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얽히고설킨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AI)에 맡겨 답을 구해도 속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고행의 순례자처럼 그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만 체증에 걸린 우리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물꼬를 틀 수 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한 경제학자와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인구학자들에 따르면 전체인구 감소와 노인 인구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운명과도 같다. 인구감소는 의료수요 총량을 줄이는 요인이 되며 노인 인구 증가는 의료수요 총량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어떤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느냐, 또 짧은 기간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맞춤형 대응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대 초반보다 70대 후반 이상이 10배 병원 더 찾아
한 사람이 병의원을 이용하는 일수, 즉 내원(來院)일수가 연간 어느 정도냐에 따라 의료수요, 즉 필요한 의사의 수가 달라진다. 2019년 통계를 보면 20대 초반의 내원일수가 5일 안팎인 데 반해 75세 이상 후기고령층은 50일가량으로 무려 10배나 차이가 난다. 이런 내원일수가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는 어떤 양상으로 바뀔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경제학자나 인구학자들이 인구변화가 노동, 의료부문 등에 끼치는 영향을 추계한 바를 보면 정확한 의료수요 예측이 어려워서 의료수요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변호사와 함께 의사는 교수나 다른 대다수 직업군과 달리 직군에 진입하는 시기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퇴직하는 시점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고소득 연령층의 건강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의사 가운데 내과, 피부과, 영상의학과 등 비수술 과목 의사들은 70~80대까지 의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철희 교수는 지난 2023년 2월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 제출한 '2021년 장래인구 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 효과 전망' 보고서에서 의사들의 노동시간과 연령대별 의사 생산성 등을 고려해 기본시나리오를 포함해 모두 6가지 의사 수요 시나리오를 시기별로 예측해 제시했다. 기본시나리오를 보면 2035년에는 1만 명이 부족하고, 2050년에는 2만2천 명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의사 수가 많아야 한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해관계, 가치 지향 토대로 합리적 시나리오 선택
우리 사회가 어떤 예측과 어떤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해 의사 수요공급 정책과 초고령사회 보건의료, 그리고 첨단의과학기술 시대에 걸맞은 의료를 구현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만큼 수요와 공급에 관련한 정부, 환자, 의료인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점을 토대로 한 시나리오 선택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갈등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여러 사실과 의료의 공공성, 한국의 현실 등을 토대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한국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제안에 앞서 몇몇 중요한 이야기를 미리 해둔다.
하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우리 의료 현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와 병의원, 특히 대학병원과 대형종합병원은 인구의 절반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로 인해 병상 수가 최근 10~20년 사이 이 지역에서 급증했고 이는 KTX 개통·확장, 광역고속도로 급증과 맞물려 지방의 의료수요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했다. '병상이 의료수요를 창출한다'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보건의료 정책 두 기둥-빈익빈 부익부와 예방 우선
다른 하나는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라는 격언이다.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치료에만 몰두했다. 보건학계에서는 이 격언을 금과옥조로 여겨왔으나 의료계에서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던 말이다. 의사 교육 과정에서도 예방을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증상을 파악해 효과적 치료를 위한 좋은 처방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 왜 그런 질병에 걸렸는지를 알아보지 않으려 했다. 환자에게 관련 질문도 잘 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런 나쁜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현실을 토대로 모두 6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말 많고 탈 많은 의대 정원 증원은 적어도 2035년까지 점진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윤석열식 충격적 방법인 매년 2천 명 증원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해야 하며 그 과도기 기간에는 농어촌 지역 등에서 지역간호사가 예방교육과 기본적인 의료돌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틀 필요가 있다. 또 2035년부터는 의사 감축을 할 수 있도록 의대생 증원과 감원을 의사 수급 상황(추계)에 맞춰 연도별 탄력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의료 30%와 소외지역 진료수가 할증
둘째,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 매년 1%P 비율로 공공의료 분담률을 향상해 20년 뒤 2045년에는 공공의료 분담률 30%를 달성할 것을 제안한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과 대형 지진 등 재난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는 의사 파업 등 사회 질서를 혼란에 빠트리고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비하거나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30%는 준공공재로서 의료의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 확보율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특별법(또는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셋째, 특정 지역(의료 소외 지역인 농어산촌 지역) 진료수가 할증이다. 법으로 정한 지역에서 개원한 병의원에 대해 기본수가에다 10~50% 범위 또는 20~100% 범위에서 할증 진료비를 줘 의료 소외 지역에 병의원이 들어오도록 하는 유인책이 절실하다. 할증 비율은 진료과목, 지역에 따라 차등을 둘 수 있으며 이들 지역에 개원하는 병원에는 시설비(+의료 장비) 무이자 또는 장기저리 융자를 해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공공의대와 의과학전문의대를 신설해야 한다. 공공의대는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등 3개 지역에 각각 한 곳씩 공공의료기관 의사와 군의관 등 2개 트랙으로 운영한다. 공공의대생에게는 6년간 학비, 주거 및 생활비를 전액 지원하고 이들은 의사면허 취득 후(전문의 경우 전문의 취득 후) 6년간 특정 지역 공공의료기관 또는 의료 소외지역 개원의원에 의무적으로 근무토록 한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특별법(또는 기본법)에 관련 내용을 포함한다.
노인 건강 바우처 도입과 건강증진부담금 확대
다섯째, '치료보다는 예방이 낫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건강 바우처 제도를 도입한다. 65세 이상 노인 대상(일정 소득과 재산 기준 초과자는 제외)으로 연간 1인당 30만 원 범위 안에서 건강 바우처를 지급한다. 바우처는 수영장, 헬스클럽, 운동용품 구입, 마라톤 참가 등에 사용할 수 있다. 5백만 명이 대상일 경우 1조5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고 고혈압, 당뇨, 영양 관리 등 보건(건강) 교육을 받는 사람에겐 연간 3만 원 보너스 바우처를 준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에 이를 반영한다.
마지막 여섯째, 건강증진부담금 확대 정책을 편다. 담배 건강증진부담금을 순차적으로 증액해 담뱃값 인상을 통한 흡연율 낮추기에 재시동을 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만 무성했을 뿐 여태까지 실행하지 못했던 술 건강증진부담금 적용을 결심해야 한다. 연착륙을 위해 작은 액수로 시작하고 연차별 증액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담배 안 피우는 금연 사회, 술 덜 마시는 절주사회가 국민건강을 위한 매우 중요한 정책임에도 정치권은 표 계산에 늘 주저했다. 표 유불리를 떠나 이젠 단호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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