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총선은 진보정당운동의 한 주기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견지하는 정당들은 하나도 원내에 진출하지 못했고, 비례위성정당 형태로 더불어민주당과 거의 한 몸이 된 정당들만 의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진보정당운동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12.3 친위쿠데타에 맞서는 시민 항쟁과 조기 대선을 거치며 다시 새로운 상황이 열렸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선거연합인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출마한 권영국 후보가 의미 있는 바람을 일으켰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지지자들의 후속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가 열릴 수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런 때일수록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보정당운동이 걸어온 길을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되돌아보고 새 세대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이미 여러 곳에서 이런 성찰과 토론이 전개되고 있겠지만, 나름대로 진보정당의 지난 여정에 함께 해온 한 노병(老兵)으로서 여기에 몇 마디를 보태려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또 다른 세 가지 중요한 운동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이 여전히 중요하다
어떤 정당이든 난관에 봉착하거나 파국을 맞는다면 그 일차적 원인은 당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정치적 순간에 내린 문제 있는 결정이나 선거 대응에서 나타난 한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2000년대 민주노동당이나 2010~2020년대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들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인의 '일부'일 뿐이다. 정당은 늘 더 큰 시민사회의 한 부분으로 존립하고 작동하기에 정당이 자신의 모태인 시민사회와 벌이는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상호작용 역시 시야에 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측면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당을 둘러싼 논의에서 흔히 간과되곤 한다. 정당의 공식 의결기구가 심의, 결정하는 일상사업 계획이나 선거대응 전략으로는 제대로 건드리거나 담아내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공식 계획에 바탕을 둔 평가에서도 항상 흐릿한 배경 정도로만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데 진보정당운동의 궤적을 돌아볼수록 이 측면이야말로 장기적 발전이나 쇠퇴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주의, 노동계급운동의 토대가 한 차례 일소됐던 한국 사회이기에 이런 풍토에서 진보정당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려면 시민사회 전체의 상당한 변화가 함께 추진돼야만 한다. 시민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존재하고 진보정당이 이런 흐름과 한 몸이 되어야만 현실정치 영역에 대응하는 진보정당의 기초 체력도 확보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에게는 정당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세 가지 운동이 참으로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운동이다. 노동운동의 발전이 좌파정당의 성공에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인지를 놓고 굳이 긴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이를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들은 노동조합의 지지 없이 진보정치가 존립하거나 성장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노동운동은 민주노동당이 등장한 이후 20여 년 동안 좀처럼 외환위기 이전 같은 활기를 되찾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이제까지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다. 그렇다고 한국 노동운동이 20세기 말 이후 일본 노동운동처럼 완전히 생기를 잃은 것은 아니다. 느리게나마 초기업단위 노동조합들이 성장했고, 주기적으로 반복된 시민 항쟁에서 늘 민주노총이 기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약진이 곧바로 좌파정당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는 다른 나라 이야기들(19세기 ~20세기 초 서유럽, 20세기 말 브라질)이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다는 점만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제는 진부한 상식이 됐지만, 그 원인은 너무나 일찍 노동계급이 서로 처지가 확연히 다른 계층들로 나뉘어졌다는 데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존 비정규직보다 더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이 급증했다. 이미 협상력을 확보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와 점점 더 늘어나는 불안정 노동자 사이의 이러한 분단에 대해 진보정당들은 나름대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 내 논쟁에서는 항상 이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됐고, '비정규직 정당' 같은 표현이나 발상이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제시된 접근법은 모두 문제가 드러나거나 한계에 부딪혔다. 우선 거의 1, 2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선거에 대응하기 바쁜 정당이 사업계획에서 밝히는 '노동운동 혁신, 부흥'은 공염불이나 허장성세에 그치기 쉬웠다. 정당에게 요구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노동조합운동만의 생리와 리듬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하는 '비정규직 정당' 같은 지향이나 논의는 노동 현장과는 괴리된 채 허공을 맴돌았다. 노동운동 내부의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하기보다는 분열을 지겹게 재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이 넘어서지 못한 한계선이었다. 한데 지금은 노동운동을 둘러싸고 전혀 새로운 구도가 대두하고 있다. 지난 칼럼(☞바로가기 : 보수파, 자유파는 있는데 사회파는 어디에?)에서 정리한 대로, 부동산시장을 중심에 둔 오래 된 불로소득 동맹과 주식시장을 중심에 둔 새로운 불로소득 동맹이 한국 사회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며 서로 대치하는 중이다. 이는 과거보다 '더 나빠진' 구도이지만, 노동운동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노동운동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이 답답한 이항대립 구도를 뒤흔드는 제3항이 되는 것이다. 자산시장 투자자라는 것과는 다른 정체성으로 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쟁론, 교섭, 합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가는 제3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기에서 첫 번째 과제는 물론, 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을 발판 삼아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의 새 국면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노동조합들의 '남은' 역량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돌봄결핍 등에 대한 사회적 교섭 통로를 뚫어야 한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양대 불로소득 동맹과 구별되는 '사회파'의 형성에 나설 때, 비로소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뒷받침할 탄탄한 힘이 마련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아닌 '정치'개혁운동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정치개혁운동이다. 사실 진보정당들은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제도 개혁, 그 중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선구적이면서 열정적인 주창자였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들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선전한 덕분에 시민사회 내 상당 부분이 동참한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등장할 수도 있었다. 뜻밖에도 그 결과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누더기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괴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노력이 과연 '정치'개혁운동이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 진보정당들이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기는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6공화국 정치 질서 전체를 바꾸려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이루는 요소는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소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정당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대통령 중심제, 지역정당 등을 금지하는 규제 중심 정당법,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방자치 등등이 함께 얽혀 있다. 진보정당운동은 이 질서 자체에 도전하지 못했고, 이런 도전에 나서는 시민사회 내 정치개혁운동도 없었다.
오히려 진보정당들은 제6공화국 정치에 '적응'하려 했다. 정당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대통령 선거 예비주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존 정당 구조와 정치 문법을 따라 했다. 5.16 군부쿠데타 세력이 도입한 정치제도들을 상수로 놓고 그에 맞춰 '진보'정치를 펼쳤다. 기존 정당들에 비해서는 지방자치를 중요시했다지만 진보정당 역시 지역에서 거둔 성과를 중앙정치에 진출할 발판쯤으로 여겼다. 그러면서 단지 국회의원 선거제도만 개혁 대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니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정치개혁운동이 아니라 진보정당 지분 늘리기, 이익 챙기기로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은 이렇게 기존 정치와 동일한 무대에서, 동일한 논리에 따라 경쟁해서는 '필패'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대 정당,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도록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선거 기계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발전하여 도무지 빈틈을 찾기 힘들 지경이고, 내부 균열이나 반란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는 미국의 양당 정치보다 더 촘촘하고 경직돼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대통령 선거 예비주자 중심의 정치, 국회의원 활동에 특화된 정치를 그대로 따라 해서는 경쟁은커녕 생존도 쉽지 않다.
이제는 진실을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선택지는 둘 밖에 없다. 양대 정당 중 어느 하나의 일부가 되든가, 아니면 독자 정당과 정치개혁운동을 병행하든가. 즉, 여전히 독자 진보정당을 추구한다면, 과거의 선거제도 개혁운동보다 훨씬 더 광범한 시야로 더욱 진지하고 집요하게 제6공화국 정치제도 전반을 바꿔나가는 운동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진보정당은 정치개혁운동이 추구하는 '정치'를 미리 보여주고 앞서서 열어나가는 새로운 정치 관행과 문화를 통해 지지를 모아가야 한다.
문제는 지난 시기의 진보정당운동과 이로부터 영향 받은 시민사회 내 정치개혁운동이 선거법 개정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대체할 새 정치 질서에 관한 논의와 합의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 대안은 의회제(내각제)인가? 비례위성정당이라는 암초를 만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계속 대안으로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제를 고민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바람직한 새로운 균형은 무엇인가? 이 모든 물음을 놓고 답이 천차만별이고, 중구난방이다.
앞으로 나는 기회 닿을 때마다 이 지면을 통해 이런 쟁점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토론이 무르익기 전에라도,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주기를 열려는 이들이 해야 할 임무가 있다. 그것은 정치개혁운동의 불씨를 계속 살려나간다는 커다란 목표 아래, 시민사회의 상당 부분이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최소 합의 내용을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국정 제1과제로 '개헌'을 잡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 절차를 통해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큰 폭으로' 뜯어고칠 수야 없겠지만, 앞으로 장기간 그런 일을 계속 해나갈 시민사회 내 흐름을 형성할 기회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운동-정치개혁운동의 병행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이, 주어진 개헌 일정에 맞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개정안을 기민하게 제안해야만 한다.
제3의 운동, 이념-문화운동?
세 번째 운동은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이름 붙이기가 좀 애매하다. 보수파, 자유파와 구별되는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따라서 극좌 정파들이 신성시하는 '사회주의'보다는 훨씬 느슨한 의미)를 알리고 동의를 넓히려 한다는 점에서는 '이념운동'이라 하겠지만, 너무 고색창연하게 들린다. 흔히 '문화'라 분류되는 영역이나 층위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는 '문화운동'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이념-문화운동'이라 하자.
사실 양대 정당 주위에도 그들 나름의 이념-문화운동이 있다. 양대 정당이 빈 틈 없는 선거기계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정치를 독점할 수는 없다. 잘 알려진 친민주당 성향이나 극우 성향 유투브 채널을 떠올려보자. 양대 정당의 헤게모니는, 이들이 일상에서 그토록 왕성하게 활동하는 덕분에 그야말로 '힘겹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렇게 이념-문화운동과 결합된 정당 활동을 창시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본래 사회주의, 노동계급 세력이었다.
그런데 2025년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유투브에서 친국민의힘 극우파-보수파나 친민주당 자유파와 뚜렷이 구별되는 목소리를 전하는 채널을 찾아보기 힘들다. 좌파가 최신 미디어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새로운 미디어 공간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좌파가 강세를 보였던 무대, 가령 출판 영역에서도 이제는 극우파-보수파와 자유파가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양분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 진보정당의 선거 득표율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하지만 극우파-보수파, 자유파만으로는 복합위기 시대에 필요한 정치를 만들어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면, 늦었더라도 이념-문화운동에 다시 도전해야만 한다. 다만, 이 영역은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보다도 훨씬 더 정당의 직접적 관할권 바깥에 있다. 당 강령에 추상적인 급진적 문구를 더 넣거나 당의 공식 미디어 사업 예산을 늘리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전혀 아니다. 그야말로 진보정당운동 주위를 겹겹이 에워싼 '의병'들이 맡아야 할 과업이다.
이 짧은 글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다. 부족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말문을 연 것은 하루라도 더 빨리 독자 진보정당들 안팎에서 집단적인 고민과 실험이 시작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선은, 시민사회 안에서 노동운동, 정치개혁운동, 이념-문화운동이 마련하는 여유로운 공간이 없다면 독자 진보정당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보다 명철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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