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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주신 혜택이자 명령…경기교육 변화 이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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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주신 혜택이자 명령…경기교육 변화 이끌겠다"

□ 임태희 경기교육감 당선인이 걸어온 길

6·1 지방선거를 통해 '제5대 민선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된 임태희(66) 당선인은 지난 선거기간 동안 따라다닌 ‘정치인’ 출신의 ‘비교육자’라는 꼬리표를 이겨내고 경기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

지난 2009년 교육감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된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보수성향의 경기도교육감이 탄생한 것이다.

▲2일 수원 광교신도시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프레시안(전승표)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정계에 입문해 제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고용노동부 장관과 청와대 대통령실 실장을 거쳐 국립 한경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능력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3월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중앙선대위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고, 당선 이후에는 특별고문으로 일했다.

온건한 성품과 관료 출신의 실무형 정책통으로 정무와 정책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임 당선인은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이후 "지난 13년간 이어져 온 ‘진보교육’으로 인해 무너진 경기교육을 바로 잡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기교육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9시 등교제’와 ‘혁신교육’을 비롯해 ‘무너진 기초학력과 학력 양극화’ 및 ‘추락한 교권’ 등 지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펼쳐온 경기교육을 비판하며 그에 따른 개선책과 대안을 공약으로 내놨다.

□ 임태희의 삶

1956년 12월 1일 경기 광주군 낙생면 판교리(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서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성장한 그는 낙생초등학교와 양영중학교를 거쳐 서울 경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성남 양영중 재학 중이던 임태희 당선인이 어머니 및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임태희 선거캠프

그는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지만, 사실상 집안의 가장이었던 탓에 시험 준비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수출과 무역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1970년대를 살아가면서 당시 경제적 후진국으로 평가 받고 있던 한국에서는 경제와 경영이 중요한 화두라는 생각에 한국경제의 대외거래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외환은행에 입사한 그는 정작 이상과 현실의 큰 괴리를 실감, 입사 6개월만에 퇴사한 뒤 행정고시 준비에 돌입했다.

이후 1980년 12월 행정고시 2차에 합격한 임 당선인은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이던 1984년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이던 권익현 전 의원의 둘째딸과 결혼했으며, 전역 후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으며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닥친 뒤 대통령 경제비서실에서 일했다.

▲군 복무 당시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임태희 선거캠프

그러던 중 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아 고향인 성남 분당을에서 ‘국민을 위한 마음, 더 크게 쓰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출마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했으며, 당 정책위의장과 원내 수석부대표 및 여의도 연구소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8년 이명박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는 비서실장에 이어 제24대 노동부장관 및 초대 고용노동부장관과 청와대 대통령실 실장 등을 역임하며 MB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했으며,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제7대 한경대학교 총장(차관급)을 지내며 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 지역감정도 무너뜨린 임태희

경기도 토박이이자, 성남시 토박이로 살아온 임태희 당선인은 재선 국회의원이던 2004년 ‘제2의 고향’을 갖게 됐다.

당시에도 만연했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당의 텃밭인 호남지역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지속적으로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한 모임을 주도하면서 전남 목포를 담당하게 되면서 부터다.

임 당선인은 "수 년간 목포를 찾아와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목포시민들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그 때를 회상했다.

▲대통령실장으로 근무 중 공관에서 부인 권혜정 여사와 함께 촬영한 사진. ⓒ임태희 선거캠프

그는 목포의 현안과 관련된 예산 신청서를 들고 경제부처 공무원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심지어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 목포 공무원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자신들의 지역구 의원을 찾듯이 자연스럽게 임 당선인을 방문해 지역현안을 논의하는 일도 늘어났다.

이 같은 진심 어린 그의 노력 덕분인지 임 당선인은 1897년 목포가 개항된 이후 여섯 번째로 ‘명예 목포시민증’을 받게 됐다.

임 당선인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민주당 텃밭인 목포에서 명예 시민증을 받은 일은 그만큼 정당과 지역을 떠나 진심으로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을 시민들이 알아 주신 것"이라고 자평했다.

□ 40년 이상의 공직 경륜 토대로 다섯 번째 공직 시작

임태희 당선인은 "국가·사회로부터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시도 잊어본 적 없다"고 말한다.

40년 이상을 공직자로 살아온 경륜 있는 정치인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립 한경대학교 총장 시절의 임태희 당선인. ⓒ임태희 선거캠프

그는 "이미 나이가 60대 중반인데,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해보기 어려운 일을, 그것도 분야를 달리해가며 네 번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일했던 것은 과분한 영광이었다"고 소회를 밝히면서도 다섯 번째 공직인 경기도교육감으로서 임하는 자세에 대해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임 당선인은 "경기도교육감은 다섯 번째 수행하는 공직"이라며 "이는 경기도의 유권자와 학부모가 주신 ‘혜택’이자 ‘명령’이다"라며 "평소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뜻의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이란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산다. 40여 년의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교육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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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표

경기인천취재본부 전승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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