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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낙망의 정의당, 컨텐츠도 전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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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혜영 "낙망의 정의당, 컨텐츠도 전략도 없다"

[인터뷰] "노동 대 페미니즘? 그럼 안희정 사건은 둘 중 뭔가"

"다들 정의당의 '실패'를 전제로 진단하고 대안을 내놓는데,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단지 '실패'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심판'을 받았다." 장석준, 6.10. (☞관련 기사 : 정의당, 심판 받다 )

" 지난 20년간 당을 지탱해온 정치철학, 비전, 조직 등은 수명이 다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재창당을 통해 새로운 시도들이 보완되긴 했지만, 전면적으로 대체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간 당을 주도해온 세력은 낡았고, 심상정의 리더십은 소진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진보정당 1세대의 실험이 끝났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23년간을 버텨 왔지만, 우리는 미래를 열지 못했습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저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심상정, 7.11. (☞관련 기사 : 심상정 "비례 의원에 책임 물을 수 없다…책임은 저에게 돌려달라")

6.1 지방선거가 끝나고 한 달 보름이 지나도록 '원내 3당' 정의당은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3.9 대선에 이은 두 번째 참패다. 정의당은 대선 직후 심상정 대선후보가 2선으로 물러났고, 지방선거 이후에는 당 대표단이 총사퇴하고 이은주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해 평가·토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가·토론 작업은 단순히 선거 패인분석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의당은 이 작업을 위해 '정의당 10년 평가 위원회'라는 위원회를 새로 구성했다. 조직의 이름 자체가 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단순히 올해 치러진 선거 두 번을 망친 게 문제가 아니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의 10년을 돌아보겠다는 것이다.

정치, 특히 진보정치에 다소나마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여기까지의 설명을 듣고 '노동 대 페미니즘(혹은 정체성 정치)'이라는 구도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글쎄, 그러나 이 구분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의당의 지난 10년을 좌지우지해온 정파, 또는 의견그룹들 간에 이 논쟁은 이미 끝난 문제다. 당 의결기구인 전국위를 장악한 주요 4개 정파는 지방선거를 전후해 모두 '노동 중심성 회복'이라는 노선에 대체적으로 합의했다. 페미니즘 혹은 정체성 정치를 대표하는 목소리는, 언론에 비치는 것과는 달리 정의당 내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이대로라면, '10년평가위'의 노력이 어떻든 간에 '노동 중심성 회복'이라는 구호 아래 기존 노동운동과 다른 정체성의 활동을 해온 이들에게 사실상 정의당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결과로 흘러갈 것임이 불문가지다. 물론 '그럼 페미니즘은 안 할 거냐'는 지적을 받으면 '노둥 중심성을 기반으로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답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과 뭐가 다른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둘째, 논쟁의 구도가 정의당 내 정파 구도 위에 얹혀 있지 않는, 실질이 없는 허수아비 같은 것이라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과연 '노동'과 '페미니즘'이 대체 왜 대립 구도에 놓이는 개념이냐는 근본적 물음이 가능하다.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정치인과,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누가 당직선거나 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 앞순위에 올 것이냐는 경쟁이 가능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당의 노선을 평가하고 결정짓는 문제에서,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 왜 'and'가 아닌 'vs.'가 놓여야 하나.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지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장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그러면) 안희정 사건 피해자 김지은 씨가 겪은 문제는 노동 문제냐, 여성 문제냐"라며 "이 사건은 명확히 고용관계에서 일어난 직장내 성폭력 문제이고 '노동이 당당한 정의당'에서 당연히 다뤄야 할 노동 문제인데 왜 이 사건은 '여성 문제'로만 받아들여지느냐"고 꼬집었다.

노동 중심성 문제, 정파 구도 문제에 대해서도 장 의원은 시쳇말로 '뼈 때리는' 지적을 쏟아냈다. 노동 중심성 회복이라는 기치에 대해 그는 태연히 "그런데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의당 인사면 정의당이 '노동을 잘 하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정파 구도에 대해 묻자 "지난 3년 동안 국회의원을 했는데 솔직히 아직도 그 분들이 왜 나눠져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정파가 '노동이 중요하다'고만 하는데 그러면 한 마음 한 뜻으로 정치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는 말했다.

정의당 '10년평가위'가 진행하는 평가·토론 작업에서 결국 유권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이제 제1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다. 둘째, 사실상 2선 후퇴를 선언한 심상정 의원과 작고한 고(故) 노회찬 의원의 뒤를 이을 '진보정치의 새 얼굴'이 누가 될 것이냐다. 장 의원과의 인터뷰가 그 답을 찾는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편집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혜영 의원실

"지난 10년의 '심상정 기획'은 끝났다"

프레시안 :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의당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장혜영 : 저는 위기라는 진단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생각이 다른 부분이 꽤 될 것이라고 본다. 위기라는 건, 한 시기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한 전략의 시작이 있었고 그 전략이 끝을 맞이했다. 그런데 다음 전략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란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2017년의 촛불로 우리는 박근혜 탄핵을 이뤘다. 그때 만들어진 민주대연합의 분위기 속에서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로 도약한다는 '심상정의 기획'이 있었다. 물론 당내 이견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를 정의당의 기획으로 삼아 최선을 다해온 것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였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의 반성문에서도 드러났듯 정의당(의 기획)은 무너져내렸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낙망(落望)이다. 희망이 꺾였다. 그리고 아직 다음 희망을 찾지 못했다.

프레시안 : '2017년 기획' 또는 '심상정 기획'의 핵심은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아닌가.

장혜영 : 의원단 차원의 쇄신안은 검수완박 국면이나 공수처 때부터 있었던 민주당과의 관계가 방점이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민주당과의 관계가 아니라 정의당의 정치전략이 핵심이었다.

프레시안 : 의원단 차원의 쇄신안과 별개로 장혜영 의원이 지난 7월 5일 당 '10년평가위' 요청에 따라 제출한 평가서(☞바로 보기)를 봤다. 그에 따르면 "반여성주의 포퓰리즘에 맞서 여성의 인권보장에 목소리를 높이고, 장애인과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맞서 싸운 것이 정의당의 패인이라는 주장”이 당 내에 있었다고 했다. "당의 실패를 '페미'에게 묻는 이들은 많지만 성평등이라는 근본가치를 뒤흔드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이는 별로 없"는 현실에 대한 개탄도 있었는데, 실제 정의당에 입당해 느낀 분위기가 이렇던가?

장혜영 : 저는 당에 들어온 지 3년 된 사람이라 10년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10년간 쌓여온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도 모든 게 다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덮어씌우는 분위기는 계속 있었다. 페미니즘 논쟁이 가장 도드라지는 쟁점일 수는 있지만, 그게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일 수는 없지 않겠나. '진짜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건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건 제쳐두고 여성주의를 드러내거나 성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는 게 패착이었다는 것엔 동의할 수 없다.

프레시안 : 장 의원이 보는 '진짜 문제'는 뭔가.

장혜영 : 정치전략의 부재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공조가 필요했다. 심상정 전 대표는 '단순히 제도 개혁 때문이 아니라 탈당(을 막는 것)이 더 문제였다'고 했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그 전략은 깨졌다. 그럼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공조하는 방식, 즉 민주당 비례대표 표를 나눠 먹는 전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그 질문만 봐도 장 의원은 후자의 입장 같다. 그런데 '지역 기반 독자 정당'이라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염두에 둔 지역이 있나?

장혜영 : 선거제도가 아주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기반 없는 정당이 안정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 영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힘처럼, 정의당도 안정적인 지역 기반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유의미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정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정의당이 수도권에 명확하게 기반을 둔 지역 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모든 문제가 집약돼 드러나는 곳이다. 경제적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등. 특히 인구 절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에서 명확한 지지기반을 닦아 (선거에서 당선되는)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는 정당으로 지금부터 초석을 쌓아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당과 구분되는 정의당만의 정체성은 간단히 표현하자면 어떤 것이 돼야 한다고 보나?

장혜영 : 독자적인 정당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논쟁거리씩이나 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참담한 일이다. '민주당의 왼쪽 방'을 쓰라는 것은 민주당이 쳐놓은 선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갈 것인지는 명확하다. 기후위기, 불평등, 차별. 이 세 가지 문제에서 우리 당이 해결점을 제시하는 게 정체성이 돼야 한다.

아이러니한 건 우리 당은 대선에서도, 지방선거에서도 불평등·기후위기·차별 이야기를 해왔다. 근데 아주 표면적인 이야기로만 남고 우리 당의 정체성, 가야 하는 길로 스며들지 못했다. 정의당이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내용을 만들고 그다음으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상(像)이 없이 어떻게 권력을 달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나. 

그런데 우리 당이 가진 상은 짧게 봐서는 10년, 길게 봐서 20년 전에 만든 것이다. 지금의 내용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런 내용의 빈곤을 인정하지 않고 외생적인 변수만을 탓하거나 ‘페미 때리기’에만 집중하는 건 당이 낙망을 극복하지 못하는 길이다.

정의당 내에서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은 여전히 뜨거운 문제다. 심상정 의원의 평가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개정선거법은 위성정당으로 좌초되었고, 교섭단체의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법과 제도는 그것을 지켜낼 역량이 부족한 세력에게 스스로 봉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시켜주는 계기였습니다. 또 조국 사태 국면에서의 오판으로 진보 정치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일전에도 거듭 사죄드린 바 있지만, 조국 사태와 관련한 당시 결정은 명백한 정치적 오류였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 사건은 제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중략) 

조국 사태에서 검수완박까지 정치 현안에 대한 갈등은 분명 민주당에 대한 입장 차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당의 집권전략 부재 또는 인식의 불일치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조국 장관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언론과 국민들께서는 선거제도와 협상한 것으로만 생각합니다만, 당시 그 결정을 이끌어낸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고려사항은 당내 여론이었습니다. 당시 당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조국 장관에 대한 승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최소 4000명에서 많게는 8000명 당원들의 대량 탈당이 예측되었습니다. 당 대표로서 총선을 앞두고 거의 분당에 가까운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진보진영 논객인 장석준 '산현재' 기획위원은 지난달 <프레시안> 칼럼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검수완박 법안 표결을 그리 할 것이었다면, 정의당은 대선에서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 완주하지 말고, 더불어민주당과 협상하고 연대했어야 했다.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의 의의와 사명은 논외로 하고, 소수 도전 정당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일관성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이를테면 지금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걷고 있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김동연 당선자가 차지한 영광이 정의당의 몫이 됐을지 모르며,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가 큰 규모로 부활했을 것이다. 물론 진보정당운동 자체는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김동연 당선자의 정당 '새로운 물결'과 비슷한 운명을 밟게 됐겠지만 말이다. (중략)

한 가지 선택지는 뒤늦게라도 '좌파 김동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위성정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진보정당 주류가 그랬듯이 더불어민주당과 늘 손 맞잡고 함께 움직이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정의당 전체가 이 길을 선택한다면,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큰 타격을 입겠지만 한국의 정치지형 전체는 훨씬 더 정연하고 확연해질 것이다. 이 경우,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새로운 주체, 집단,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대선 완주에 논리적으로 부합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결단이 너무 늦었고 그동안 반복한 오락가락 행보의 기억이 너무 짙지만, 어쨌든 양대 정당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이들이 안심하고 깔끔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무기가 되는 것이다. 정의당이 이 길을 걷기로 한다고 하여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2년도 안 남은 총선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더욱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의 제3기는 일단 풍요롭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6.10. 장석준 칼럼)"

ⓒ장혜영 의원실

"노동 대 페미니즘? 안희정 사건은 그럼 둘 중 뭔가?"

프레시안 : 장 의원의 7월 5일 평가서를 보면 "당내의 많은 이들은 여전히 ‘여성’을 ‘노동’의 하위 종속 가치로 보거나 아예 별개의 가치, 심지어 노동에 대립되는 가치로 간주한다. 당의 책임있는 여러 인사들은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는 커녕 앞에서 방치하고 뒤에서 동조해왔다"는 대목이 있다.

장혜영 : 아직도 잘 모르는 분이 많다. 예를 들면 안희정 사건 피해자 김지은 씨가 겪었던 문제는 노동 문제인가, 여성 문제인가? 이런 고민이 당 안에서 충분히 숙성되거나 토론되지 못했다. 사실 이 사건은 명확히 고용관계에서 일어난 직장내 성폭력 문제다. ‘노동이 당당한 정의당’에서 당연히 다뤄야 할 노동문제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왜 이 사건이 노동 문제가 아니라 여성 문제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역시 장 의원이 쓴 글의 한 대목이다. "노동조합은 물론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의 지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정당." 기존의 노동운동 중심 활동가들에 대한 비판인가?

장혜영 : 꼭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니다. 그 글은 정의당에 대한 반성과 평가의 관점으로 썼기에 노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노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면 예를 들어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의당 인사면 우리가 노동(문제 대응)을 잘 하는 건가? 민주노총을 예로 들면 그 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매우 반가운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이 정의당의 정책적 정당성이고 정치적 구심점이라면, 우리가 조직노동 밖의 노동자들에 대해 뭘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프레시안 : 노조로 수렴되지 않는 더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심지어 법적으로는 근로자 지위에 있지도 않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을 말함인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민주노총이 대변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공공영역이나 대형 사업장 위주의 노동계급 상층부라는 지적도 있다.

장혜영 : '노-노 갈등'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의당은 그런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토론판을 까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재하든 뭘 하든 적어도 뭔가 역할을 했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명확하게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노동자 집단이고 세력이다. 매우 필요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에) 주어진 역할이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아무리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높이려 노력해도 여전히 대공장 노동자 중심, 사업장 중심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이제 정치가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왔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이슈 같은 것이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과 그 하위계층,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들과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이다.

장혜영 : 정의당은 지금까지 당연히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하고 이것이 우리가 대변하는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맞느냐'’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시기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을 때 그게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를 당은 정말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나.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10년 전 정의당을 만들 때, 좀 더 멀리 가면 20년 전 민주노동당 만들 때의 진단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 기준이 여전히 맞나? 재창당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면 '그게 정말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인가'라는 (기준에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당 대표 결정도 뒤엎는 '정파'의 힘…전국위 폐지해야"

프레시안 : 결국 장 의원의 이야기는 당의 본질적 노선, 강령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선거 패배 후 정의당 내에서 지금까지 이뤄진 논쟁은 대부분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측면이 커 보인다.

장혜영 : 지금 우리 당은 3개월짜리 비대위가 이끌고 있다. 3개월 후에 예정된 당직선거 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이 자신만의 여러 노선을 가지고 나와서 각축하는 과정이 이뤄질 것이다.

프레시안 : 노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략만 논하는 기이한 상황은 당내 정파 문제에도 일정 부분 원인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일반 유권자와 독자들은 정의당 내 정파 문제는 잘 모른다. 대중은 그저 정의당이 '노동 중심성 회복'과 '정체성 정치'를 놓고 지금 논쟁을 하는 중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미 주요 4개 정파 중 최소 3개 이상이 이미 결론을 내렸으니 더 이상 토론하는 게 의미가 없을 지경인데 말이다.

장혜영 :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영국 대표가 제출한 대선 기본계획을 전국위원회에서 뒤집은 일이 있었다. 초유의 사태였다. 사실상 당 대표 불신임이었다. 당시 사무총장인 박원석 전 의원이 사태를 책임지겠다면서 사퇴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일이자 단적인 예시였다. 사실 전 정파가 있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정견이 비슷한 사람들이 뭉쳐 목소리를 내고 토론하는 게 왜 나쁘겠나.

그런데 문제는 정파는 있지만 정견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 중심성 대 정체성 정치, 이건 정말 무익한 논쟁이다. 저는 그냥 기이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제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지난 3년 동안 국회의원을 했는데 솔직히 아직 그 분들이 왜 나뉘어져 계시는지 모르겠다.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정파가 '노동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럼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아니다.

프레시안 : 전국위원회 폐지를 주장한 것도 결국 정파 문제에 대한 지적인가?

장혜영 : 그렇다. 전국위 폐지는 정파주의의 폐해에 대한 하나의 화두를 던진 것이다. 요는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당 대표를 뽑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 대표가 하겠다고 한 것들을 할 수 있는 구도를 최대한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잘 되면 박수치고 안 되면 목을 쳐야 적어도 사람들이 당권에 도전하고 그 리더십을 통해 뭔가를 해보는 순환이 일어날 것 아니냐. 지금은 리더십은 줘 놓고 자기들 정파 마음에 안 들면 전국위에서 엎는 식이다. 그러면 책임이 형해화된다. 저는 그 때문에 당이 당답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정의당 책임당원이 대략 1만9000명인데 정파가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1만 명이 될까말까다. 그런데 그 사람(정파 대표자)들이 마음대로 결정한다면 민주적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전국위는 사실상 이 분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 제가 입당할 때인 3년 전 기준으로 이미 정의당은 대중정당, 특정 정파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정당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전국위 그 자체가 악이라고 규정할 생각은 없다. 정파 안배가 당적 리더십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전국위 해체라는 운을 띄운 것이다.

지역정당이 돼야 한다는 건, 지역에서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하고 조직을 가진, 정치인이 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당에서 힘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지역위원장인데, 그런데 지역위원장들은 (현 전국위 성원보다) 수가 많다. 그러니 전국위를 폐지하든, 아니면 지역위원장을 기반으로 그에 준하는 의사결정 기구를 두든, 아니면 전국위를 두더라도 명확하게 그 책임과 권한의 위계를 설정하든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심상정 의원이 스스로 '심상정 리더십은 쇠퇴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얼굴 내지는 리더십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장혜영 : 너무 명확하다. 당의 위기가 낙망이라고 얘기했듯,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그 자격이다. 사람들은 이 당이 없다고 느낀다. '제3당에 희망이 있어?', '정의당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바꾸고 싶긴 해?' 이런 패배주의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당을 뒤덮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를 이대로 둘 순 없지 않나. 저도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다. 나아갈 길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단순히 정책보고서 수준이 아닌 실제 정치로 구현할 전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당의 희망일 것이다. 저 역시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이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행보를 준비 중인가. 특히 차기 당직선거와 관련해 계획이 있나?

장혜영 : 당 대표 후보로는 안 나간다. 저는 '당을 새로이 만든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시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럼 지금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그게 있어야 다음 전략도 있다.

온갖 정치전략을 만들고 권모술수가 난무한다고 해도 ‘그래서 만들고 싶은 세상이 뭔데?’라고 물었을 때 구체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으면 안 된다. 또 그 내용이 아주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머물러 있다면 사람들은 더는 그런 사람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도 내용(컨텐츠), 둘째도 내용이다. 정의당이 뭐 하는 정당인지 더 이상 빙빙 돌리지 말고 내놓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저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탄생시키는 데 힘을 많이 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 당에 정말 내용이 없다. 지금 세계 질서부터 모든 게 다 변화하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저는 이게 진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기여할 부분은 우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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