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이 국민의힘 지도부를 예방해 여야 신임 지도부 간 첫 만남이 이뤄졌다. 야당 측은 상법 등 쟁점 법안 일방 추진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며 국회 원(院)구성과 관련해서도 법제사법위원장·예산결산위원장 자리를 요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답변 없이 덕담 위주로 발언하며 온건한 분위기에서 면담을 마쳤으나, 대화 도중 "국민은 과거가 아닌 방향을 묻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정치의 최소한 책임"이라고 뼈있는 말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17일 오후 국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을 찾아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접견한 김 원내대표는 첫 인사말로 "(김 위원장의) 지난 12.3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정치가 다시 국민 앞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일"이라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그것이 정치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당내 쇄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김 위원장이 주류인 친윤계 의원들과 대립하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추경 △상법 개정안 △사법개혁 등 국회 내 쟁점 현안과 관련한 야당의 우려를 전했다. 그는 정부·여당의 20조 원 추경 추진 움직임을 두고 "정치적 목적을 위한 추경이라면 분명하게 견제하겠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신속 처리를 확언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해치고 외국 투기자본의 개입을 넓혀주는 방식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보다 신중한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공직선거법·법원조직법·형사소송법 등은 국가의 뼈대를 구성하는 핵심제도"라며 "이런 법안들이 국민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다면 그건 입법이 아니라 입법의 이름을 빌린 권력장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통령의 기소를 막는 조항, 대법관을 늘리는 사안에 대해 국민들은 이미 이것을 '방탄 입법'으로 보고 계시다"며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언중유골"이라면서도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나 의견을 내비치지 않은 채 원론적 의미의 협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그런 것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고 협의하라고 정치가 있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 대해 깊이 유념하겠다"라고만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협치할 자세와 준비가 돼 있다"며 "정책 차이는 충분히 토론하되 민생 앞에선 언제든 힘을 모으겠다"고도 했다.
이어 송언석 신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의 접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송 원내대표는 "(22대 국회에서) 국회의 오랜 아름다운 관행들이 굉장히 많이 무너졌다. 그 결과 협치 정신이 국회에서 지금 상당히 훼손된 상태"라는 등 민주당을 에둘러 비판하고, 원구성 협상과 관련해선 "법사위원장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고 직접적인 요구사항을 전하기도 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미 (민주당이)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써 입법권뿐만이 아니라 거부권까지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부권을 정부에서 행사할 이유도 없어진 상태"라며 "여야 간의 협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법사위라든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이런 부분에 대해선 한 번 더 심사숙고하셔서 좋은 방향으로 서로 협의가 되면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협력과 협치는 필수"라고 화답하면서도 원구성 관련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는 송 원내대표가 국회의장-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예결위원장을 여야가 각각 나눠 맡았던 관행을 강조한 직후 "국민은 과거가 아닌 방향을 묻고 있다"는 등 우회적으로 거절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출 직후인 지난 15일엔 "법사위 운영규칙상 (위원장은) 2년마다 교체하기로 되어있다"며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이미 국민의힘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면담 직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국민의힘 측 원구성 요구에 대해 묻자 "거기에 대해서 얘기는 크게 안 나왔다"며 "오늘은 그냥 상견례하는 자리"라고만 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송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에서) 법사위원장 관련 발언을 했는데, 그 이후에 비공개 회의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은 논의가 깊이 있게 되지 않았다"며 "(국민의힘이) 아직 운영수석부대표 선임이 안 돼서 '선임되면 바로 수석 간에 협의를 하자'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또 김용태 위원장의 '사법체계 개편 법안' 발언에 김 원내대표가 "유념하겠다"고 말한 데 대해선 "일방적으로 급하게 처리하거나 하기보다는 논의 과정을 거쳐서…(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개혁입법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시점이나 논의·숙의 과정은 종전보다 저희가 더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상법 개정안의 경우 민주당이 기존에 발의한 내용대로 곧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김 대변인은 "저희가 법안 발의를 준비한 게 있고 그 내용을 가지고 지금 법사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당내 의원들 간 소통을 해야 하고, 야당과도 상임위를 통해서 협의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상법은 '처리한다'는 것이 우리 당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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