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의 생명 사회-초고령사회, 산불 재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산불 대란이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 산림 피해를 냈던 전국 산불 재난이 다수 지역에서 다행히 큰불(주불)의 불길을 완전히 끄는 데 성공해 위기 상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이번 산불은 역대 최대의 인명피해를 냈다. 발생 9일 만에 사망 30명, 부상 45명 등 모두 75명의 사상자를 냈다. 불길을 아직 완전하게 잡지 못한 일부 지역에서 조만간 진화를 마무리하는 대로 재산 피해 정도와 산림 피해 면적 등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 유가족과 부상자, 재산 피해 주민 등에 지원과 보상에 차질 없도록 정부 당국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대형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산불이 발생한 사실 등을 고려하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받을 내용이 많고 아쉬운 대목도 많다. 예방에 실패했고 조기 진화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이번 산불로, 또 불 끄는 과정에서 산불예방진화대원과 지자체 공무원, 산불 진화 헬기 조종사, 주민 등 거의 모든 부문‧직역의 사람들이 숨졌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역대 최악 산불 재난, 고쳐야 할 곳 투성이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국회, 언론, 전문가 단체 등이 나서서 산불 재난에 대응하면서 총체적 난국이 벌어진 근본 원인과 산불 예방, 조기 진화를 위한 제도, 예산, 장비, 컨트롤 타워 작동, 진화 전문 인력, 부처 간 협력, 민관군 협력, 주민 등과의 소통 등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앞으로 이를 어떻게 고쳐나가고 혁신할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때 빠트려서는 안 될 주제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특히 농‧산‧어촌 지역의 고령화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에서 산불 예방과 초기 진화를 위해 어떤 효과적 체계를 갖출지이다. 산불 예방과 진화에 국가가 단기‧중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예산을 투입할 건지, 산불이 확산하는 것을 조기에 막아 대형 산불로 번져 막대한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임도 확대와 수종 등 산림 관리를 어떻게 할지 등도 중요 사안이다.
산불 예방과 진화를 총지휘하는 부처는 산림청이다. 30일 밤늦게 산림청이 이번 산불과 관련해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재난 위기관리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위기 소통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수준을 보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홈피, 국민 알권리보다 청장 홍보에 더 신경
홈페이지 첫(초기) 화면에서 이번 산불로 몇 명이 어느 지역에서 사망했고, 부상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전국지도 상에서 보여주는 팝업창이나 별도의 코너를 볼 수 없었다. 실시간으로 완전히 불을 끈 곳과 끄고 있는 곳, 진화율, 그리고 피해 면적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너도 없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정보, 특히 시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계속 업데이트하며 소통하는 것은 위기 소통의 기본 중 기본이다.
초기 화면에서 이번 산불 재난과 관련해 산림청은 팝업창에서 '산불은 오직 예방만이 최선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산불 예방 수칙 여섯 가지를 그림을 곁들여 보여주고 있다. 초기 본 화면에서는 전국을 대상으로 지난 25일 심각 단계 산불경보를 발령한 사실과 산불 방지 국민 행동 요령, 산불경보 수준을 관심-주의-경계-심각으로 나눈다는 것, 실시간 산불정보로 진화 중 1건이며 진화 완료 3건이라는 것밖에 없다. 더 보기를 클릭해 들어가도 산청 산불 진화율이 100%라는 사실만 있다.
초기 화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안녕하십니까? 산림청장 임상섭입니다'라는 산림청장에 대한 별도의 홍보 코너이다. 평소 같으면 이런 홍보를 하더라도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역대 최악의 산불과 씨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장의 학력, 경력, 상훈을 '청장과의 대화' 코너와 묶어 초기 화면을 통해 홍보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지적이 사소한 것 같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이런 것 때문에 산림청의 위기관리 수준이 매우 낮다는 인식을 국민한테 주기에 충분하다.
국가 재난에도 음모론 장사하는 극우 파렴치들
이번 산불 재난은 산불 원인을 두고 과거 다른 산불 재난과는 달리 유독 황당하기 짝이 없는 유치한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윤석열을 보호하기 위해 탄핵 반대쪽 정치인과 종교인, 유튜버, 언론인 등 수구‧극우 인사들을 중심으로 중국 간첩과 부정선거 음모론, 민주당 내란 음모론을 줄기차게 퍼트리고 있는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새로운 국가 재난이 일어나자 그 연장선상에서 이들은 새로운 음모론을 만들어 윤석열 정권의 무능을 덮으려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에서 이름을 빠트리면 서러워할 인사나 유튜버, 단체가 이번 산불 재난 원인과 관련한 음모론에도 또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아니면 말고 식 주장을 하거나 일각에서 인간 말종,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으로까지 폄훼하는 인물들이다. 황교안 전 총리와 손현보 세계로교회 대표 목사, 세계로교회 주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연사인 전한길 씨,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그리고 부정선거에 개입한 대규모 중국 간첩단 체포 관련 일련의 가짜뉴스로 손가락질을 받은 극우 신문 <스카이데일리> 등이다.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 등 다른 음모론에서 했던 것처럼 거짓말과 가짜뉴스로 품앗이를 하며 거대한 음모론으로까지 문제를 키운다. 이번 산불 재난 때도 마찬가지였다.

황교안, 손현보, 전한길, 가세연 '아무말 대잔치'
황교안 전 총리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큰 산불이 나면 대공과 형사들이 가장 먼저 투입돼 대공 용의점 수사에 나섰다. 불순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 배제해서는 안 된다."라며 간첩 내지는 빨갱이, 반국가세력 등을 겨냥한 듯한 음모론을 불 지폈다. 그동안 수사를 통해 불순세력이 계획적으로 대형 산불을 낸 사례들을 밝혀낸 것을 일일이 열거하면 될 터인데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그동안 엉뚱한 곳을 타깃으로 해 국민 여론을 딴 곳으로 돌리려 공작을 해왔다는 것을 뒤늦게 자백한 셈이다.
손현보 목사도 지난 29일 울산에서 자신이 연 탄핵 반대 집회에서 "짧은 시간 안에 30군 데가 넘는 산불이 하루 만에 일어난 것은, 이거는 자연 발화로 됐다고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라며 누군가 또는 특정 집단이 계획적으로 불을 질러 산불 재난이 시작됐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이번 산불 원인을 당국이나 누가 자연 발화라고 한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자연 발화가 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우리나라 산불에서는 사실상 자연 발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또 자연 발화가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음모론자들은 말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할 터인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부류들이다.
산불이 간첩 소행이거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고향이 안동이어서 발생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도 나왔다. 전한길 씨는 TV조선 유튜브 한 코너에 출연해 "우리나라에 간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또 불 지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을 것 아닌가. 집이나 건물에 불타는 것과 달리 산이라서 워낙 넓은 지역에서 알 수 없는 곳에서 발화, 방화되거나 불이 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 할 수 있잖나. 이거 뭐냐 혹시나 간첩도 있잖나"라고 주장했다. 물증과 증거, 의혹의 단서는 전혀 없고 '아무말 대잔치'만 요란하다.
진정한 국가 존재한다면 가차 없는 처벌을
극우 누리꾼이 촉발한 음모론을 미국 극우 인사가 인용하고, 이를 가로세로연구소 등 유튜버가 소개하는, 그들만의 음모론 풍차 돌리기가 부정선거 음모론 등 다른 음모론에서처럼 이번 산불 재난에서도 재현됐다.
지난 22일 산불 초기에 이미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해 온 한 누리꾼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엑스(X) 계정에 "오늘 산불 총 31곳이다. 이건 테러이고 방화 가능성 518% 본다."라는 글을 올렸다. 518은 아마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기 위해 붙인 숫자인 것 같다. 그다음 날 바로 미국 공군 중령 출신의 극우 인사 타라 오는 엑스를 통해 이 글을 공유하면서 "이번 주에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22일 하루 동안 한국 전역에서 산불 31건이 발생했다. 매우 조직적인 방화로 보인다."라고 한술 더 뜨며 음모론에 부채질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타라 오 발언을 소개하며 음모론을 재확산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지난 23일 영상에서 "(이번 산불의 원인은) 자연 발화가 아니다. 누군가 일으킨 인공 발화다. 북한 공산당, 중국 공산당이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음모론 대열 앞줄에 섰다.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내놓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 국민이 염원하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 흩뿌리는 정도였지 불을 끌 수 있을 만큼의 단비는 지난 열흘 동안 내리지 않았다.
국가적 재난에 희생자와 피해자에게 위로를 보내지는 않더라도 몰염치한 선동만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를 바라는 것은 사치임에 틀림이 없다. 재난 희생자와 그 유족의 가슴을 후벼파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진정한 국가라면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차 없는 처벌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 악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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