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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윤석열 외교', 세계 정세에 맹렬히 '역주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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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윤석열 외교', 세계 정세에 맹렬히 '역주행' 중

[박세열 칼럼] 과연 한국 외교에 희망이 있는가?

윤석열 정부는 과연 세계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119대 29,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담한 결과보다 더 놀라온 건 대통령이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고백한 점이었다. '저희'라는 표현은 이 정부 외교 안보팀을 싸잡아 말한 것 같지만, '저희'에 포함되지 않은 그룹에선 이런 참담한 결과를 예측한 사람들도 많았다. 윤 대통령이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외교'라고 한다. 11월 28∼30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긍정 평가 이유 1위는 '외교'(42%)였다. 2위는 "열심히 한다"(6%)다. 이 정부의 '외교'는 정상외교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저도 근본적인 의구심의 벽에 부딪혔다.

11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만나 미중간 군사 소통 채널을 복구하기로 했다. 대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보였지만, 일단 두 정상이 군사 충돌 가능성을 줄였다는 점에서 전 세계는 의미를 부여했다.

코로나 이후 시진핑의 중국은 불안하다. 부동산 버블과 경기 침체를 우려한다. 경제 구조조정의 숙제를 안고 있으며, 이 불안을 해소하려면 미국과 오래 척을 져선 안된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재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중동, 두 개의 전선 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중국을 대하는 미국 정가의 생각은 복잡하지만, 바이든 입장에서 중국과의 갈등이라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둬선 안된다. 의회와 유권자들에게 '관리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양국 정상은 이런 배경 위에서 최소한의 대화 재개에 합의했다.

사전 정세 분석에 실패한 후 미중 관계에 온기가 돌자, 비로소 한국의 대통령도 몸이 달았다. 한중 정상회담을 꽤 공들여 추진했다. 그러나 시진핑에 '패싱' 당했다. 중국은 미국을 방문하며 한국 담당 간부들을 대동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시진핑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과 관계 관리만 제대로 하면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될 '하위 변수' 정도로 취급된 것일 수 있다. 한국은 어차피 미국을 따르게 돼 있으니까.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게 대미, 대일 외교에 '올인'한 윤석열 외교의 현 주소다.

나아가 역주행이다.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의 틈바구니에 훈풍을 불어 넣으려 시도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과 관계에서 '적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것을 이유로 11월 22일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은 곧바로 GP에 병력과 중화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마스와 이스라엘도 24일 일시적으로 휴전했고, 연장을 위해 협상을 하려고 한다. 최소한 '출구'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태도다. 한반도에서 군사 긴장이 고조되는 건 우크라이나 전선과 중동 전선에서 길을 잃고 있는 미국에게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식 외교는 '적대 정책'에서만 자율성이 불필요하게 발휘된다.

9.19 합의 파기라는 중대한 결정으로 내달리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장과 핵심 포스트의 간부들이 날라갔다. 아무리 봐도 엉성하고 앞뒤 맞지 않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정권 출범 2년도 안된, 대통령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국정원에서 (언론에 드러난 것만) 두 번의 인사 파동이 났고, 북한과 대결 구도를 확립하려고 전임 정부에서 만든 '평화 협정'을 파기하고 있는 와중에 세 번째 인사 파동으로 국정원장을 날리는 게 이 정부 외교 안보팀의 실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처럼 중국과 각을 세워왔던 호주의 행보와 한국의 행보를 비교하면 흥미롭다. 자유당 스콧 모리슨 전 총리가 중국에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조사를 요구하면서 중국의 무역 보복을 부르는 등 미국과 함께 반중 전선의 첨병이 됐던 호주는, 지난해 5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중국과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갈등이 중국 호주 양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에 호응해 간첩 혐의로 억류한 호주 언론인을 석방했고, 수입 규제를 점차 풀며 분위기를 맞춰 조성했다. 그리고 앤서니 앨바니즈 호주 총리는 지난 11월 6일 7년만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고,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을 만났다. 양국 관계의 앙금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경제 분야에선 양국 모두 실리를 챙기고 있다.

이런 수준의 외교력을 윤석열 정부에 기대할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부랴부랴 미국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동은 없었다.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유승민)가 여권에서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무시됐다. 실리가 아니라 '의리'를 중시하는 대통령은 본인이 '적대적'이라 분류한 인사/세력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격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반중 정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악수를 둬 왔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들은 '반중반북'을 구호처럼 사용하고, 지도부는 이걸 즐기며 국내 정치에 이용해 왔다. '중국에서 문재인 혼밥' 따위 밈 수준의 선동을 방관했다.

시진핑에게 패싱 당한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올해만 7번째다. 현재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윤 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TV도쿄>가 실시한 여론조사(24~26일)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30%였다. 2021년 10월 기시다 체제 출범 후 최저치다.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은 62%를 찍었다. 지금 당장 총선이 실시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총리와 한 해에만 7번이나 만날 이유가 무엇인지 또렸하지도 않다. '엑스포 유치' 지지를 끌어냈다고 하는데 본투표 결과는 119대 29, 처참했다.

실수도 잦다. 국빈 방문으로 떠들썩하게 영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만난 보수당 리시 수낵 총리도 위기의 지도자다. 여론조사에서 그의 호감도는 11% 수준(YouGov 조사)이고 비호감도는 50%를 돌파했다. 영국은 지금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가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22일 공식 홈페이지 내 '사진뉴스'에 "11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홀본 세인트판크라스 노동당 당수를 접견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사실은 유튜버들이 찾아냈는데, 홀본 세인트판크라스는 노동당 당수 키어 스타머의 지역구 이름이다. 지금은 바로잡혔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나토 순방 중에는 영부인이 명품샵에 들른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된 걸 기억한다.

미중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패싱'을 당하고,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일본 총리와 7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외교적 성과도 불분명한 '국빈 방문'의 화려함만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장식한다.

지금 한국의 외교는 그 어느때보다 '정상 외교'에 몰입하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실도 그렇고 지지자들도 '대통령의 외교'를 잘 하는 분야로 추어올린다. 정상외교에 어느 정도 진심이냐면, 지난 9월 유엔총회가 열렸던 뉴욕에서 닷새간 47개국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왜 정상 외교에 그렇게 집착할까. 국내 정치에서 무능한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정상외교는 화려하다. 최소한 '환대'를 깔고 간다. 영국 프랑스를 다녀온 후 20일도 채 되지 않는데 네덜란드로 '국민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상외교엔 여러 장단점이 있는데,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 사례는 '장점'이 부각된 좋은 교재가 될 수 있겠다. 외교 실패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후 대통령은 "저 역시도 96개국 정상과 150여차례 만났고, 수십개국 정상들과 직접 전화 통화도 했지만, 민관에서 접촉하며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맞다. 모든 게 윤석열 대통령 탓이다. 엑스포 경쟁 상대에 '오일머니'와 '독재국가' 이미지를 씌우고 '결선에 가면 세계의 자유 진영(유럽)이 우리를 선택할 것'이란 낙관적 이분법으로 표계산을 한 걸 보라.

윤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는 국민 중 42%가 잘한다는 이유로 '외교'를 꼽았는데, 그 상황이 이런 수준이다. 세계 정세에 대한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 떨어진 판단 능력으로 다시 정상 외교에 나선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고 어느세 '의전'에 파묻힌다. 악순환이다. 정상 외교를 줄이고, 일선 외교 시스템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게 맞다. 내치가 안되니 외치에 몰두하는 것 같은데, 틀렸다. 내치(지지율)가 뒷받되지 않으면 외교도 안된다. 정상외교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이념 편향 참모에게 휘둘리면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고 있다. 외교 안보 정책에서 홀로 역주행 중인 윤석열 호를 우린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한국 외교에 희망이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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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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