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피의 기억은 흐른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피의 기억은 흐른다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피의 기억은 흐른다

1.

정월 초하루 썰어놓은 떡국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박산 골짜기에는 더 이상 굴뚝 연기 오르지 않았다

어제 내린 함박눈보다 세차게 퍼붓는 군인들의 총알

구덩이를 파고 묻은 사람들 위로 포탄이 터지자

살덩이와 옷가지가 나무마다 걸렸다

가녀린 목숨들을 불태운 연기가 온 산을 덮었다

핏빛 눈이 내리는 언덕

숨소리가 사라진 골목길

새들도 저 바깥을 향해 떠나가는 하늘 아래

엄마는 아이를 잃고 아이는 엄마를 잃고

서로를 울어 줄 사람 하나 남지 않았다

몇 날 며칠

죽음들을 덮으려고

하늘만 낮아지고 낮아졌다

2.

피 묻은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산골

작은 야생화 꽃잎마다

본 적 없는 피의 기억이 흐른다

신도 감히 설명할 수 없는 꽃향기가 있다

▲거창군 신원면 박산 합동묘역 위령비. ⓒ이운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