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계몽입니다. 계몽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정보를 줘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이를 전제로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 자체를 어떻게 바꿀까, 이것이 계몽입니다. 지식의 전달이라기보다는 욕망의 변형입니다.…일본의 지식인은 이런 의미의 계몽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사실 계몽이란 관객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지금 일본에는 좀 더 성실하게 차근차근 계몽하는 지식인이 필요합니다. 더 쓸데없어 보이고 친밀하고 '위험'한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계몽령이 아니다. 계엄령이 아니다. 철학적 의미의 계몽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조산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미 존재하는 철학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돕지요. 이것이 본래 철학자의 구실입니다. 겐론(ゲンロン,言論)이란 회사는 이런 의미에서 늘 철학의 산실이고 싶습니다."
일본의 71년생 비평가가 매체와 거리를 두고 도쿄 한구석에 틀어박혀 작은 회사를 경영한다는 뜻을 세웠다. 2010년에 문을 연 회사가 10년이 지난 뒤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10년을 돌이켜보았다. 그것도 구술로.
"겐론은 미래의 출판과 계몽은 '지(知)의 관객'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화가 관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관객 없이는 커 나갈 수도 없습니다. 권력과 반권력, '친구'와 '적'을 가르는 이분법을 해체하고 관객이 자유롭게 모이거나 생각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사실 서른 시작 때부터 법률 비즈니스를 해온 입장인지라 저자가 겪는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시행착오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정도 가지고 힘들었다는게 사실 우습다. 하지만 이해한다.
도심을 떠나 자급자족을 꿈꾸는 자연인처럼, 글만 쓰고 살고 싶다는 작가처럼,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나름의 모델이 될 수 있고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과 난해함을 간접 경험케 하는 안내서가 될 수는 있겠다.
도리어 이 책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지의 관객 만들기>라는 본래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 측면에서의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려는 저자의 분투다. 일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류를 대신하는 가치관을 쫓아 주류적 삶을 떠나 일본 사회를 어떻게든 계몽시키고 싶어하는 저자의 노력이 가슴시리다.
내가 놓쳤던 책을 추천해줄 때면 고마운데 이 책의 추천이 그러했다.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추천인 박유수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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