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본 적이 없었다. 근로장학생은 노동자가 아니었고, 알바는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법이다. 근로기준법 제3조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라고까지 적혀있다.
그러나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누구는 작은 사업장이라서, 누구는 특수고용노동자라서 이 최저기준은 쉽게 박살된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한 1970년 평화시장도 아닌데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사람이 아직도 너무 많다.

보석보다 빛나는 노동
아무리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아도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종로 귀금속 거리 노동자들은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업종별 교섭을 시도하기도 하고, 파업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단체협약이 만들어진 사업장들도 더러 생겼다.
그런데 지난 2월 종로 주얼리 사업장인 '라임'에서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했다. 단체협약 개악이 가로막히자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주얼리 노동자들은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에 해고를 당해도 실업 급여도 퇴직금도 없는 불안한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노동조합은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다. 그런데 라임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지노위 결정을 이행하기보다 돌연 폐업하고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온갖 서류를 파쇄하고, 기계 반출을 시도했다. 경영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노동조합 조합원을 복직시킬 바에는 폐업을 한 것이다.
종로 주얼리 업체들은 2025년에도 여전히 현금 봉투로 임금을 지급하고, 4대 보험을 4인까지만 가입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를 부린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얼마나 미웠을까? 서류를 조작하기도 어려워지고, 노동조건은 좋아진다. 노동자를 착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노동조합을 파괴하려한 것 아닌가? 다르게 보면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됐다면 노동조합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 꼼수는 혁신이 된다
주얼리 노동자들이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을 이용해 작업해 산업 재해에 취약하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안전법의 적용을 강하게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고용인원을 줄이는 등으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만드는 꼼수를 사용하면 예외가 되는 노동법들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일부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은 예외가 되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 과정에서 적용 대상에 5인 미만 사업장은 예외가 됐다. 근로기준법이 쏘아 올린 5인 미만의 굴레가 노동법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런데 해고만 살인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예외 적용도 살인이다.
5인 미만을 맞추면 노동법을 많이도 회피할 수 있어서일까?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려는 꼼수는 종로 주얼리 업체 '라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6개월 전 대전의 대형카페에서 사업장 쪼개기 의혹이 보도됐다. 실제 사업장의 규모는 큰데 3개의 사업장으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신고한 것이다. 그뿐인가?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것을 두고 혁신이라고 박수치는 경우도 많다. 배달의 민족, 쿠팡, 우버와 같이 어플로 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노동이 등장해 혁신적으로 근로기준법을 회피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꼼수가 남발되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미흡한 근로감독의 영향도 있겠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 예외를 적용한 것 자체에 원인이 있다.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됐다면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속일 필요도 없고,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형태를 발명할 필요도 없었다. 근로기준법 예외 적용이 혁신적인 노동착취만 양산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을까?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것이 달리 있지 않다. 내가 노동으로 먹고살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으로 경제가 파탄 났고 그래서 기업을 살려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보수적인 말들이 퍼지고 있다. 내란 권력이 윤석열 정권에서 다음 정권으로 그저 옮겨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살림살이는 그다지도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로서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이라고 권리마저 없어서 되겠는가. 누구나 일하는 사람이면 4대 보험 적용받고, 퇴직금 적립 받고 주휴수당도 꼬박꼬박 나오는 ‘기본이 된 일자리’를 원한다. 알바노동을 해도, 주얼리노동을 해도, 특수고용노동을 해도, 근로장학생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받고 싶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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