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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부정의' 피해 입는 파키스탄…두 달 새 홍수로 1천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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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부정의' 피해 입는 파키스탄…두 달 새 홍수로 1천명 사망

빙하·폭우 '온난화 이중고' 겪어…"온실가스 1% 미만 배출국이 기후재앙 희생자"

히말라야산맥 빙하의 녹는 속도가 빨라지며 홍수 위험을 상시적으로 안고 있는 파키스탄에 올 여름 기록적 폭우가 겹쳐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중고'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 미만에 불과한 양을 배출하는 이 나라가 "기후재앙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기후정의를 요구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을 보면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은 28일(현지시각) 6월 중순 이후 시작된 이번 우기에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103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에만 돌발 홍수로 24시간 만에 1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난청은 올해 홍수를 2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국토의 거의 5분의 1이 침수됐던 2010년 최악의 홍수 사태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번 우기 홍수로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3300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반시설 및 재산 피해도 막대하다. 이번 홍수로 30만 채에 가까운 가옥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도로가 끊겨 고립된 마을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 및 통신이 끊기는 사례도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이에 더해 지난 주말 동안에만 최소 8만3000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홍수로 개발이 덜 되고 기반시설이 부족한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와 남동부 신드주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발루치스탄주 남부의 강우량은 평년의 500%를 넘어섰다. 발루치스탄주의 최소 75%가 홍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엔 9월에 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돼 피해 복구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홍수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드주의 경우 당장 북부 지방에서 폭우로 불어난 물이 며칠 안에 하류로 흘러들어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스와트강이 범람하며 북부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에서도 피해가 속출했다. 주민 35만 명이 대피했고 고립된 코히스탄 지역 주민들은 통신과 전기가 끊긴 상태로 헬기 구조를 기다리는 처지다. 영국 BBC 방송은 카이버파크툰크와주의 한 계곡에 수백 명이 고립돼 건너편의 취재진에게 의약품 등을 요청하는 쪽지를 던지며 구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며 파키스탄의 홍수 위험은 이미 커져 있는 상태다. <가디언>은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인더스강의 산쪽 지류에 빙하 녹은 물이 흘러든 데다 이번 폭우가 겹쳐 파키스탄이 대형 홍수에 직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밀려드는 물로 지류의 댐이 여러 곳 파손됐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이 온난화가 배후로 지목되는 폭우 등의 극한 기후와 빙하 붕괴를 동시에 겪으며 피해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원의원이자 파키스탄 기후변화장관인 셰리 레흐만은 파키스탄이 "심각한 기후재앙을 겪고 있다"며 "이번 우기는 일반적인 우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건 기후 디스토피아"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쪽은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탄소 배출량이 적은 파키스탄이 기후변화의 가장 피해를 입는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기후위기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2000~2019년에 걸쳐 기후위기가 야기하는 극한의 날씨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8위)로 집계됐다. <가디언>은 파키스탄 당국자들이 "파키스탄이 세계 다른 나라들의 환경에 대한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불공정한 결과를 감내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무스타파 나와즈 크호카르 파키스탄 상원의원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1% 미만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기후재앙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불공평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크호카르 의원은 파키스탄이 극지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수의 빙하를 보유한 지역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폭우와 더불어 빙하 붕괴 속도가 전례없이 빠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크호카르 의원은 2015년 한 페루 농부가 온난화로 안데스산맥 빙하가 녹아 발생하는 홍수 피해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원인 독일 다국적 에너지기업 아르베에 그룹(RWE)에 책임을 물어 제기한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 "획기적인 소송" 결과를 본 뒤 히말라야산맥 빙하 붕괴로 홍수 피해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또한 "유사하게 움직일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홍수는 파키스탄의 경제적 위기도 가중시킬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프타흐 이스마일 파키스탄 재무장관이 홍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 적어도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3%에 이르는 금액이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연료비 상승 및 기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파키스탄의 물가상승률이 45%에 달하는 가운데 홍수가 약 8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농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돼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9일(현지시간) 파키스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제공을 위한 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홍수 피해 탓에 경제적 안정을 찾기가 더 요원해졌다고 진단했다. 지난 4월 경제 회복에 실패했다는 이유 등으로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퇴출된 임란 칸 전 총리가 퇴진에 불만을 품고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테러 방지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되는 등 정치적 혼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마일 장관은 이번 홍수로 인한 즉각적 구호에만 적어도 10억 달러(약 1조 35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봤다. 파키스탄 정부는 우호적 외국 정부 및 국제금융기관 등에 피해 복구를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에서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뗏목에 싣고 홍수 지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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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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