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4일(이하 현지시간) 두 번째 임기 첫 연방의회 합동 연설을 했다. 이번 연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 의제 및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국내정책과 관련하여 불법 이민, 정치적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연방정부 개혁 및 재정적자 감소, 경제 회복 및 물가 안정, 에너지 정책 등이 언급됐고,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관세, 조선업,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중동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의제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대선 캠페인 기간과 당선인 시기에 중점적으로 거론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 주요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빠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 회복 및 물가 안정을 위한 국내적 기반 확보
이번 합동 연설의 전반부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주요 국내 정책 의제를 거론하는 데 활용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미국 경제를 살리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며, 에너지 가격의 인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취임 첫날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 내 석유와 천연가스의 적극적인 채굴을 허가했으며,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단된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재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에 한국,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이 수조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미국 내 물가 안정을 위해 에너지 가격 인하와 더불어 연방정부 지출낭비 축소, 구조조정 및 재정적자 감소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정부 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의 세금 낭비 적발과 자금 회수 조치를 통해 연방정부의 부채를 축소하고 인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부풀리는 비대해진 관료조직으로부터 권한을 되찾아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며,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연방 공무원들은 즉시 해고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더불어 연방정부의 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투자이민(EB-5) 제도를 폐지하고 500만 달러에 미국 영주권을 구매할 수 있는 '골드 카드(gold card)'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제도를 통해 연방정부의 적자를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부유한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와 많은 세금을 내고 많은 사람을 고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무대에서 미국 이익의 공세적 추진
관세, 조선업,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중동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정책 의제들이 이번 합동 연설의 후반부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 및 대미(對美) 불공정 무역관행을 개선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많은 나라들이 미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왔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불공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가 부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멕시코와 캐나다를 예로 들며 더 이상 미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불공정한 대접을 받지 않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덕택으로 지난 몇 주 사이에 1조 7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 내 투자가 유치되었다고 밝혔다. 소프트뱅크(Softbank), 오라클(Oracle), 애플(Apple)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발표했다고 언급하고, 그들은 관세를 내지 않으려고 보조금 없이도 미국 내에 공장을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하원의장에게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CHIPS Act)을 폐지하고 남은 자금은 연방정부 부채 감소를 위해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국방 산업 기반을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 내 조선업을 부활시킬 것이며, 이를 위해 백악관에 조선업 부서를 신설하고 특별한 세제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은 이번 합동 연설에서 재확인되었다. 그는 최근 미국 기업이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희생과 자본으로 건설된 파나마 운하를 중국으로부터 되찾았다고 밝혔다.
한편 그린란드 주민들의 독립 결정권을 지지하며, 그들이 미국을 선택한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그린란드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수천억 달러를 보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은 3500억 달러를 지출한 반면, 유럽은 1천억 달러를 썼다고 지적하고 이를 공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었으며, 조속히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양측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가장 획기적인 평화 협정의 하나인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 체결되었다고 언급하고, 해당 협정을 토대로 2기 행정부에서 중동 전체 지역을 위한 보다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합동 연설에서 북한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김정은 위원장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언급하며 북·미 간 정상외교 재개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 하겠다.
동맹 여부를 따지지 않는 실리외교의 본격화
이번 합동 연설은 출범 초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적 목표가 미국의 경제적 이익 증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대내적으로는 미국 내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에너지 가격 인하와 연방정부 지출 낭비 축소 및 재정적자 감소를,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두 개 전쟁의 출구 모색을 통한 불필요한 비용 지출 감소와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미국의 경제적 성장을 이끌기 위해 에너지 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에너지의 적극적인 채굴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 내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물가 안정 및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기여하는 동시에 추가 관세 부과에 따른 미국 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잉여 에너지의 수출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줄이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3대 산유국이 미국, 사우디, 러시아라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양국과의 관계 개선 및 협력 증대를 통해 미국에 우호적인 에너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 및 대외적 영향력 담보를 위한 핵심적인 토대가 된다 하겠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는 동맹 및 가치 외교를 중시했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동맹, 파트너, 경쟁국, 적성국 여부에 관계 없이 협력을 도모하는 실리외교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출범 초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개선 및 협력 증대 움직임, 그리고 동맹 여부에 상관없이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큰 순서대로 관세를 부과하는 움직임으로 구체화 되면서 전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러 협상을 중심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전쟁의 조속한 종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보다는 상대적 우위를 지닌 러시아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의 반발이 불가피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과의 관계보다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에 무게를 싣고 러시아를 옹호하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즉, 동맹을 중시하며 우크라이나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던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고려될 수 없었던 러시아 중심의 종전 협상이, 실리를 우선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채택된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토대로 사우디를 중재자로 선택하여 종전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는 에너지 가격 인하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중동 지역 세력 균형 재편을 위한 핵심적인 파트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토대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개선을 목표로 하는 '아브라함 협정 2.0'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개선은 이란에 대한 공세적인 정책과 맞물려 중동 내 새로운 세력 균형 및 역내 평화 정착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구상이 성공한다면, 미국에 밀착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진영의 역내 영향력 확대와 적대적인 이란 세력의 영향력 축소를 통해, 미국이 중동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역내 영향력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중동 내 새로운 세력 균형은 역내 리더십 유지를 위해 미국에 훨씬 작은 역할과 기여를 요구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 보다 큰 역량을 중국 견제에 투사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줄 것이다.
한편 동맹 및 파트너십 여부에 관계 없이 대미(對美) 무역흑자 규모를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양자 협상을 통해 미국의 통상 이익을 담보하고자 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움직임은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미국의 동맹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접한 이웃 국가이자 오랜 기간 긴밀한 경제적 파트너십을 지속해 온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관세를 수단으로 미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조롱하는 모습, 그리고 무역수지 적자와 소극적인 재정적 기여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미국의 움직임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과 파트너십의 전략적 중요성보다 직접적인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기 행정부 시기보다 더욱 강력해진 트럼프 발 관세전쟁에 당혹스러운 동맹 및 우방국들은 보복 관세, 미국 제품 수입 확대 및 미국 내 투자 증대 등 대응 방안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한편 미국 리더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 감소와 전략적 협력을 통한 대미(對美) 관계 관리
출범 초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공세적으로 추구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한국을 주요 대상국 목록에 포함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멕시코, 캐나다, EU, 일본 등에 이어 주요 대미(對美) 무역 흑자국인 한국은 지난해 557억 달러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또한 이번 합동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인도, 중국과 함께 한국을 불공정한 관세 부과 국가로 언급했다. 한국을 향한 미국 발 관세 충격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최근 부과된 25%의 보편 관세를 필두로 4월 초 예정된 상호 관세를 통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 관세와 더불어 자동차,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가 예고됨에 따라 우리의 통상 이익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세적인 통상 정책 기조에 맞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무역수지 적자 감소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미 양국 간 에너지 협력 확대를 통해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미국 산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늘려 국내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및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를 도모하고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국 내 일자리 및 경제적 이익 창출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향후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는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감소 노력과 더불어 조선업, 원자력, 방산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 담보를 위해 협력이 필요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미국과의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합동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의 부흥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 간 군사적·상업적 목적의 선박 제조와 유지, 보수 및 운영을 위한 협력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과 더불어 조선업 관련 한국과의 협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미 양국 간 조선업 관련 협력 증대는 우리의 경제적 이익 확보에 기여하는 동시에 미국 발 통상 압박 완화를 위한 촉매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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