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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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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서리풀연구通]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개념의 재해석 -

2025년 한국은 노인 인구 비율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초고령사회에서 노인 돌봄을 위한 과제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문제는 '거주'에 관한 것이다. 즉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오랜 시간 살아온 집에 대한 애착이 크며, 가능한 한 익숙한 환경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바람을 반영한 개념이 바로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이하 AIP)'이다.

AIP는 노인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가능한 오래 머물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AIP는 비용이 많이 드는 시설 입소 대신, 노인이 기존의 주거지와 지역사회에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돌봄의 가치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를 장기요양 정책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재가급여 우선 원칙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AIP가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한 비공식 돌봄을 정당화함으로써 가족, 특히 여성에게 돌봄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자가 주택 보유를 전제로 한 탓에 저소득층이나 무주택 노인의 경우 실현이 어렵고,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AIP 중심의 정책이 오히려 시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 소개할 논문에서는 AIP 개념의 모호성과 비판적 성찰의 부재를 지적하며, '장소(place)' 개념에 대한 체계적 고찰과 심층적인 이론화를 통해 AIP 개념을 명확히 하고 동시에 불평등 문제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논문 바로가기: AIP에서 “장소”의 이론화: 지역적·관계적 관점의 필요성).

연구진은 먼저 AIP 개념의 이론적 기반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전통적으로 AIP는 시설 돌봄과 대비하여 노인의 자율성과 독립성 유지에 중점을 두어왔지만, 최근에는 지역사회 내 사회적 관계와 참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는 AIP를 단순히 '자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연결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과정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초기 환경 노인학(Environmental Gerontology)은 노인과 물리적 환경 간의 적합성에 주목했으나, 이후 연구들은 장소에 대한 정서적 애착, 정체성, 기억의 축적이 노인의 주거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최근에는 노인이 하나의 고정된 공간에 머무르기보다, 다양한 장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구성해 간다는 '관계적 장소 이론(Relational Theory of Place)'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AIP 개념은 여전히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지역마다 노인들을 지원하는 능력이 불균등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주거 환경이나 지역사회가 변화해 더 이상 노인의 정주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둘째, 노인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배제와 구조적 불평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 정책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인 중심으로 설계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AIP 논의가 장소 개념을 정적이고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론적 깊이가 부족해 시간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소'의 역동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연구진은 '장소'를 연결성과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관계적(relational)' 측면과 지리적 경계와 지방 정부의 역할을 고려한 '지역적(territorial)' 측면에서 이론화함으로써 AIP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고 불평등 문제를 보다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먼저 연구진은 관계적 측면에서 장소를 고정되거나 경계가 정해진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과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으로 개념화한다. 도시와 마을, 지역사회는 글로벌 정책, 사람, 자본, 정보 등이 오고 가는 '관계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WHO의 '고령친화도시' 정책은 각 도시가 정책적 실험과 적용을 반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각국의 제도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장소의 관계적 관점은 정책이 이동하고 연계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며 다양한 외부와의 연결 속에서 지역사회의 AIP 지원 방식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한편 지역적 측면에서는 장소의 경계와 구조, 즉 물리적 환경의 특성, 사회적·행정적 경계, 지역 인프라와 같은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계적 관점이 연결성과 이동성을 강조하는 반면 지역적 측면은 고령자들의 정체성, 집에 대한 감각, 장소에 대한 애착 등 실질적 경험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 AIP 연구에서 지역적 접근과 관계적 접근을 동시에 적용할 때 불평등 문제를 보다 정밀하고 포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 주장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AIP 연구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지역마다 고령자를 지원하는 역량에 차이가 발생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탐구할 수 있다. 도시화 과정(예: 공공 공간의 사유화,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긴축 정책(예: 도서관, 커뮤니티 센터 폐쇄)은 장소의 사회적 기반 시설을 약화시키고, 특히 저소득층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특정 공간에서 물리적 또는 상징적으로 배제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장소가 기존 노년층 인구의 사회적 연결을 지원하는 능력을 저해하며, 일부 노인들은 장소에 '갇혔다'고 느끼거나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취약계층 노인들이 특정 환경에서 겪는 사회적 배제와 소외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소애착은 개인과 환경 간의 정서적·인지적·행동적 유대를 의미하며,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재협상되고 재구성되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특히 이민자와 같은 주변화된 집단은 다중적 장소와 관계망을 통해 정체성과 애착을 형성하며, 이 과정에서 경계와 연결성 모두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고령자의 배제 경험과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 장소애착을 복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은 고령자의 소속감과 배제의 이중적 경험을 조명하고, 특히 실질적·사회적·문화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장소에 있는 이들이 겪는 소외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이 논문은 관계적·지역적 관점을 통해 AIP에서 '장소'의 개념을 심층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노인의 주체적 삶과 다양한 장소 경험에 대한 다층적 이해를 강조한다. 이는 AIP를 '돌봄의 탈시설화'와 '비용-효과'의 문제를 넘어서 노인이 관계 속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공간적 조건을 마련하는 포괄적 접근으로 전환해야 함을 시사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 역시 AIP의 정책적 실행에 앞서, 장소에 대한 감각, 정체성, 사회적 연결망 등 비가시적 요소들을 고려하는 보다 정밀하고 정의로운 노인 돌봄 정책을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AIP를 비용 절감을 위한 돌봄 정책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AIP를 표방한 노인 돌봄 정책들은 자가 주택 보유를 전제로 설계된 경우가 많고, 지역 간 돌봄 자원의 격차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저소득층이나 무주택 노인이 실질적으로 소외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연구가 보여주고 있듯이, 노인의 삶의 질과 주체적 선택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AIP 정책을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장소에 대한 감각과 의미, 그리고 불평등 구조 전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서지정보

Yarker, S., Doran, P., & Buffel, T. (2024). Theorizing “place” in aging in place: The need for territorial and relational perspectives. The Gerontologist, 64(2), gnad002.

▲ 한 병원에서 어르신이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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