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길 중간쯤에 왔을 때 / 내가 보니 나 있는 곳은 한 음습한 숲속 / 바른길 잃고 벗어난 까닭에"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중 '지옥'의 첫 곡, 첫 행이다. 이 책의 제목 <인생길 중간에 거니는 시의 숲>은 여기에서 왔다. 설마 윤혜준 교수가 지옥으로 안내하는 것일까.
"이 책은 독자를 지옥 탐방에 초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생길 중간, 중장년에 들어선 이들에게 잠시 삶을 함께 둘러볼 시의 산책로로 안내할 것이다."
잠시 여의도에서 일하던 시절, 국회 사무처에서 의원들이 좋아하는 시 선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300명 의원들 중 아마도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던 시였던 것 같다. 저자는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택하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고 번역한다. 잠시 시의 마지막 행을 낭송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숨을 쉬며 할 것이다./ 어디선가 세월이 흐르고 흐른 후에./ 한 숲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는데, 나는─/ 나는 발길이 뜸한 길을 택했고,/ 또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번에는 설명이다.
"이 시는 흔히 '가지 않은 길'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다. 원작의 제목에는 'taken'이 포함되어 있다. 선택이 중요한 주제이지 단순히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을 떠나다'라는 뜻의 숙어로 'take to the road'가 있다. 이 시에 사용된 표현에서는 관사가 없기에 그것을 '가지 않은 길'로 옮길 근거가 없다."
길을 선택하기 이전에 우린 어떻게 여기에 서 있었나.
"낯설게 난 이리로 왔었고,/ 낯설게 난 다시 여길 떠나네." (빌헬름 뮐러 <잘 자기를Gute Nacht>)
여행길 와인이 동행한다.
"힘겨운 것은 앉아 있는 것, 눈에 안 띄게./ 나머지는 모두 알아서 풀린다. 세 모금 홀짝"(체사레 파베세 <슬픈 와인Il vino triste>)
시인의 고향은 네비올로 품종으로 유명한 피에몬테 랑게 지방, '체사레 파베세'는 한 와이너리의 제품명이 되었단다.
반쯤은 취한 채로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인생길.
"이것은 죽은 것이 아니야,/ 이것은 돌아가는 거야/ 제 나라로, 제 요람으로,/ 날이 맑기도 하구나/ 마치 어머니가 미소 짓는 듯/ 기다리고 서서." (안토니아 포치 <슬픔 없는 장례식Funerale senza tristezza>)
좋은 시를 찾아 번역하고 해설해 준 노고에 존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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