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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모르면 사회 양극화 이야기 할 수 없다"

[프레시안books] 아담 레보어의 <바젤탑>

아담 레보어의 <바젤탑>(더늠 펴냄)이 국내에 번역돼 30일 출간된다. 이 책은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둔 국제결제은행(BIS)을 다룬다. BIS는 1930년 헤이그협정을 모체로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금융기구로서 중앙은행 간 정책협력을 주요기능으로 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은행 기능을 하는 기구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1975년 연차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이후 1997년 1월 정식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러한 BIS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구다. 어떤 조직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일들은 우리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대표적으로 BIS에서 제시하는 '자기자본비율', 즉 은행들의 재무안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BIS에서는 은행들에 대출할 때 위험 가중자산의 일정 퍼센트 이상 자본을 보유할 것을 요구하는데, 보통 8%를 제시한다. 즉 어떤 은행이 100억 원의 위험 자산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은행은 최소 8억 원의 자기 자본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경우, 1997년 IMF 때 이 기준으로 은행들이 퇴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BIS는 여러 단계를 거치기는 하지만, 우리의 자산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 자산가격은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감독기구의 규제정책, 그리고 글로벌 자본이동 규제정책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중앙은행의 은행이라 할 수 있는 BIS의 활동과 연결돼 있다.

<바젤탑>은 그러한 BIS의 역사, 그리고 본질적인 한계를 다룬다. 그러면서 BIS를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낸다. <프레시안>에서는 이 책의 역자인 임수강 경제학 박사를 인터뷰했다. 임수강 박사는 금융기관에서 실무경험이 많은 인물로 국회와 연구원 등에서 금융경제를 연구하고 정책 등을 만들어왔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바젤탑. ⓒ더늠

"우리나라에 BIS를 제대로 소개한 책 거의 없어"

프레시안 : 아담 레보어의 <바젤탑>이라는 책을 번역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 금융으로 쌓은 바벨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임수강 : 이 책은 중앙은행의 은행이라는 국제결제은행(BIS)에 대한 역사를 다루는데, 1930년 창설부터 현재까지 BIS 역사 전체를 서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수년 동안의 조사를 거친 다음 쓴 이 책은 국제결제은행과 중앙은행의 역사를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국제금융이라는 배경 속에서 역사소설처럼 엮는다.

저자가 BIS의 역사를 통틀어서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BIS나 중앙은행의 의사결정이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중앙은행가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금융분야의 테크노크라트로 제시하면서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프레시안 : 작가가 궁금하다. 아담 레보어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임수강 : 국제 금융기구를 조사하다가 우리나라에 BIS를 제대로 소개한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서 읽었는데 BIS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국내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저자가 직접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영국 출신인 저자는 여러 언론에 기고하는 금융전문 저널리스트이고 작가이며 문예비평가이다. 그의 책은 열네 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 책은 국제결제은행(BIS)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국제결제은행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임수강 : BIS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관리할 목적으로 1930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을 주도했던 인물은 잉글랜드은행의 몬태규 노먼 총재와 독일 제국은행의 얄마르 샤흐트 총재였다. 저자에 따르면 BIS를 설립할 때 독일 배상금의 관리는 형식상의 목적일 뿐이었고 진정한 목적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성가신 요구에서 벗어나서 금융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국제 금융조직을 만드는 데에 있었다.

BIS의 공식적인 임무는 중앙은행들의 협력을 촉진하고 국제금융 업무에 추가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BIS는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상업은행 기능을 수행하고, 법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상업은행들에 대한 자기자본을 규제하며, 연구기관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BIS의 핵심적인 임무는 중앙은행들의 조율을 통해 금융정책에 대한 통일적인 견해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

프레시안 : 초국적 금융자본 계급이 탄생하면서 이 계급의 이익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조직이 BIS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실제 가지고 있나.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임수강 : BIS는 세계 중앙은행가들의 사교 클럽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BIS가 실질적인 힘을 가진 기관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BIS나 중앙은행가들은 실제로 BIS가 금융정책에 영향을 줄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럼에도 BIS가 금융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금융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BIS는 겉으로는 매우 느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위계가 철저한 조직이다. BIS에서 거대 중앙은행 주도로 형성된 통일적인 정책 방향을 개별 중앙은행들이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중앙은행가들 사이의 끈끈한 동질감도 이례적으로 강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들이 BIS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본다.

"중앙은행은 독립적 기관이 될 수 없다"

프레시안 : 작가는 중앙은행가들이 BIS에서 갖는 모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모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런 이유가 있는가.

임수강 : 저자가 중앙은행가들이 BIS에서 모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데,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모임의 행태 때문이다. BIS 중앙은행 총재회의는 설립 이후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추구해왔다. BIS는 여러 나라들에서 수집한 통계자료나 분석보고서 등은 공개하지만 이사회나 여러 위원회의 회의록, 중앙은행들이나 국제기구들과 거래한 내용 등 핵심 사항은 지금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민주적인 행태를 부정적으로 본다.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 총재회의가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중앙은행 총재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BIS가 설립 초기부터 정부와 정치의 간섭에서 멀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금융자본의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프레시안 : 우리는 중앙은행, 즉 한국은행의 독립을 당연시 생각한다. 정치적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만 바라보며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권이나 정치권에서 독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임수강 : 중앙은행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독립적인 기관일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기존의 관념과 어긋나며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금과옥조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앙은행 정책은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는 영역이지 일반인들이나 정치인들이 가타부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중앙은행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경제만을 보면서 정책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사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성이라는 개념은 시대를 달리함에 따라 강조 정도가 달랐다. 예컨대 1960년대라면 정부와 정치에서 중앙은행이 독립한다는 관념은 이상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금융자산이 급격하게 팽창하는 1990년대 들어서이다. 이는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 주장과 금융자산가 계급의 이해에 모종의 연계가 있음을 함의한다.

프레시안 : 저자는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이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가.

임수강 : 이자율이나 화폐 공급량과 같은 중앙은행의 중요한 결정은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결정이 계층에 따라 상이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이한 이해가 걸려 있는 정책을 기술적인 계산이나 준칙으로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프레시안 : 저자의 논리를 연장하면 한국은행이 정부에 대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독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 궁금하다. 또한 실제로 연준으로부터 한국은행이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기준금리 인상을 봐도 쉽지 않을 듯하다.

임수강 : 저자는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저자가 얘기한 내용은 아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정부와 정치에서 독립, 다른 중앙은행의 영향에서 독립, 시장(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자본이 장악한 은행, 돈을 많이 끌어다 쓰는 기업 등)에서 독립이 그것이다. 우리는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첫째의 의미로 주로 사용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독립성 개념이다.

저자는 미국 연준과 주변국들 사이의 이해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주변국들이 어쩔 수 없이 연준의 영향을 받아서 자국에서 불리한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연준의 양적완화이다. 양적완화의 결과 주변국들은 필요 없는 달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 돈은 부동산 투기에 활용되었다. 그런 면에서 주변국 중앙은행은 연준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창용 총재는 한국은행이 정부에서는 독립했지만 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중요한 것은 연준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물론 주변국들이 연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려면 자본이동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자본자유화의 정도가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여 위기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ATM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연준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는 자본자유화 만능이라는 교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워싱턴 AP=연합뉴스)

"BIS를 모르면 사회 양극화를 이야기할 수 없어"

프레시안 :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국제결제은행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곳이다. 그다지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곳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임수강 : 우리는 BIS가 우리의 삶과 별 관련이 없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BIS는 의외로 우리 삶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예컨대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BIS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규제정책을 잘 알아야 한다. 잘 알려져 있지 많지만 1997년의 우리나라 경제위기도 이 자기자본비율과 상당 정도 관련이 있다. 일본의 은행들은 1988년에 제정된 이 규정을 1990년대 초부터는 지켜야 했는데, 이것이 주변국들의 유동성 축소, 나아가 경제위기에 영향을 준 것이다.

무엇보다 BIS는 우리의 자산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준다. 자산가격은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감독기구의 규제정책, 그리고 글로벌 자본이동 규제정책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중앙은행의 은행이라 할 수 있는 BIS의 활동과 이러저러하게 연결되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산 가격의 변동은 사회 양극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BIS를 모르면서 사회 양극화를 얘기할 수는 없다.

심지어 가상자산의 미래마저도 BIS의 영향권 속에 놓여 있다. 가상자산의 가격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BIS 견해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책의 또다른 부제가 '금융이 무너지는 시기,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렇게 단 이유가 무엇인가.

임수강 : 이 부제는 원저에는 없는 것을 역자가 따로 단 것이다. 최근 금융과 부동산 가격이 붕괴하고 있는 현상을 반영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가격 붕괴가 중앙은행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다.

프레시안 : 책 제목을 '바젤탑'으로 지은 이유가 무엇인가. 흡사 과거 바벨탑을 연상케 한다.

임수강 : 바젤탑은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을 패러디한 것이다. 18층의 원통형으로 솟아 있는 BIS 본부 건물은 탑의 모습을 닮았다. 이점에 착안하여 저자는 바젤탑이라는 조어로 BIS를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구약 성경에서 인간의 욕심을 상징하는 바벨탑이 무너졌듯이, BIS도 개혁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음을 바젤탑이라는 조어를 통해 암시한다.

프레시안 : 저자는 국제결제은행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는가.

임수강 :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BIS와 중앙은행들의 비밀주의, 기술관료주의(전문가주의), 정치적인 독립 개념을 비판한다. 당연히 저자가 제시하는 개혁의 방향도 그가 비판하는 내용의 연장선상에 나온다. 구체적으로 BIS에 대해 비밀주의를 폐기할 것과 기술관료주의(전문가주의), 정치적인 독립을 민주적 통제로 대체할 것을 주장한다.

저자는 BIS와 중앙은행 개혁을 위한 활동 방향도 제시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사회 활동가들이 BIS의 운영과 역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활동가들은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인들에게 BIS와 중앙은행을 더 책임 있는 민주적 조직으로 만들라는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한 압력은 중앙은행 총재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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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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