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경계를 뒤흔드는 기후재난
장마가 본격화되면서 여름 폭염과 홍수, 수해 걱정이 앞선다. 올해부터 시작된 엘리뇨 현상으로 온도는 더 올라가고 극단적인 날씨는 한층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지난해 8월, 100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과 동작구 상도동 50대 여성이 희생된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가 더 자주 극단적 날씨 변화를 일으키고 그 결과 기후재난이 훨씬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한 전기요금으로 올 여름은 폭서가 길어지면 냉방비마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갖는 전환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라는 두 가지 위험에 주목한다. 전환리스크는 기후위기 완화를 위해 에너지 전환이나 산업전환 등을 하면서 감수해야 할 전환비용에 관한 이슈다. 물리적 리스크는 당장 극단적인 날씨변동 등으로 직면한 기후재난 위험이다. 예상보다 기후대응이 늦어지면서 최근 물리적 리스크가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되었다. 지난해 반지하 사태나 포스코 대규모 침수도 모두 이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여름 홍수로 반지하나 저지대 주거지가 침수되는 문제는 복지이슈일까 아니면 기후이슈일까? 겨울 난방과 여름 냉방을 위해 공급하는 에너지 요금 정책 역시 복지정책의 영역일까 아니면 기후대응정책일까? 점점 더 강도와 빈도가 심해지는 기후재난은 반지하처럼 기존에 취약했던 복지사각지대를 드러내줄 뿐 아니라, 포스코 침수처럼 안전한 영역이라고 간주되던 곳까지 위험지대로 바꿀 수 있다.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심화되는 기후재난이 점점 더 기존에 구축해놓은 복지의 경계를 허물면서 사회적으로 안전한 지대를 줄여나가게 될 것이고 더 높은 복지안전망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더욱이 거듭되는 기후대응 실패로 인해 위험 한계선인 1.5도 가드 레일이 2035년 이내에 붕괴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전망이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복지는 그 때의 기후재난에 견딜 만큼 복지 방파제를 미리 준비하고 있을까, 아니면 대책 없이 사회붕괴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후가 복지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복지–성장–전환의 트릴레마
이처럼 최근 강도와 빈도가 심화되는 기후재난이 기존 복지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상황이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와 기후/생태의 관계는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복지와 기후가 서로 선순환적인 영향을 주고받을지에 대한 고민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엘로이 로랑(Éloi Laurent) 등은 '복지'와 '성장', '생태전환'이라는 세 가지 과제의 트릴레마(trilemma)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유엔이나 OECD 등 국제기구들에서는 경제성장과 복지, 생태전환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함께 달성되어야 하는 목표처럼 제기되었다. 유엔이 2015년 제안한 지속가능발전(SDGs) 17개 목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과연 경제성장, 복지, 생태전환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전부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셋 중에 기껏해야 두 가지만 실현가능하다는 트릴레마의 문제제기가 된 것이다.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은 완전고용을 매개로 한 경제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에 주목했지만, 이 선순환이 생태계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과 연결되어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대체로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군의 생태경제학자들과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이제 복지가 경제성장이 아니라 생태전환과 손잡고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미래에 구축되어야 할 복지가 경제성장에 의존하기보다는 생태시스템 안에 탑재되어 생물권의 재생능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복지국가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초에 20세기 복지국가는 확장적 경제모델에 기반했던 성장의존형 복지국가이면서 화석연료 시대의 복지국가가 아니던가? "경제성장의 존재 때문에 서구 국가는 분배와 정의의 기본적인 문제에 맞서지 않고 지금까지 혁명 없이 버텨왔다"는 탈성장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의 말처럼, 현대복지국가는 시장에서의 첨예한 분배갈등을 어느 정도 회피하는 대신, 경제성장의 과실을 세금으로 거둬 2차 분배에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복지국가 토대인 경제성장에 덜 의존하면서도 복지국가를 과연 어떻게 작동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엘로이 로랑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처음 복지국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윤곽을 잡아나가던 시기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거나 경제가 안정화되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경제성장도 불안정했고 극도의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 등으로 점철되었던 시기였다. 실업급여를 포함한 각종 복지정책은 이런 상황에서 출현했고, 역으로 이들 복지정책들의 도입으로 노동생산성이 자극되어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경제성장의 전리품이 아니라 선진국이 되는 전제조건이었고 성장의 주요 근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45년 이후 성장주의가 국가정책으로 굳어지고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라는 공식들이 퍼져나가면서, 어느새 복지국가가 경제성장률에 의존하는 것처럼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후재난 → (기후대응까지를 포함한) 복지지출 증가 → (재원조달위한) 더 많은 경제성장 요구 → 기후재난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좋은 복지는 덜 성장에 의존한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현실에서 이제 복지는 생태와 복지의 선순환을 먼저 고려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필요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무리한 경제성장으로 지구생태계가 복지를 위협하도록 자초할 것이 아니라, 지구생태계가 만들어주는 안전한 삶의 공간확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무관하게 시민들에게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정책과 기후위기를 완화시키는 생태정책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안전한 공간에 머물도록 하자는 '도넛경제' 정책이나 '1.5도 라이프스타일' 정책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분배정책의 부실함을 성장정책으로 보완하려 했던 지금까지의 경로에서 벗어나, 파이를 나누는 분배정책에 과감히 도전한다면 그만큼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압력은 줄어들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 기후에 미치는 악영향도 줄어서 기후재난을 위한 사회적 지출의 필요성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지출 – 더 많은 복지'라는 악순환이 아니라 '더 적은 지출 – 더 나은 복지'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해 줄 수도 있다. 이 대목이 기존의 '성장 – 재정여력 확대 - 복지확대의 선순환' 대신에, 미래에 작동되어야 할 '선제적 복지지출- 성장 필요성 감소 - 기후위기 완화 - 안정적 복지 유지'라는 <복지와 생태의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우주의 물질세계에서도 특정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궤도를 이탈하려면 막대한 추가적인 힘의 작용이 필요한 것처럼, 기존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이제 우리는 과거처럼 고성장을 하고 싶다고 할 수는 있는가? 10%성장을 했던 아득한 과거는 물론이고 3%성장률을 기록했던 2010년대도 어느덧 지나갔으며, 올해 성장률 예상치 1.5%가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도 이제 1%수준의 성장, 또는 제로성장에 수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속적인 고성장이 이제 더 이상 원한다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지금이야말로 성장 없이도 지속가능한 복지, 복지와 생태가 선순환 되는 미래를 기획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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