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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尹을 바꿔치기한 일본의 '배려'…한국은 배려 받아야 하는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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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尹을 바꿔치기한 일본의 '배려'…한국은 배려 받아야 하는 나라인가

[박세열 칼럼] 일본 관료의 걱정 "尹정권이 쓰러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 정부가 처한 외교적 상황이 어떤지, 윤석열 정부 사람들은 과연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 이 의문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는다. 지난 3월 1일 3.1절 기념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3월 6일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해법 일방적 발표,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까지 "좋아, 빠르게 가"를 외쳤지만, 일련의 외교적 수사들 속에서 하나의 감정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본 언론의 반응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정말 한국은 '배려'를 받아야 하는 나라인가?

지금 일본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느라 바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저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8일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한국 야당한테 호된 비판을 받고 있으며,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이런 윤 대통령의 입장을 배려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 신문은 9일 사설에서 "더 직접적으로 반성과 사죄 의사를 밝혀 자국 내 비판을 각오하고 대일 관계 개선에 나선 윤 대통령의 기개에 응해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썼다. <요미우리> 신문은 9일 사설에서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은 윤 대통령의 정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 내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다.

주객전도의 어지러운 글자들 속에서 핵심은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사과 문제, 그 자체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배려를 목적으로 하는 기시다 총리의 ' 입장 표명'에 대해 일본 언론이 느끼는 조바심이다. 여기에서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적 비극은 증발하고, 그 자리에 한국 여론에 두들겨 맞고 있는 새로운 '피해자' 윤석열 대통령이 위치한다. 피해자를 향해야 할 일본의 배려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이 정치 공학적 위로에 "진정성 있다"(박진 외교부장관)고 평한 관료는 한국 관료다. 기이한 현상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기시다 총리는 과연 누굴 위해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을 한 것일까?  

기시다 총리가 말한 것은 '자연인 기시다'의 '위로'이다. 사실 개인적 '동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총리로서 기시다는 "역대 정권의 인식을 계승한다"는 말 이외에 강제동원과 관련해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국 일본'의 사과이지, '자연인 기시다'의 동정과 위로가 아니다.

그런데 이걸 두고 한국의 대통령은 "한국이 먼저 여기에 대해 꺼내거나 요구한 바가 없는데 먼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서 감사하다"고 깍듯하게 평가했다. 위안부 피해자 앞에서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겠다"던 후보 시절의 대통령은 없었다. 한국의 외교부장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의견을 표한 것"이라고 평하고 기시다 총리에 대해 "따뜻한 마음의 표현과 진정성 있는 행동이 돋보였다"고 상찬을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두고 "한국 국민에게 진심을 전할 방법을 홀로 고민하고 결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각시킨다.

한국 시민들은 기시다 총리의 '홀로 고민'이나 '결단'과 같은 걸 바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한국인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로 일본인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것은 젖은 모래 위에 탑 쌓기다. 역사는 정체성의 문제다. 정체성은 존재에 관한 문제다. 존재의 문제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다. 먹고 사는 것도 존재가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 외교와 정치의 근본은 '국민(시민) 존재'에 관한 문제다. 한 나라의 '1호 외교관'은 먼저 한국 시민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 후에 외교 상대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다. 윤 대통령의 '빠르게 가는 외교'란, 결국 절대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외교다.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체성의 문제와 인간 존립의 문제는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한일 교류와 과거사 문제를 투트랙으로 다뤘던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깨닫고 있는 건 오히려 일본이다. 강제 동원 피해자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 언론과 일본 관료들은 오히려 '윤석열식 외교'가 '한국의 위태한 여론' 위에서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지지> 통신은 9일 자민당의 각료 경험자가 "문제는 윤 대통령이 (한국 정계에서) 소수파가 아닌가, 라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기시다 총리 주변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 있게 '빠르게 가'를 외치지만 정작 상대국 관료들은 낮은 지지율 하에서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부의 '기개'에 대해 우려하는 형국. 

"윤석열 정권이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그들의 우려처럼, 역사를 거스르는 발언과 행위에 대한 '복원력'은 매우 힘이 세다. 정진석 의원은 "임기가 4년 남았다"고 일본 정부를 안심시켰다지만, 4년 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는 추후 일본의 '대한국 외교'에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다. 우리 외교 입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일본은 강제 동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때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도록 몰릴 것이다. 

여론을 거스른 외교의 후과는 과거 정부에서 익히 경험했던 일이다. 오히려 보수 정부에서 한일 관계는 악화돼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에 유화책을 폈다 독도 방문을 통해 일거에 자신에 덧씌워진 '친일' 이미지를 해소하려 했지만 거대한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걸 이어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자 정상회의에서 일본 총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더니, 기시다 당시 외무상과 '불가역적인' 위안부 협상을 타결짓고 스스로 무너졌다. 역사의 복원력(resilience)은 강하게 작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본 저자세 외교의 '후과'가 벌써 걱정된다. 

윤 대통령은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이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와 완전히 다른 한국의 시민들은 '자존감'을 중요시 한다. 그 자존감의 문제를 '대일 콤플렉스'(정진석 의원)의 문제로 치환한 것은, 윤석열 정부와 여권이 역사의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 때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한일 정상회담과 배상금에 목을 매던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리하여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배려받아야 하는 나라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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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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