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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석방'이 '피의자의 인권'을 오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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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석방'이 '피의자의 인권'을 오염시켰다

[인권의 바람] 윤석열 석방이 보여준 특권

법원과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온갖 특혜를 주는 행위를 하면서, 이를 '피의자 인권'으로 일컫는 모습은 인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분통 터지고 답답한 일이다. 윤석열의 석방은 인권의 특성인 보편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인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보편성을 갖는데, 윤석열에게 적용된 '피의자의 인권'은 오직 그에게만 작동한다. 인권의 언어가 오염되고 기준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윤석열을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해 구속취소를 판결했다. 형사소송법 제정된 이후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는 산정 방식은 71년 만에 처음이다. 또한 법원은 체포적부심에 걸린 시간만큼 구속시간을 연장하도록 한 명문 규정이 없다며, 신체의 자유,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운운하며 "(법조문을) 피의자에게 유리하도록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검찰은 이러한 이례적인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법원 결정은) 형사소송법 규정에 명백히 반할 뿐 아니라 수십 년간 확고하게 운영된 법원 판결례 및 실무례에도 반하는 독자적이고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반대했음에도 심우정 검찰총장은 석방 지시를 했다. 8일 윤석열은 웃으면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옥에서 풀려났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주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은 취임 이후 계속 강조해온 검찰의 기본 사명"이라고까지 했다.

서부지법을 습격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현재 구치소에 구금자들이 구속취소 소송 움직임이 있자, 대검찰청은 11일 전국 검찰청에 종전 방식대로 피의자 구속 기간을 '시간'이 아닌 '날' 단위로 계산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재판부와 검찰이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서 혜택을 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윤석열 지지자나 국민의힘, 또는 극우세력은 윤석열 체포영장이 나올 때부터 줄곧 '피의자(피고인) 인권', '피의자 방어권'을 운운했다.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조계의 명언은 진공상태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신(신체)을 가두는 공권력을 작동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권력에 비해 한낱 개인의 힘은 약해서, 국가가 누군가를 처벌하려고 하면 그만큼 증거와 죄가 명명백백하게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피의자의 인권이나 방어권에 해당하는 수단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지, 모든 권력과 수단을 동원해 법 기준을 흔들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변호인 선임권이나 진술거부권, 체포적부심, 구속적부심 등의 방어권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판결처럼 '윤석열에게만 적용'되는 구속기간 산정 방식은 피의자의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다. 더구나 윤석열은 경호처의 물리력을 동원해 체포영장을 거부하면서까지 적법절차와 법원의 결정까지 무시하며 그동안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 자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폭력의 가해자를 풀어주는 것은 불처벌로 이어질 수 있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아무 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중대성이나 증거 인멸 등이 고려돼야 한다. 헌법기관인 국회를 군대를 동원해 장악하려고 한 것은 내란 행위이라는 중범죄이므로 불구속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은 헌법에 반하는 위헌 행위이자 친위 쿠데타기 때문이다. 포고령에 있는 조치들은 시민의 기본권(정치활동,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의원과 보좌관 외에도 많은 시민이 맨몸으로 총을 든 군인이나 장갑차를 마주했다. 용기 있게 막아섰지만, 그 공포는 방송으로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군은 종이관 1000개를 주문했고 영현(시신 이동 보관 업체)을 알아봤다고 한다. 계엄군이 비상계엄 과정에서 사망자 발생까지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다. 당시 신속하게 국회가 열려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비상계엄이라는 것은 평화나 민주주의와 대치될 수밖에 없다. 군대라는 물리적 폭력으로 국가가 굴러가도록 하는 일이 비상계엄이고, 평화시에 행사한 위헌적인 비상계엄은 국가 폭력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국제사회에서는 국가 폭력, 국가 범죄에 대한 불처벌에 맞서 투쟁하자고 결의했다. 유엔은 '국가 폭력 불처벌에 대한 투쟁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국가는 인권침해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소멸되지 않도록 부정주의 주장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모두가 생중계로 본 국가 폭력에 대해, '비상계엄은 통치 행위'라는 말로 범죄 행위를 부정하고 있는 현실과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1985년 제정된 '범죄 및 권력남용 피해자를 위한 정의에 관한 기본원칙 선언'에서는 피해자의 요구에 대한 사법 및 행정절차가 응답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형사사법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의 관점이 이번 내란사건에서 적용되고 있는지 물어야 하고, 윤석열 석방은 피해자의 관점이 전혀 없는 결정이다.

그날의 일을 윤석열의 말처럼 '아무 피해가 없었다"는 궤변에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날 사망자가 없던 것은 우리가 저항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한 시민의 덕이지 비상계엄이 국가 폭력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종이관을 준비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국가 폭력의 우두머리 윤석열을 석방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 일인가.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국가 폭력의 가해자 처벌이 진실과 정의를 위한 권리 실현이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국가 폭력에 대한 불처벌(Impunity)은 인권 침해와 부정의를 확산시킨다. 국가 폭력의 가해자를 풀어주는 것을 보며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할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증거 인멸도 가능하고 현직 대통령으로서(직무가 정지되기는 했으나)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공정한 수사나 재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중에 아직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재판 선고기일은 늦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하다. 현직 대통령이기에 만약 그가 탄핵이 안 된다면 다시 행정권력을 이용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온 독재자가 더 무섭다는 말까지 돌 정도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모르는가.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무력으로 제한하려고 했던 행위가 위헌이고 파면 대상임을 분명히 해서 헌법정신을 지켜야 한다. 빨리 석방된 윤석열에게 파면을 선고하는 것이 재발을 막는 일이다.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각계 긴급시국선언 집회에서 현수막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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