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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자' 윤석열의 반달리즘, 대한민국을 때려 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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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자' 윤석열의 반달리즘, 대한민국을 때려 부수다

[박세열 칼럼] 우리 안의 '윤석열들',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반지성주의자' 윤석열은 2022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에서 승리한 뒤 첫 일성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 것도 '쌔'한 느낌이었는데, 윤석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반지성주의적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반지성주의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윤석열의 연설은 마치 초등학생 아이가 형태소의 나열이 주는 느낌대로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도 같았다. 반지성주의자들이 '유아기적 특성'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석열은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 반지성주의라고 봤고, "과학과 진실"의 대척점에 있는 말로 해석한 것 같은데, 영 거리가 먼 설명이다. 반지성주의는 거칠게 말하자면 '교육'을 불신하고, '엘리트' 통치를 거부하는 일련의 태도를 말한다. 그들은 배움과 지식을 경멸하고 '경험'을 최우선으로 둔다. 일시적 현상을 영원한 모습으로 착각한다. 내 경험 바깥의 세상이 있다는 걸 부인하거나, 그걸 모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윤석열은 보수 언론이 말하는 '광우병 시위대'나, '사드 반대 시위대', '조국 수호대' 따위를 반지성주의자로 생각한 모양이다. 한미쇠고기협상의 굴욕적인 불공정 '딜'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인간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는 이들의 떼쓰기로 축소 치환하고, 중국을 겨냥한 사드 배치로 인해 한반도 안보가 불안해지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을, '참외 튀기는 레이더' 공포증에 걸린 무지한 사람들로 둔갑시킨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의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 앞에선 "후쿠시마 바닷물은 안전하다", "내가 마시겠다"고 대꾸하는 행태들이 오히려 반지성주의의 좋은 사례들이다.

특히 윤석열은 자신의 (대부분 특수부 검사로서 한) 경험을 인류가 쌓아온 지적 성찰의 결과물이나, 윤리적 사유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자'다. 반지성주의자들은 내면이나 내력보다 피상적이고 즉각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지적 전통을 무시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려 한다. 오늘, 나, 눈앞의 현상 같은 것에 절대성을 부여하며, 과거, 내일, 당신, 우리, 그리고 역사와 윤리를 부정한다.

여성가족부를 없애버린다거나, 노조를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거나, 국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를 없애야 할 장애물로 인식한 윤석열의 계엄은 이 사회가 쌓아온 지적, 윤리적 성취에 대한 반달리즘이었다. 그는 내란을 일으켜 국회를 없애려 했고, 그 지지자를은 법원을 때려 부쉈다.

윤석열이 옥중에서 접견하려다 실패한 모스 탄 이라는 인물은 윤석열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께선 여전히 주권자 되시며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구하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썼는데, 윤석열은 답장을 통해 '반지성주의 음모론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윤석열은 "모스 탄 교수와 미국 정부가 세상의 정의를 왜곡하는 세력,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과 대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하고 "글로벌리즘은 완전히 배신 당했다. 공산주의 네오막시즘, 완전히 구축된 권위주의 독재체제, 초국가 경제권력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면서 "글로벌리즘은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을 구축해 국가도, 주권도, 자유도 거기에 매몰되고 이제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의 사상은 이렇게 거의 '큐아난' 급으로 진화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질 낮은 수준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게 지금 윤석열이 가진 지성의 현 주소다. 이런 사람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 카르텔'이란 음로론적 망상에 빠지고, 교조주의와 낡은 복음주의 신앙에 천착하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윤어게인' 세력이 주로 반지성주의적 엘리트 혐오 개신교도들의 음모론에 빠져드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윤상현과 같은 부류 정치인들이 전광훈의 세례를 받고 보수 정당을 반지성주의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소아성애자 '엘리트 카르텔'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 '큐아난'들, 현대 의학을 거부하고 자연 치유를 믿는 '백신 음모론자'들, 기독교 창조론으로 과학과 역사에 도전하는 사람들, 수백년 쌓아온 페미니즘의 역사와 맥락을 거세하고 기계적 불균형을 내세워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 그들은 인류의 사유를 통해 공고히 해온 논리를 역으로 이용하고 전복시킨다.

무지에 대한 부끄럼이 없는 세상이다. 약자 혐오를 '평등'과 '공정'으로 포장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기성 세대에 대한 혁명'이라 변호하는 이들이 이준석에게 몰려가고 난민 문제를 고민하자는 연예인을 조롱하며 자신들이 겪는 이 고통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 여긴다. 그 반지성주의의 정점을 찍은 윤석열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적 모자이크에 다름 아니다.

물론, 반지성주의와 지성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성과 함께 반지성 역시 '평등'을 향한 열정과 '민주주의'가 낳은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겐 '반지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파괴적 속성을 갖는 건 용납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매카시즘 광풍과 미국 복음주의 전통의 '반지성주의'를 추적한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테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통해, 반지성주의가 또렷한 그룹을 형성하거나 운동(Movement)을 벌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성에 의해 끈질기고 섬세한 방법으로 선의의 충동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를 잘라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윤석열과 이준석도 우리 안에 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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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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