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월적 지위' 이용해 하청 기술 훔치는 대기업, 어떻게 막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월적 지위' 이용해 하청 기술 훔치는 대기업, 어떻게 막나

[좋은나라이슈페이퍼]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유용 사례와 예방대책  

우리 산업계에서는 대기업인 원사업자가 장기간에 걸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관행처럼 수급사업자(하청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는 불공정 행위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수급사업자는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써 기술자료는 많은 시간과 비용, 인력이 투입되어 산출된 중요 경영자원인데 이를 취득한 원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외부에 유출하거나 심지어 수급사업자의 경쟁업체에게 넘겨 버리면 해당 수급사업자는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면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과 기업가적 도전이 지속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마저 떨어지게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나비효과로 인하여 우리 내부의 부당한 상거래 관행이 심각한 경제안보의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으므로 이런 불공정한 수·위탁거래행위는 법과 제도 차원은 물론이고 기업 문화적으로도 사전 사후를 막론하고 시의 적절하게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최근 국내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유용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그 현황 및 문제점과 함께 하도급 과정에서의 기술유용행위 근절방안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필자)

[사례 1] 삼성SDI: 하청업체 기술자료를 해외 합작법인 관련사로 유출

올해 4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SDI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7000만원을 부과했다. 기술자료를 유용한 행위에 대한 과징금이 2억5000만원이고, 나머지 2000만원은 기술자료 요구 시 제공해야 할 16건의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제재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업으로 유명한 삼성SDI(원사업자)는 자사가 최대주주인 중국 합작법인과 관련된 현지 협력사의 요청을 받고, 하청업체인 A사(수급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자료인 운송용 트레이 도면을 제공했다.

운송용 트레이 도면은 A사가 자체 제작한 기술이 아닌 다른 사업자인 B사가 개발한 것으로, A사가 사용허락을 받고 보유하고 있었다. 작업방식이 B사에서 원통형 배터리 트레이를 납품받아서 A사의 배터리 부품을 얹어 삼성SDI에 납품한 뒤 삼성SDI의 작업공정이 끝나면 B사에 트레이를 돌려주는 식이었기 때문에 A사가 B사의 도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도면을 A사가 직접 개발하지 않았음에도 기술자료로 보호받아야 하느냐가 주요 쟁점인데, 삼성SDI는 수급사업자가 직접 작성해 소유한 기술자료를 취득한 경우에만 하도급법 보호대상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해당 사건 도면은 자사 공정에 맞춰 제공한 사양(규격)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도면 작성에 따른 대가(생산비)도 B사에 지급하였으므로 삼성SDI와 B사가 공동으로 소유 권한을 갖게 되어 도면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 A사와 B사 모두 사건 도면을 비밀로 관리하지도 않았으므로 하도급법에 따른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의 목적, 법 문언상 의미, 다양한 거래현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는 수급사업자가 작성한 기술자료에만 한정된다고 볼 수 없고 수급사업자가 매매·사용허락·사용권 허여(許與) 계약 등을 통하여 보유한 기술자료도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원사업자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하도급법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수급사업자가 소유한 기술자료의 범위를 좁게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이다.

이는 기술의 난이도를 떠나 기술자료를 법적으로 두텁게 보호함으로써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을 고양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현재까지 수급사업자가 직접 개발하지 않고 보유한 기술에 대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유용으로 인정한 경우는 없었다. 하청업체가 직접 개발한 기술이 아닌 다른 업체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아 단순히 보유한 기술자료라 하더라도 하도급법상 보호받을 기술자료로 인정할 수 있다는 첫번째 사례인 것이다.

예민한 쟁점에 대한 고심이 있었던지 공정거래위원회도 위원 3명이 참석하는 소회의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전원회의에서 심의를 거쳐 최종적인 판단을 하였다. 법정사항에 대해 사전 협의해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점에서 삼성SDI의 행위에 위법성은 있지만, 기술자료를 통해 요구 성능과 기준 충족여부를 확인하고 다른 부품 등과의 물리적·기능적 정합성 검토 필요가 있어 자료 요구 자체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고, 수급사업자에 대한 납품 단가를 인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대체 거래선을 확보하려는 고의적 목적은 없다고 보아 검찰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

ⓒ공정위

[사례 2] 한국조선해양: 하청업체 기술자료를 경쟁 하청업체로 유출

올해 4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4회에 걸쳐 하청업체 A사(수급사업자)의 선박용 조명기구 제작 도면인 승인도 12건을 경쟁 하청업체 B사에 부당하게 제공해 사용하게 하는 등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원사업자) 법인을 기소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벤처기업부의 고발 요청에 따라 2021년 11월 검찰에 고발한데 따른 것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12월 한국조선해양에 재발방지명령과 함께 2억4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또한 한국조선해양은 2017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55개 하청업체에 선박 관련 제작도면인 승인도 125건을 요구하였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는 2개 하청업체 선박 제작도면 4건을 4차례 입찰과정에서 경쟁업체들에게 제공하고 사용하게 하기도 했다. 도면을 요구하면서 요구 목적,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권리귀속 관계, 요구대상 기술자료의 대가 등 법정사항을 기재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았다.

현행 하도급법 제12조의3 제2항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인 하청업체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요구 목적과 그 정당성,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등을 기재한 서면을 제공해야 한다. 또 같은 법 제12조의3 제3항에는 원사업자가 취득한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자기나 제3자를 위해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자료 탈취, 유용 방지를 위한 대책

기술유출·탈취 범죄를 다루기 위한 법제가 점진적으로 정비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들이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상적으로 하청을 주는 대기업과 수탁 받는 중소기업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피해사실 입증이 쉽지 않고, 어렵사리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가해 기업에 대한 처벌이 가볍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침해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입증책임을 피해자인 수탁기업에게 지우지 않고, 가해자인 위탁기업으로 전환시켜 위탁기업이 자신의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제도가 사법 실무상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소송과정 전체가 당사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영미의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사건처리비용도 해소해야 할 장애요소 중의 하나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0년에 실시한 중소기업기술보호실태 조사에서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은 기술유출과 탈취가 발생하더라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38.9%는 ‘법률비용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변호사를 선임할 때 드는 직접적인 소송비용도 부담스럽지만 소송 참가에 따른 피해기업의 경영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소송이 시작되면 대기업은 소속 법무팀을 활용하거나 대형 로펌을 고용하여 장기전에 들어간다. 중소기업은 제한된 인력과 자금여건 하에서 대응을 해야 하니 본원적인 기업활동에 지장이 생기면서 매출 저하를 겪게 된다. 기술 분쟁의 상대가 주요 거래처라면 소송 이후 아예 일감이 끊길 각오도 해야 한다. 결국 오랜 법적 다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피해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사업을 정리하거나 폐업에 이르기도 한다.

올해 2월부터 수·위탁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서 피해액의 3배를 보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협력법)’에 도입되었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상한이 최대 3배수로 규정되어 있어 당해 사건의 재판부가 판결에서 손해배상결정을 내리더라도 피해 회복에 한계가 있으므로 최소 3배수로 그 하한을 높여 처벌의 효과를 실질화하여야 한다. 비난가능성이 높고 고의성이 강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3배가 아닌 10배로 대폭 올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손해배상 판결액을 비교해 보면 사법부가 대기업의 기술유출과 탈취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특허 손해배상액 중앙값은 6000만원인 반면, 미국은 65억7000만원에 달해 약 1/11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하는 과징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만들어 불공정거래 피해기업에 지급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과징금과 과태료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 현 상생협력법은 비밀유지계약을 미체결하거나 기술유출 및 탈취할 경우 과태료를 1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한 행정조사의 실효성을 보장을 위해 조사거부에 대한 과태료 부과금액을 상향하고 거부회수에 따라 과태료 부과금액이 15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증액되도록 새로 규정하기도 했다.

한편, 기술유출 및 유용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액의 산정을 정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생협력법 개정으로 피해기업의 생산능력 범위에서만 이뤄지던 산정범위가 과거보다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손해 평가기준이 모호하다. 동법은 피해배상 산정기준에 대하여 기술자료 사용에 대한 ‘합리적인 사용료’로 규정하고 있는데 합리적인 사용료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스타트업 같은 업력이 짧은 기업이라면 기술의 시장가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피해금액을 입증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손해배상을 평가함에 있어 재판부의 재량이나 판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기술의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기존 유사기술의 시장가격보다 유리하게 평가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술자료 보호를 위하여 수·위탁거래 시 기술자료 제공할 때 ‘비밀유지계약(NDA)’ 체결을 의무화한 만큼, 개정 법률과 시행령을 반영한 표준비밀유지계약서 양식을 고안하여 대·중소기업에 제공함과 동시에 중소기업 관련 협·단체와 공동으로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유출이나 탈취행위에 대한 엄정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2021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관련 1심 판결 중 유기징역형은 전체 115건 중 13건에 그쳤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로 실형을 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양형기준이 낮고, 기술유출·탈취 범죄 특성상 증거가 불충분해 가중 요소가 적용될 여지가 없고 감경 사유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 양형기준에 따르면, 국내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기본 양형기준은 8개월에서 2년이다. 국외 침해의 경우에는 1년에서 3년6개월이다. 죄질이 불량할 때 적용되는 가중 영역도 국내 유출은 1년에서 4년, 국외 침해는 2년에서 6년에 불과하다. 미국은 15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하거나 국외 추방까지 이뤄지는데 이에 비하면 처벌이 미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실정에서 기술 분쟁으로 법원을 가면 가해기업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나오고, 그렇게 되면 관련 정부부처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법원에 기술분쟁사건을 전담하는 전문판사를 양성하고, 소송 이전에 중재나 조정으로 갈등을 해소시키는 제도를 활성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기술유출이나 유용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구축한 이후에는 우리 산업계에 자생적인 기술거래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공정한 방식으로 기술 거래와 이전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기술신탁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기술신탁은 중소기업이 보유한 우수특허기술을 기술보증기금에 신탁하고 기술유출이나 탈취 없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술이전을 중개하는 제도이다.

기술보증기금은 2019년 1월 ‘기술자료 거래기록 등록 시스템(증거지킴이)’과 ‘기술임치(기술지킴이)’로 구성된 테크 세이프를 도입했다. 이어 기술신탁의 운용성과를 바탕으로 기술신탁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대·중소기업간 혁신기술을 매칭 및 중개하고 신탁기술을 이용하게 하는 '2윈-브릿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모두 윈-윈 한다는 의미의 2윈-브릿지시스템은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기술거래과정에서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다. 향후 이를 활용한 대기업에게는 동반성장지수 반영 등 우대를 받도록 하고, 중소기업에게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사업 응모 시 가점을 부여하여 정당한 민간기술거래 활성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산업경쟁력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

대기업이 수·위탁거래과정에서 하청 중소기업의 기술을 무단 유출하거나 탈취하고, 하청 단가를 일방적으로 깎는 관행은 피해를 당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혁신기술 개발동기가 꺾일 뿐 아니라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는 일자리 문제, 노동시장 양극화 등 심각한 사회 분열적 현상의 원인이 될 것이다. 대기업으로서도 자체 기술력 강화보다 가격으로 경쟁우위를 점하고자 한다면 현재 우리 기업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다. 중국, 동남아 등 신흥 제조 강국에 비해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고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 일본에 비해서는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기업이 개발한 혁신기술을 대기업이 기술이전이나 기업 인수합병(M&A) 등 합법적으로 이를 수용함으로써 공정한 기술거래 생태계를 정착시켜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