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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문제는 무엇인가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으려면

내란 사태로 때 이른 대선이 치러지는 중 '서울대 10개 만들기' 의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유력 대통령 후보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교육공약을 발표하며 고등교육 부문의 거의 유일한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유세 중 이 정책을 거론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삼은 바 있으므로 일관된 정책 방향으로 볼 수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이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에 그칠 공산이 매우 크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초로 제안한 김종영 교수가 최근 학술지 '경제와 사회'에 발표한 '엘리트 대학과 병목사회'에 의하면, 해당 정책의 핵심은 △캘리포니아 대학체제처럼 '서울대'라는 이름을 공유할 것 △서울대만큼의 예산을 투입할 것 △대학 통합 네트워크라는 체계를 만들 것 등이다. 다른 두 요소도 문제를 안고 있지만, 특히 두 번째 예산 항목으로 이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자명해진다.

서울대가 받는 정부 연간 지원금은 약 6500억원이다. 부산대가 받는 지원금은 19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여타 거점국립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9개 거점대학에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하려면 연간 5조 이상의 재원이 더 있어야 하는 셈이다. 예산 규모상으로 따진다면 이 격차는 더 커진다. 서울대 1년 예산이 약 1조인데 비해 여타 대학들은 평균 2천억 정도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9개 더 만들고 유지하려면 매년 7~8조가 더 투여돼야 한다.

올해 정부 고등교육 예산 규모가 약 15조6000억 정도로 예상되는 조건에서, 이는 정부 고등교육 예산의 절반을 이 기획에만 투여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예산을 두 배로 늘리지 않는 한 터무니없고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기획을 위해 정부 교육 예산을 마구잡이로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불가능한 기획을 거듭 공약으로 삼고 있는가? 일차적으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문제의식, 즉 입시과열과 지역소멸이라는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라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대학정책 가운데서 하필 이 제안을 공약으로 삼게 된 것인가 묻는다면, 그것이 가지는 '구호적'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에 좋은 대학이 있어야 하고, 서울대는 무엇보다 그 좋은 대학의 최정점에 있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중적 호소력을 가질 여지가 큰 점이 정치하는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획은 그 문제의식과 실현방식의 괴리 때문에 비판받아왔고, 현실성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면에서도 정당성이 결여됐다. 더구나 그것이 근거로 삼고 있는 해외 사례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실제로 차기 정부가 이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면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쳐 좌초하거나 핵심 요소 자체가 변형될 수밖에 없을 것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은 그 나름대로 정부 신뢰와 맺어져 있고 일정한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대처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과 일부 전·현직 국립대 총장과 교육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가칭)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떤 대처가 가능한가?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당장의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인 기획으로 삼고 단계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급격한 예산 증액과 투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연차적으로 거점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려가서 서울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장기 플랜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서울대'라는 이름을 공유한다는 원래 기획의 핵심 중 하나는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계적인 예산 증액을 두고 그 대학을 '서울대'라고 지칭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 체제를 없애겠다는 목적과는 달리, 이 기획 자체가 일류대 중심주의에 편승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입시에서 '병목'을 일부 개선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대학체제 개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또 하나의 방안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제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나 상징이라고 보고, 즉 정치적 구호임을 인정하고, 그것이 목표로 하는 서열구조의 완화나 지역살리기의 대의에 합당한 좀 더 현실적인 정책으로 전환해 가는 것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도 강조하는 것처럼 지역에 연구 중심 대학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때문에 꼭 '서울대'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이를 좀 더 명시적으로 하고, 예산의 단계적 증액도 여기에 초점을 두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점국립대 지원은 운영 위기에 처한 지역의 사립대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과 별개로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지역거점의 연구 중심 대학을 키우는 일은 지역에서 대학의 성격을 구분하여 조정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가령 전남대를 전라남도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시키면서 지역의 다른 4년제 대학들을 학부 중심의 교육 중심대학으로 특성화하고, 대학원 교육은 전남대가 통합하여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그런 구분과 협업 방식이 아니면 지역의 국립대 하나를 일류대로 만드는 과정은 여타 그 지역의 대학들, 특히 중소규모의 지역 사립대학들의 궤멸을 촉진하는 반(反)지역적 정책이 될 것이다.

원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제안은 진보 학계에서 20년 가까이 주장하고 발전시켜 오던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모태로 하고 있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는 대학 서열 체제와 일류대 및 수도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제기된 대학체제 개편안으로, 전국의 거점 국립대학들을 통합하여 운영하고 공동입시를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공통적인 교양과정을 수료한 후 일정한 과정을 거쳐 각 지역 소재 국립대로 배치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주장은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와 파리대 개편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김종영 교수는 이 안에 기반을 두고 이를 '정치적으로' 변용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든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낸 서울대 10개 만들기든 기본적으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 틀이 다 원용하고 있는 구미 대학들의 체제개편이 우리 현실과는 상반된 환경에서 구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 나라들은 사립대가 전체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대학체제와는 정반대로 국립대 혹은 주립대가 중심을 이룬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대학이 국립인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도 주립대가 전체의 70%을 넘는다. 그 때문에 주립대 체제의 개혁은 대학체제 전체의 개혁과 맺어져 있었다.

캘리포니아 체제의 수립은 대학이 팽창하고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에 대학 체제를 정비하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의 전면적인 축소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점을 도외시한 캘리포니아 모델의 기계적인 모방이 문제를 초래할 것은 자명하다.

특히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주창자인 김종영 교수는 앞의 논문에서 자신의 제안이 캘리포니아 모델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대 10개라는 발상도 캘리포니아의 연구중심대학인 UC(University of California)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UC버클리, UC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에 산재한 10개의 연구중심대학처럼 전국에 서울대라는 명칭의 대학들을 지역마다 설치하면 현재의 과도한 경쟁도, 수도권 편중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체제는 각 지역마다 연구 중심 대학을 설치한다고 해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UC 외에 교육 중심 대학인 CSU(California State University)와 마을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CCC(California Community College)가 서로 연동되어 움직이는 이른바 삼분 체제다. 즉 4년제의 연구 중심과 교육 중심 및 2년제인 직업교육 중심으로 엄격하게 그 기능과 성격이 구분되어 있고, 각각 다른 규칙에 따라 운영된다. 응시자격은 고교성적에 따라 차등을 두지만 편입의 문이 넓어서 상위권 대학으로의 진학기회를 대폭 열어두고 있다. 단적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는 전체 학생의 75~80%을 수용하는 CCC, 즉 지역민을 위해 직업 혹은 진학 교육을 담당하는 수많은 마을대학들에 대한 주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이 지역대학들의 등록금은 UC의 10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지방의 거점국립대학을 연구중심대학으로 키우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그것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식의 비현실적이고 설익은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대학 체제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또한 거점국립대학에 그런 목적으로 국가 교육 예산을 과도하게 투입하게 되면,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지방사립대, 혹은 더 작은 규모의 국립대학들은 심각한 소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의 기조와 배치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당이 서울대 10개 만들기같이 구호적인 성격이 강한 대학정책을 핵심 교육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대학 문제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더더욱 아쉬운 일이다. 다만 '서울대 10개'라는 구호에 얽매이지 않고 서울 중심의 서열과 지방균형발전을 지향한다는 그 목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그것을 활용할 여지는 없지 않다. 조기대선이라는 촉박한 일정에서 그것을 정책목표로 확정하는 것은 유보해야 마땅하고 향후 더 본격적이고 충분한 논의의 공간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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