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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대정신에 미달하는 상법 개정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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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대정신에 미달하는 상법 개정 내용

[장석준 칼럼] 상법 개정을 넘어 이익균점제로

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미 3월에 국회에서 가결된 바 있지만,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이던 한덕수 국무총리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고 말았다. 이번 의결 과정에서도 극우 언론은 끝까지 부정적 여론을 부추겼고, 국민의힘 역시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 막판에야 협의에 응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그간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상법 개정 작업이 일단락됐다.

개정된 내용을 보면, 우선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현행의 '회사'에 더해 '주주'를 추가했다. 또한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경우에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을 바꿨고, 독립이사의 의무 선임 비율을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했다. 또한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했고,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인 상장회사는 전자주주총회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했다. 국민의힘이 계속 반대한 '3%룰(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제도)'과 '집중투표제' 가운데에는 결국 집중투표제를 빼고 3%룰만 포함시켰다.

입법의 핵심은 주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이런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 주주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입법 방향은 부동산시장에 몰린 돈을 주식시장으로 돌려야 한다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긴밀히 연관된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한마음 한뜻이 돼 결의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도 궤를 같이 한다. 주식 소유자의 권익 강화에 관한 한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행보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는 가운데 디스플레이에 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1.21p 오른 3,116.27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0.7원 오른 1,359.4원, 코스닥지수는 11.16p(1.43%) 오른 793.33으로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21세기 시대정신에 미달하는 상법 개정 내용

그런데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이런 행보를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이나 극우 언론처럼 노골적으로 재벌 편만 드는 그런 비판이 아니다. 지난 한 세대 넘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불평등과 불안정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가 다름 아니라 주주 중심 기업 운영, 즉 주주자본주의의 산물임에 주목하는 이들이 꺼내는 진지한 걱정이다. 이런 입장에 선 비판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시대에 이재명 정부가 뒤늦게 낡은 교리와 질서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닌지 묻는다.

귀 기울여야 할 지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상법 개정 내용 자체가 모두 잘못됐다거나 불필요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어떻게 보면, 주주자본주의 등을 둘러싼 심각한 논의와는 별개로 오래 전에 당연히 제도화했어야 할 내용이다.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의무나 소액주주 권한의 강화는 주식회사제도에 담긴 나름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간영리기업인 주식회사를 놓고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인상은 오랫동안 주식회사를 주식회사답지 않게 운영해온 한국 대기업들의 기억에 오염된 결과다.

당장 상장회사가 영어로 public company다. 자칫 '공기업'으로 잘못 번역되기 쉬운 이 단어는 주식시장에서 소유권 증서가 공개적으로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가 전에 없던 모종의 '공공성'을 전제함을 암시한다. 불특정 대중으로부터 자본을 모집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며 리스크를 분담하는 기업 형태는 개인 소유 기업에 비하면 확실히 '공적'이다.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둔 '공공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다수의 주식 소유자를 아우르는 '공공성'의 차원이 분명히 있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 내용은 주식회사를 주식회사답게 운영하라는 상식적인 조치들이다. 공적으로 자본을 모집하는 만큼, 기업의 회계는 투명해야 한다. 다수의 주주와 함께 이익 공동체를 이루는 만큼, 기업은 항상 공동체 구성원 전체를 염두에 두고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다수의 주주에게 리스크를 분담시키는 만큼, 이들이 기업 경영에 개입할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 개인을 넘어선 공적 차원이 출현하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주식회사의 이사회와 주주들 사이에서도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현 정부, 여당의 입법 방향이 지닌 심대한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난다. 벌써 오래 전에 마땅히 '공적' 제도임을 확인했어야 할 주식회사에 대해 뒤늦게나마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개혁이 한국 자본주의 현실의 전개에 비해 '뒤늦게' 이뤄진 만큼, 정부, 여당의 이 개혁과 지금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개혁 사이의 간극은 '크다'.

지구자본주의가 전례 없는 복합위기에 빠져든 오늘날 우리가 확인하고 구현해야 할 '공공성'은 주식회사제도에서 기업과 주주들이 맺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일면적인 공적 관계를 훌쩍 넘어선다. 상법 개정의 정신은 21세기에 간절히 필요한 시대정신에 까마득하게 미달한다.

▲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차라리 제헌헌법의 이익균점권에 주목하자

우리 시대에 부응하는 상상과 토론의 단서는 오히려 80여 년 전 대한민국이 처음 시작하면서 맺은 약속 안에 있다. 5월 27일에 실시된 대선 제3차 TV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제헌헌법에 담긴 '이익균점권'을 화제에 올렸다. 이 내용은 노동3권을 규정한 제헌헌법 제18조의 뒷부분에 나온다.

"제18조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제18조의 두 번째 문장은 본래 헌법 초안에는 없었다. 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한 헌법기초위원회의 유진오 전문위원은 의원들 앞에서 초안을 처음 설명하며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가 초안의 기본 정신이라고 밝혔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경제 균등을 실현"하는 것이 헌법의 이념이라는 것이었다. 이익균점권은 이 이념의 정확한 구현이었지만, 애초에는 초안에 없던 내용이었다.

이익균점권은 노동조합운동(반공 성향의 대한노총)과 연계를 맺으며 제헌국회에 진출한 전진한, 문시환 등의 의원이 제출한 수정안에 처음 등장했다. 원래 이 수정안은 이익균점권과 더불어 노동자 경영참여권도 포함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의 결성, 쟁의, 협상만으로는 노동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이익을 균점할 권리까지 함께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이 수정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한국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자본주의 원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격하게 반대했다. 제헌국회의 헌법 심의 과정을 생생히 전하는 안도경 외, <1948년 헌법을 만들다: 제헌국회 20일의 현장>(포럼, 2024) 등의 책에 이 논쟁이 잘 정리돼 있다. 결국 이승만 의장의 중재로 경영참여권은 빼는 대신 이익균점권은 받아들이는 타협안이 만들어져 이익균점권이 헌법 제18조에 담기게 되었다. 이 조항은 제2공화국 헌법에까지 이어지다가 5.16 쿠데타 세력이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폐기된다.

그렇다면 영리기업에서 노동자가 "이익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직관적으로는, 대기업에서 영업 실적이 좋아지면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을 통해 특별 상여금을 받는 경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단지 이런 경우를 염두에 뒀다면, 제헌헌법 제18조에 노동3권 말고 이익균점권이 더 들어갈 이유가 없다. 제18조의 둘째 문장은 노동3권의 행사를 통한 이익 분배가 아니라 그보다 더 원천적인 권리의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제18조의 둘째 문장에는 "근로자" 말고 다른 주체가 숨어 있다. 바로, 이 조항이 없었으면 영리기업의 이익 분배를 결정하는 유일한 주체였을 해당 기업 소유주다. 소유주는 창업주나 그 가족일 수도 있지만,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주주들까지 포함된다. 이런 소유주들이 자기들 사이에서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순수 자본주의의 기업 원리다. 달리 말하면, 기업은 소유자들의 공동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이익균점권 채택을 통해 이 원리를 크게 수정했다. 기업은 단지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제18조의 둘째 문장은 소유주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기업의 이익 분배를 결정할 주체라 규정했다. 왜 그러한가? 기업은 소유자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생산(협의의 생산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포함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을 생산 공동체로 본다고 하여 소유자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산 공동체이기에 소유자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가장 먼저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노동자는 기업 소유주에게 고용된 단순한 '피고용자'가 아니다. 기업의 주인 중 일부이기에 당연히 이익의 일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다.

생산 공동체로 제 몫을 다하는 모든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식회사제도가 전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지닌다. 생산 활동은 영리 추구라는 거죽 안에 늘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속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업이라는 공동체 안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주체들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생산이든 소비든 사회적 성격이 과거에 비해 극도로 강화된 현대 대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최소한 소비자, 지역사회, 연관업체 등이 공동체의 경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최근 부상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 기업론이 바로 이런 기업 지배구조를 주창한다. 주주만이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연관업체 그리고 주주 모두가 이사회 구성에 반영되어야 하고, 기업 운영 방향을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인 일부 경영 전문가들과, 국영기업 일색의 과거 사회주의 모델을 넘어서려 하는 탈자본주의 좌파 모두 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제헌헌법의 이익균점권은 이런 비전의 씨앗을 이미 품고 있었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기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근로자", 더 정확히는 해당 기업의 직접 고용 노동자만을 일단 강조했다. 이익균점권의 정신을 현재 우리의 조건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려면, 이제는 더 일반화된 이익균점권, 즉 일종의 이해관계자 이익균점권이 필요할 것이다.

상법 개정도 됐으니 이제는 이익균점권을 이야기할 때

그러고 보면 정부, 여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 내용을 두고 찬반을 논하는 식의 토론은 더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너무 뒤늦은, 그래서 현 시대에 정말 필요한 개혁과는 거리가 먼 조치로 정리하고, 곧바로 다음 단계 개혁 의제로 넘어가야 한다. 몇 년 안에, 혹은 몇 달 안에 개혁 논의의 시간 지평을 20세기의 어느 시점에서 2025년으로 급속하게 이동시켜야 한다. 참으로 오랫동안 개혁이 지체된 한국 사회에서 변화의 리듬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이렇게 가속화하는 개혁의 내용적 실마리는 우리의 '과거 속 미래'에 있다. 대한민국이 처음 출발하면서 공동의 과제로 약속했지만 이후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세월 속에서 망각을 강요받아온 이상들 말이다. 그 가운데에 제헌헌법 제18조, 이익균점권이 있다. 상법 개정이 일단 가결된 지금이야말로 21세기의 조건에 맞는 이익균점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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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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