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전시법인 '외래적성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동원하여 이주자를 적성국의 침입자로 간주하는 불법이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법은 제정 이래 227년간 단 3차례만 실시된 바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이주자 추방을 공언한 트럼프는 2025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과 동시에 초강경 반이민정책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멕시코와 접경지역에 비상사태 선포, 불법 이민 망명 금지, 국경장벽 건설 재개, 교회·학교·병원의 불법 이민 피난처 제공 불허 등의 행정명령이 그것들이다. 그는 또 불법 이민 단속에 소극적인 지방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중단, 해당 지방 공무원 기소 등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는 1기 재임 시 반인륜적인 인권탄압이라는 비판 여론에 밀려 중단했던 불법 이민 부모와 자녀의 격리수용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트럼프는 헌법과 이민-귀화법에 따라 국토안전부, 법무부, 국무부는 미국 남부 국경선을 넘어오는 '불법외래인'을 즉각 축출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정부의 모든 행정조직과 인력을 동원하여 국경을 봉쇄하라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불법 이민을 '침입'(INVASION), '불법외래인'(ILLEGAL ALIENS)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민, 이민자, 이주, 이주자라는 단어를 쓰지 그 같은 표현을 썼다는 사실은 국경을 넘어오는 모든 외국인은 일단 적성국의 침입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입국한 외국인 이주자를 'illegal immigrant'(불법이민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완곡하게 'undocumented'(무서류), 'unauthorized'(무허가), 'non-citizens'(비시민), 'without status'(무신분), 'unlawfully present'(비합법적 체류)와 같은 관용적 표현을 썼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적개심을 드러내 반이민정책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또 학교, 병원, 교회를 피난처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망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사사했다. 불법이주자들이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는 성역(Sanctuary)을 없애겠다는 소리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불법 이민 축출 정책의 그 법적 근거로 1798년 제정된 외래적성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내세우고 있다. 그 법은 대통령이 청문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이민자를 단지 출생국과 시민권부여국만 따져 추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시당국이 적성국의 태생인과 시민권자를 추방 또는 억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법은 전시에 첩보활동과 파괴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역사적으로 오용된 사례가 많았다. 그 법은 전시에도 헌법상의 권리를 위배할 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남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에 따라 어떤 위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은 이주자한테도 오용되었던 전력이 많아 앞으로도 그 같은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전시도 아닌 평시에 외래적성국민법을 적용하는데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불충을 표명하지 않았고 법을 준수했더라도 외국인 체류자는 언제든지 추방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법무부는 미국은 지금 폭력조직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맞서고 있다.
외래적성국민법은 미국이 영국-캐나다에 대항해 싸운 1812년 전쟁, 1, 2차 세계대전 등 전시에 단 세 번 실시되었을 뿐이다. 이주자가 교전상대국이었던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일본, 이탈리아 출신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억류, 추방되었었다. 특히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11만 명의 일본계 이주자와 그 후손들이 10개 수용소에 분산, 수용되었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강제 감금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 추방에 그 법을 적용하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반전시위와 관련하여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했거나,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외국인 학생, 연구자들을 체포, 추방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인 여학생(21세)도 있다. 그녀는 단지 가자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민당국이 영주권 박탈에 이어 신병확보에 나서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무부장관 마코 루비오는 3월 27일 미국 대학가의 반이스라엘 활동과 관련해 300명 이상 외국인의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시법인 외래적성국민법을 적용한 불법 이민 추방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그에 제동을 건 연방판사를 공격했다. 행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사법부와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멕시코-미국국경을 넘다가 USBP(미국국경순찰대)에 의해 검거된 과테말라인 75∼80명을 손에는 수갑, 발에는 족쇄를 채워 군수송기에 태워 송환했다. 그에 맞서 콜롬비아가 이주자들을 범죄인 취급을 하지 말라며 착륙을 거부했었다. 그러자 트럼프가 즉각 관세-비자-금융제재를 통한 보복 조치에 나설 태세를 보이자 콜롬비아가 굴복했다.
국토안전부는 2월 22일 임시체류 허가를 받아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중남미 출신 체류자는 3월부터 그 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53만2000명이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전쟁 또는 정치적 이유로 그들이 미국에 입국해 일시적으로 체류하도록 허용했으나 그 제도가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어 폐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베네수엘라에 이어 2023년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등 중남미 4개국 국적자의 합법적 이주를 돕기 위해 매월 3만 명씩 입국을 허용했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의 정치적 혼란이나 경제적 빈곤을 피해서 미국에 입국을 신청한 이주자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일시적인 체류를 허가했던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이 개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을 도운 혐의로 탈레반의 표적이 되었던 이른바 조력자들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황급하게 철수하는 과정에 탈출하지 못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조력자와 그 가족이 1만∼1만5000명에 이른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지에서 은신처를 전전하며 미국에서 망명 승인이 떨어질 날만 고대하고 있는데 트럼프가 그 절차를 중지시킨 바람에 절망에 빠진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2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를 미국으로 데려갔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침공에 따라 미국으로 피난 간 우크라이나인의 임시체류 지위도 박탈할지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계획에 따라 임시체류 허가를 받아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24만 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들도 추방 위기에 몰려 공포에 떨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한 라틴아메리카 4개국의 이주자에게 2년간 한시적으로 체류를 허용했었다. 그 때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도 수용했었다. 임시체류 허가를 받는 이들은 망명을 신청해 절차를 기다리고 있거나,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인도주의적 이민계획에 따라 입국해 체류하고 있는 상태다.
불법 이민 강제 추방은 트럼프 행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2024년 27만1000명의 이주자를 192개 국가로 추방했다. 이주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도 4년 동안 150만 명을 추방했다. 그 숫자는 트럼프 1기 재임기와 비슷하다. 오바마 1기 행정부도 290만 명을 추방했다.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의 추방 규모가 의외로 컸던 이유는 관용적 이민정책에 따라 불법이주자가 급증했던 탓이 크다.
트럼프의 초강경 반이민정책에 따라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자가 수십 년 이래로 최저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이민법 위반으로 억류, 추방되는 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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