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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이 드러낸 케이팝 위기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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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인수전'이 드러낸 케이팝 위기 의식

[케이팝 다이어리] 케이팝 위기론, 위태롭지 않은 내일을 위하여

<프레시안>이 케이팝(K-Pop)을 다루는 비평 코너 '케이팝 다이어리' 연재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케이팝 다이어리'는 케이팝을 깊이 있게 뜯어보는 코너입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이종임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 위원, 이지행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이 돌아가며 케이팝 음반 비평에서부터 산업 분석, 팬덤 해석에 이르기까지 케이팝을 구성하는 이모저모를 해석해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큰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월과 3월 내내 '케이팝 위기론'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주식 지분을 인수한 하이브와 현 경영진의 지지를 얻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케이팝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기획사가 휘청이며 내부분열하는 모습에 불안감을 느꼈다. SM 인수전이 카카오의 승리로 마무리되고서도 우려는 그대로 남았다. 하이브 박지원 CEO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며 성장세 둔화를 인정했고, 방시혁 의장 역시 관훈포럼에서 케이팝을 "골리앗 3사 틈에 있는 다윗과 같다"라고 표현하며 위기를 공론화했다.

케이팝은 정말 위태로울까? 국내외 시장에서는 승전보가 쏟아진다. 하이브, SM, YG, JYP 등 대형 기획사들은 매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경신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 소속된 아이돌 그룹들은 앨범 한 장을 낼 때마다 기본적으로 수십 또는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2022년 케이팝 음반 판매량은 7419만 장으로 지난해보다 29.9퍼센트(%)나 증가했으며, 그 중심에는 500만 장 이상 앨범 판매를 기록한 방탄소년단, 스트레이키즈, 세븐틴과 걸그룹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블랙핑크 및 아이브가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개척한 빌보드의 문턱도 낮아졌다. 스트레이키즈, 블랙핑크,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올랐고, 뉴진스, 피프티피프티는 핫 100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4월 4일에는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스타디움 공연을 포함한 월드 투어를 진행하는 트와이스를 필두로 많은 그룹이 세계 단위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방시혁 의장은 화려한 숫자가 실은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이브를 세계 음악 시장을 지배하는 유니버설, 워너, 소니 뮤직 그룹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따지면 세계 음반 시장에서 케이팝의 매출 점유율은 2%에 불과하다. 문제는 음반 수출 성장률이 2020년대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현재 앨범 판매량도 다양한 포맷으로 다량 구매를 유도하는 전략의 성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케이팝 팬덤은 발매 후 일주일 동안의 앨범 판매량인 '초동' 수치로 그룹의 흥행을 점치는데, 때문에 첫 번째 주 화력은 상당하지만 다음 주가 되면 급격하게 사그라드는 상황이 반복된다.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케이팝 그룹들이 장기집권에 실패하는 이유다. 방탄소년단의 'Dynamite'와 'Butter'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확실하게 인기곡으로 군림했던 케이팝 노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방 의장이 경쟁 장르로 언급한 라틴팝과 아프로비츠를 살펴보면 케이팝의 성과는 더욱 초라해진다. 두 장르는 영미권 팝 시장 외부에서 방대한 스페인어권 인구와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하여 오늘날 대중음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 20곡 중 4곡이 스페인어 노래였다. 아프로비츠는 유행에 힘입어 영국과 미국 양국에 독자적인 차트를 뚫는 데 성공했다. 케이팝이 배드 버니, 로살리아, 버나 보이, 레마 등 음악가들에 비해 유명세는 앞설지 몰라도 그들이 쌓아온 음악 커리어와 문화 콘텐츠의 파급력,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창의성에서는 턱없이 모자란 게 현실이다. 케이팝이 라틴팝과 아프로비츠 장르를 채택하는 경우는 많아도 라틴팝과 아프로비츠, 영미권 팝이 케이팝을 선택한 사례는 매우 드물며 유의미한 결과는 없다. 방 의장은 시스템으로는 주목받지만 음악 그 자체로 대안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케이팝의 현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불안하다. SM 분쟁이 한창일 때 만난 관계자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상처 입은 마음을 토로했다. 케이팝을 동경하며 시장에 들어와 각자의 위치에서 창작에 몰두하던 이들은 케이팝을 대표하는 기업이 건강하지 않은 지배구조와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창작 영역에까지 제한을 두어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렸던 역사를 부끄러워했다. 오래전부터 지적 받아온 불공정 계약 문제와 인권 침해 개선도 갈 길이 멀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츄는 소속사 블록베리 크리에이티브와의 불공정 계약을 폭로하며 법리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폐쇄적인 합숙 과정에서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가 5년 동안 같은 그룹 동료를 연습생 때부터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창작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 줄어드는 인구와 살인적인 육성 과정으로 인해 케이팝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들이 크게 줄었다. 음악도 고착화됐다. 모 기획사 구성원은 '비슷비슷한 데모곡 가운데 옥석 가리기가 어렵다'라고 말한다. 기획을 바탕으로 음원을 수급하여 싱글과 앨범을 완성하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 시스템이 굳어진 상황인 데다, 일반 대중보다 열성적인 팬덤이 만족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니 혁신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내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빌보드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소셜 미디어에서 몇백 만 단위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이지만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희미한 경우가 흔하다. 전형적인 멜로디 방식과 고음, 랩 파트 등 전형적인 케이팝 작법에 거부감을 느낀 어도어 레이블의 민희진 대표가 본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투영한 걸그룹 뉴진스로 시장을 평정한 이유다.

거대 기획사와 스타 연습생들은 그래도 상황이 낫다. 이들은 체계적인 기획과 안정적인 인재 및 곡 수급 경로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중소 기획사는 맨땅에서 시작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기적을 바라야 한다. 이들은 기획 단계부터 자본의 한계에 부딪치며, 인기 스트리밍 플랫폼 노출부터 소셜 미디어 홍보, 음악 방송 출연 등 모든 면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무대 위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고된 하루를 견디는 케이팝 지망생들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청춘을 바쳐 땀을 쏟는 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아 데뷔에 성공하고, 데뷔 후에도 그룹이 해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날이 심각해진다. 절박한 소속사와 연습생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는 듯했던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PD 안준영은 투표 결과를 조작하고 수차례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형기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걸그룹 전성기라는 2020년대에만 소키노키미니, 블레스타, 루나솔라, 썸, 블링블링, 핫이슈, 쏠리아, 버가부, 모모랜드, 브레이브걸스가 해체되거나 활동을 종료했다.

모순과 오류를 지적해야 할 이들의 시선이 극단적인 것도 문제다. 종종 혐오론자와 영업사원만 존재하는 시장처럼 느껴진다. 전자는 케이팝의 성공을 경멸하며 모든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그들에게 케이팝의 음악은 이윤 창출을 위한 공산품에 불과하고, 아이돌 멤버들은 자아 없이 입만 뻐끔거리는 꼭두각시 인형이다. 의미 있는 비판이라도 공격의 형태를 띤다면 도달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 부류는 다르다. 그들은 찬사를 통해 열성적인 팬덤의 지지를 끌어 인지도와 수익 증가를 꾀하고, 케이팝의 비즈니스 모델이 수많은 투자자들과 벤처 기업가들의 구미를 당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케이팝을 적극 홍보하나 그 내용은 요란할 뿐 실속이 없다. 

디지털 시대 줄어드는 판매 부수와 영향력 감소를 고민하던 해외 매체들이 이를 일찍 깨달았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시장 성공을 적극 후원하며 수익을 챙긴 <빌보드>,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200' 명단에 정국과 아이유를 선정한 <롤링 스톤>, 케이팝 앨범에 별점 5점을 남발하는 영국의 <NME> 등이 케이팝 인기에 탑승하여 짭짤한 이득을 보고 있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케이팝 팬이라는 이유로 앉혀놓은 에디터들은 전문성 없는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그룹의 팬을 자청하며 객관적 시선을 상실한 평가는 기획사들의 보도자료로 소비될 뿐이다.

SM 인수전을 계기로 터져 나온 케이팝 위기론은 우상향곡선만 존재할 것 같았던 케이팝의 추락을 경고한다. 몇몇 우려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지금의 케이팝은 상술한 여러 문제를 개선하여 밝은 내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최고와 최초의 기록을 번갈아 세우며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세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기를 관통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위기 진단을 내리며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기획자들은 충성스러운 팬덤의 힘을 바탕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을 자유로이 상상한다.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에 맞서 후배들을 지키려 노력하는 이들의 수도 많아졌다. 단숨에 나아질 수는 없다 해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수는 있다. 냉철한 판단과 뜨거운 열정의 조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관훈포럼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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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zener1218@gmail.com)는 2013년 음악 웹진 IZM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했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음악 플랫폼 제너레이트(ZENERATE)를 운영 중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FIGK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국방일보, 위버스 매거진, 롤링 스톤 코리아, 빌보드 코리아 등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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