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하지도, 동양학을 하지도, 한자학을 하지도 않지만 한참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의 대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에 대한 존경심을 가슴에 품고 산다. 지난 2021년에야 번역된 <상용자해>는 손때가 묻어간다. 선생을 통하지 않은 중국 고대문화에 대한 이해는 내게 있어서만큼은 어려운 일이다.
<공자전>이 새롭게 출간됐다. 20여 년 전 한글 번역본도 가지고 있다. 이번에 다시 출간되었기에 반갑게 구입했고 다시 읽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은 결코 절판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 장원철과 AK출판사에 대해 고마운 인사를 올려야 한다.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게 1972년인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다음의 선생의 '후기'가 절절하다.
"'천권의 책을 읽은 차가운 인생(讀書千卷冷生涯)'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자 생활 속에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생각이 있다. 학술적 문제를 논하고 있을 때에도 그 의식의 밑바닥에 연결되는 무언가의 현실이 존재한다. 그와 같은 현실이 없고는 좀처럼 연구에 정열을 바칠 수가 없다. 공자가 살던 시대와 지금 시대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나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읽고나니 선생의 후기를 먼저 읽는게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2500년 전의 철인을 탐구해야 하는가. "다만 철인은 끊임없이 그 삶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자기 시대의 체제 안에서의 삶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니 그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역사적으로 그러한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또한 그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우리 자신의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일까. '옮긴이 후기'가 답한다.
"중국인의 삶에 공자만큼 거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다. 그의 주장은 중국의 윤리 및 사회체제의 뿌리로 이천 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의 유산은 중국의 일체의 사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브루스 브룩스, <논어변(論語辨)The original Analects>)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에 대한 이해 없이, 논어에 대한 이해 없이, 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국 문화를, 동양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반복하지만 공자와 논어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의 전통과 현재의 사유 체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내 사유 체계를 지배하는 건 히브리적 사유도, 아테네적 사유도 아닌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사유 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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