의 교류와 취미생활, 숙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의 시간을 위해 파업합니다.
연결된 모두의 해방을 위해, 투쟁합시다. 여성파업대회에서 만납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