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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정치, '성평등' 어떻게 밀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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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정치, '성평등' 어떻게 밀어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2025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의 '젠더 정치' 좌표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는 정치적 촉매제로서 작용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현상은 단순한 이슈 부상이 아닌, 정치 공간 자체의 재구성이었다. 2022년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젠더 갈등'은 정치적 동원의 도구로 격상되었고,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그 결과는 정치 지형의 양극화와 성평등 정책의 후퇴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성평등 의제가 어떻게 한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는지, 그리고 2025년 6.3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대안적 좌표를 그려야 하는지 탐색한다.

2022년: 갈등을 선거전략으로 삼다

2022년 20대 대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젠더 이슈가 전면에 등장한 첫 선거였다. 이전까지 여성 정책은 복지나 가족 정책의 일부로 취급되었지만, 이 선거에서는 독자적인 쟁점으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여성안심 대통령'을 자처하며 다양한 성차별 개선 공약을 제시했다.

이러한 선거 전략은 놀라운 정도의 성별 분할 투표로 이어졌다. 20대 남성의 58.7%가 윤 후보를 지지한 반면, 같은 연령대 여성의 58.0%는 이 후보를 선택했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젠더 이슈가 단순한 정책 차이를 넘어 정체성의 정치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선거 결과는 '성별 갈라치기'가 효과적인 정치 기술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갈라치기'의 성공은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경쟁관계로 인식하게 만드는 '제로섬 게임'의 프레임이 형성되었고, 성평등은 모두의 공동 목표가 아닌 한쪽의 이득을 위한 의제로 왜곡되었다. 정치권은 이러한 갈등 구도를 해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선거 이후에도 이 틀은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주요 좌표가 되었다.

윤석열 정부 3년 차: '유령 부처' 된 여가부

윤석열 정부는 당선 직후부터 공약대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2022년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회기 만료 폐기되었다. 법적으로 폐지는 불발되었지만, 실질적인 '유령화'는 진행형이었다. 여성가족부 예산은 142억 원이 삭감되었고, 장관직은 1년 가까이 공석 상태로 방치되었다.

이런 상황에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명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장관을 즉시 임명하고 폐지 추진을 중단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성평등 정책의 힘이 약화되는 동안, 정부는 가족과 저출생 대책에 방점을 찍으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이러한 부처의 '유령화'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닌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성가족부가 축소되면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별 임금격차 해소, 여성 고용 증진과 같은 정책들은 추진력을 잃었다.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국가 아젠다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것이다.

2025 대선 레이스: 공약에서 밀려난 '성평등'

여야가 예비경선을 마치면서 드러난 4인 주자(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의 '10대 핵심 공약'에는 여성·성평등 의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2022년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전면화되었던 상황과 대조적이다.

이재명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여가부 존치 입장이지만 추후 조정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고용평등 임금공시제와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10대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별도 공약집에 반영하겠다는 해명만 있었다.

김문수 후보(국민의힘)는 여가부 존치를 주장하면서도 기능 축소를 강조했다. 그의 여성 관련 공약은 '여성희망복무제'와 출산·돌봄 세제 지원 등 저출생 대책의 부속 항목에 한정되었다.

이준석 후보(개혁신당)는 '여가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별도의 여성·성평등 공약은 제시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권영국 후보(민주노동당)만이 '성평등부 격상'과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 성별임금격차 해소 등 성평등을 전면화한 공약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주요 양당과 제3당 후보들은 여성·성평등 의제를 핵심 프레임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진보 소수 후보만이 일관된 페미니스트 아젠다를 제시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여성 정책이 '10대 공약'에서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왜 사라졌나: 후퇴의 정치적 토양

성평등 공약이 대선 레이스에서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

첫째, '여가부 약화'가 정책 시그널로 작용했다. 정부가 2년 넘도록 부처 폐지를 고수하면서, 성평등 의제를 앞세워 득을 볼 정치적 인센티브가 사라졌다. 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후보들은 이 의제에 정치적 자원을 투입할 동기를 잃었다.

둘째, 반(反)페미니즘 포퓰리즘의 효능감이 확대되었다. 2022년 선거에서 젊은 남성층의 결집이 승패를 갈랐다는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후보들은 '역차별 프레임'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적극적인 성평등 공약은 내놓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

셋째, 성평등 담론이 저출생 정책으로 '흡수'되고 '희석'되었다. 성평등 정책은 저출생·가족정책의 하위 항목으로 포함되어 출산 지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성폭력 근절, 일터에서의 차별 해소와 같은 구조적 의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성평등은 정치적 위험을 수반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득표 최대화를 목표로 하는 후보들에게 이는 피하고 싶은 의제로 인식되었고, 결과적으로 공약에서 성평등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결과: 성평등 지표도 뒷걸음

성평등 정책이 후퇴하면서 한국의 성평등 지표도 악화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은 2024년 105위에서 109위로 4계단 하락했다. 특히 정치참여와 경제참여 부문에서 정체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장에서의 변화도 뚜렷하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이후, 전국 136개 피해자 보호시설 중 17곳이 운영난을 신고했다. 피해자들이 의지할 안전망이 약화된 것이다.

또한 공공부문 임금공시가 미뤄지면서 성별임금격차는 2024년 기준 31.5%로, OECD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노동 가치가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표들은 성평등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삶의 조건임을 상기시킨다. 정치 공간에서 성평등 의제가 축소될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들, 특히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전가된다.

대안: '분열의 정치' 이후를 상상하다

'젠더 갈라치기'에 기반한 정치가 한계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성평등을 대립의 구도가 아닌, 공존의 가치로 재정립하는 작업이다.

첫째,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시급하다. 유엔과 OECD가 반복적으로 권고해온 이 법안들은 성평등의 최소 기준으로, 한국 사회의 법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여성가족부의 '폐지'가 아닌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부처를 '양성평등·가족부'로 재편해 성평등 컨트롤타워와 저출생 대책을 동시에 책임지도록 설계한다면, 효율성과 전문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

셋째, 모든 법과 예산안에 젠더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정책이 성별에 미치는 차별적 영향을 사전에 방지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넷째, 남성 인권과 돌봄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 100% 대체임금제, 군 복무 경력 인정과 같은 '공정 보상' 장치를 병행한다면, '역차별' 불안을 해소하면서 성평등을 진전시킬 수 있다.

다섯째, 혐오표현 규제와 공론장 복원이 필요하다. 정당과 언론이 성별 혐오를 선거전술로 활용할 경우 강력한 페널티(국고보조금 감액 등)를 부과하고, 숙의형 시민위원회를 통해 젠더 이슈를 정쟁에서 공론화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들은 성평등을 제로섬 게임이 아닌, 모두가 승리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권은 성평등을 '이기는 공식'이 아닌 '갈라치기의 도구'로 활용해왔다. 그 결과 공약집에서 여성과 성평등은 지워졌고, 정책 현장에서는 부처의 '유령화'와 예산 삭감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성평등은 단순한 '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본 인프라다. 이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모든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구축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다.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부처 해체나 공약 삭제가 아니라, 남녀 모두의 삶을 개선하는 '공존의 정책'을 설계하고 명확히 책임지는 것이다. 젠더 갈등을 선거 전략으로 삼는 순간 얻는 표보다 잃는 신뢰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2025년 대선 레이스가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진정 갈등을 넘어 성평등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정치가 변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과 아군을 가르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고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통합의 정치다. 2025년 대선이 이러한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4월 27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관계자가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여성 폭력의 상징인 신발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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