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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정치적 오지'로 남은 연정대통령의 제도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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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정치적 오지'로 남은 연정대통령의 제도화 필요하다

[좋은나라이슈페이퍼] 연정대통령의 제도화,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로 가는 길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

한국 민주주의의 승자독식 단순다수 선거제, 거대 양당 의회권력 독점 체제, 제왕적 대통령제는 서로 맞물리며 정치양극화를 확대 심화시킨다. 대통령의 권력독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양극화를 일상화하는 진앙이고, 이 악순환의 첫 단추 고리는 승자독식 선거제이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단절의 강’을 넘는 해법은 뭘까? 대통령-연합정치 조합이다. 하지만 대통령-연합정치 조합은 아직 한국 민주주의엔 낯설다. 서로 궁합이 맞지 않아 ‘죽음의 키스’로 갈 운명이라는 것. 이런 오해는 정치인, 심지어 학자들에도 꽤 널리 퍼져 있다. 과연 대통령과 연합정치는 순기능적으로 조응할 수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연합정치는 대통령제와 공존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집권당만으론 입법과정 통제가 원활하지 못할 때 다른 정당들과 연합정치를 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에서처럼 정당연합과 조응하며 작동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통령제는 연정대통령제(coalitional presidentialism)로 변형된다.

연정대통령제의 설계가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를 창조적으로 파괴, 한국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지향하는 연정대통령제가 새로운 정부제도적 틀로 디자인 돼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이 글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연정대통령제로 개편하는 프로젝트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로 가는 길임을 주장할 것이다. 이 주장을 논리적·경험적으로 따져 보고, 대선 후보들의 정치개혁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나아가 그들에게 연정대통령 제도화의 길을 찾고, 그 전제조건인 선거제 개혁을 공약하라고 권고하고자 한다.

ⓒ연합뉴스

제왕적 대통령의 정치양극화

대통령 선거는 본질적으로 ‘완승-완패’ 구조를 야기하는 완벽한 불비례적 정치 게임이다. 득표율에 관계없이 단순다수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모든 국가권력을 접수하는 ‘민선황제’급으로 등극,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집권당 중심 단독정부를 구성한다. 승자-패자 간 권력배분이 ‘100 대 0’으로 양극화된다.

대통령은 국가수반권과 정부수반권, 외정권과 내정권, 비상대권과 평시국정권을 송두리째 장악하는 제왕적 권력독점형이다. 선거제에 힘입어 의석을 독과점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과 국회의 모든 에너지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고 되찾기 위한 무한 투쟁으로 집중된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제도적 허들이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은 정당정치를 양극화시킨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대 패권 정당은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오월동주 뱃놀이’ 정치를 연출하며 양극단적으로 대립한다. 이 충돌의 중심에 놓인 제왕적 대통령은 여대야소 정국에선 집권당을 앞세워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보지 않고, 야당 없는 일방독주의 통치 드라이브에 익숙해진다.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에 충실히 복무하는 집권당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사활을 건 발악적인 투쟁으로 저항한다.

이런 정당정치의 양극화는 곧바로 국회정치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국회정치의 양극화는 외견상으론 정당 간 정책 차이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엔 제왕적 대통령의 정책・입법 의제를 둘러싼 집권당의 일방적 지지와 야당의 일방적 반대가 부딪치는 정당정치의 양극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런 국회의 정치지형은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의사를 투입하고, 이를 정책 의제화-입법화하는 정치 프로세스의 원활한 작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은 행정부-국회 관계를 양극화시킨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대통령-국회 충돌로 입법·국정 교착이 일상화된다. 집권당은 제왕적 대통령의 ‘호위무사’ 돌격대로 행동하며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다는 조롱을 받는다. 이에 야당은 집권당과의 협상정치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을 상대로 충돌한다.

요컨대 제왕적 대통령의 불비례적 승자독식 권력독점은 정당정치 양극화, 국회정치 양극화, 대통령-국회 양극화를 고착화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위협하고 있다. 나아가 제왕적 대통령은 초당파적인 국가수반으로서 사회통합-국민통합의 국가 구심력 역할은커녕, 당파와 진영의 팬덤정치에 의존해 시민사회의 진보진영-보수진영 양극화를 야기하고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유발하며 국가 원심력을 키우고 있다.

연정대통령의 승자독식-양극화 정치 해소 및 제도화 조건

대통령제는 정치적 진공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실질적 작동 양태는 정당정치와 연계시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정치 패턴은 대통령제 작동에 심대한 임팩트를 투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제의 작동 양태는 어떤 정당정치 패턴과 연동하는가에 따라 역동적 가변성을 보인다.

연정대통령제는 대통령제가 연합정치와 연동하며 권력을 분점·공유하는 정부제도이다. 미국식 권력분립 대통령제와 유럽식 권력융합 의원내각제의 변증법적 하이브리드형이다. 연정대통령제의 라이프 사이클 중 요체는 연정협약, 내각연합, 입법연합이다. 정부수반이 의회 다수파를 형성하지 못하는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연정대통령은 통상적인 정부형태로 확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연정대통령이 제도화될 수 있다면,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를 완화 해소하는 데 제도적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연정대통령은 이념・계급・계층・세대・생태・지역 등 다수 사회블록으로 분열된 한국 갈등사회를 대표하는 정체성으로 차별화한 다당제를 제도화할 수 있다. 이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거대 양당 독점 정치를 완화하는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다.

둘째, 연정대통령 정부는 헌법상 분립된 대통령-국회 간에 정치적으로 권력을 공유하는 정부이다. 이를 통해 연정대통령은 정당 간 연합정치라는 연결고리에 힘입어 대통령-국회 협력에 바탕을 둔 포용적 국정 거버넌스를 작동시킬 수 있다.

셋째, 연정대통령은 현행 제왕적 대통령의 인사권, 예산권 및 정책결정권을 연정 파트너 정당 간의 배분을 통해 대통령의 승자독식 제왕적 권력을 분산할 수 있다. 대통령-국회 간 정책・입법 교착상태를 완화・해소하여 입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연정대통령제는 비례제-다당제-연합정치와 조합하는 의원내각제의 전형적 특징인 행정부-의회 협치 기제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대통령제의 의원내각제화’(parliamentarizing presidentialism)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연정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를 해소할 수 있는 대통령제의 진화된 정부제도다. 특히 행정부-의회 정책·입법 충돌이라는 대통령제의 아킬레스건을 피하는 최고의 협치 기예(技藝)이다.

그렇다면 연정대통령의 제도화를 유인하는 선거제도는 무엇인가? 우선 대통령제와 제도적 친화성으로 조합 가능한 국회의원 선거제는 정당연합을 유인하고, 이를 매개로 대통령-의회 협치가 작동하는 데 유리해야 한다(Colomer and Negretto 2005: 64-67). 바꿔 말하면 의원 선거제가 대통령 소속 정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여 단독정부를 구성하는 집권당 주도 패권적 정치지형을 허용하지 않는 다당제를 유인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선거제는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제다.

물론 비례제가 대통령제와 조응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 형태와 선거제 사이에 논리적 인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비례제-대통령제 조합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고, 제도적 정합성이 존재한다. 오히려 그런 제도적 조합이 다당제-연합정치-연정대통령의 제도화를 촉진하여 대통령 소속 정당 단독집권을 허용하지 않고,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 장치로 작용한다.

나아가 연정대통령의 제도화를 유인하는 대통령 선거제는 결선투표제다. 당선자의 과반 득표를 보장하는 결선투표제는 제1차 투표에서 살아남은 최상위 두 후보와 탈락한 후보들 사이에 다양한 선거연합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다당제-정당연합-정책연합-내각연합으로 이어져 대통령-의회 간의 원활한 협치를 유인하는 연정대통령을 제도화하며 대통령의 대표성·정통성, 통치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국회의원 비례제 및 대통령 결선투표제(개헌 사항 여부 논쟁 있음)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다당제-연합정치를 유인하여 승자 권력독점 제왕적 대통령제를 승자-패자 권력분점 연정대통령제로 변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제도적 조건이다. 동시에 소수당들이 정치력·협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연정국회-연정내각 참여의 길을 열어 주며, 종국적으로 경제양극화·사회불평등 완화, 갈등·분열 해소,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브라질 룰라, 한국 김대중 연정대통령 사례

브라질 민주주의는 개방형 비례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유인하는 연정대통령제를 근간으로 작동한다. 사실 민주화 이후 제정된 브라질 ‘1988년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인했다. 그래서 종종 미국 주류 정치학자들에 의해 최악의 제도적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았다. 연정대통령의 통치 불능이라는 심각한 제도적 원심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렇지만 브라질 연정대통령들의 성과는 그들의 예측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예상을 뛰어 넘었다.

무엇보다 룰라 연정대통령(2003~10)의 사회경제적 성과는 혁혁했다. 소년공으로 출발한 룰라, 그의 노동자당(PT)은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에 이르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10여 개의 군소 정당들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는 헌법상의 제왕적 권력을 통한 일방적인 입법독주가 아니라, 정당 간 입법 파트너십과 행정부-의회 협치를 견인하며 자신의 정책 프로그램을 의제화-입법화했다.

룰라 연정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보수 연정 파트너 정당들의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성장을 촉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임 정부가 만든 ‘기아제로’(Fome Zero) 정책을 흡수하여 저소득층 현금 복지인 ‘가족기금제’(Bolsa Familia)로 확대했다(Hunter and Sugiyama 2017: 134-141) 이런 정책 패키지의 실행 결과 빈민층은 일자리를 구했고 소득도 늘었으며, 이는 수요 확대로 이어져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촉진했다. 빈곤층의 비율은 2000년의 35%에서 2009년 22%로 줄었으며, 3천만 명 이상의 빈민층이 중간층으로 진입했다.

요컨대 룰라 연정대통령은 복지-성장의 선순환을 유도했다. 이로써 극심한 빈부 격차로 쪼개진 두 국민을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87%라는 미증유 경이로운 지지율로 ‘영광과 기적의 8년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에 세계는 부러움과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목하 브라질 국민들은 ‘룰라 향수’에 꽂혀, 그를 오는 10월 2일 치러지는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재소환하고 있다.

한편, 한국 헌정사에서도 연정대통령의 실험이 있었다. 1998년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보수 김종필과의 정치연합을 통한 김대중 연정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DJP 연합’은 진보-보수 이념연합, 정책연합, 입법연합이었다. 이를 통한 행정부-국회 협치는 외환위기 극복과 생산적 복지국가를 견인했다.

무엇보다 김대중 연정대통령은 남북관계의 기조를 바꿨다. 그의 햇볕정책은 남남갈등이라는 격렬한 저항 없이 출항할 수 있었다. 외교안보 통일 분야를 전부 보수 인사들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통해 남남연합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평화공존으로 이어지는 민족 대장정의 길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념을 뛰어넘는 정당연합을 통해 민주주의-경제복지-평화의 3축이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업적을 남겼다. 헌정사에 연정대통령이라는 가히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김대중·룰라 연정대통령은 설령 헌법상 제왕적 대통령제라 하더라도 행정부-의회 협치를 매개하는 연합정치라는 고리를 통해 의원내각제처럼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경험적 사례들이다. 다만 브라질의 연정대통령은 제도화의 길로 가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연정대통령은 제도화되지 못하고 2여 년의 단명으로 종료되었다. 가장 큰 그 이유는 양국의 국회의원·대통령 선거제의 차이에 있다. 브라질 민주주의는 비례성·대표성을 높이는 국회의원 비례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한국 민주주의는 불비례적인 단순다수 승자독식 선거제를 고수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정치개혁 공약에 대한 비판적 평가

대선 후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첫 단추인 선거제 개혁엔 침묵하고, 청와대 조직·인력 축소,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등 ‘번지수’가 틀린 비본질적 정치개혁 메시지만을 던지고 있다. 첫째,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국민통합 정부론’이다. 진영·정파를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정부에 기용해서 국민통합을 실현하겠다는 것. 일단 그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통합정부를 구성하려 했으나 야당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한국 정당들은 당 기율이 매우 엄격해 의원들의 자율적인 초당적 입법 연대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당이 자당의 유능한 인사를 타당의 정부에 참여시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설령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각에 야당의 개별 인사를 영입시키는 데 성공해도, 그 통합정부가 연정대통령의 정부 지위를 가진 건 아니다. 연정대통령의 정부는 야당 인사의 개별적 차원의 참여가 아니라 야당 정당 차원의 참여, 그것도 야당과의 연정협약 체결을 통해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의 통합정부론 구상은 한국 정치사회 분열을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국민통합을 지향하기 위한 선차적 필요조건은 ‘제도’이며, 정부의 ‘인재’ 등용은 충분조건이다. 필요조건인 연정대통령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면, 설령 3월9일 대선 득표율 3~4위 후보 정당들의 인사로 통합정부를 구성해도, 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극단적 대결 구도를 완화시키는 데는 별로 도움 되지 못할 것이다.

둘째, 이재명의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제’다. 집권 시 통합정부 구성을 명분으로 대통령이 국회가 복수 추천한 총리 후보 중 한 사람을 임명하겠다는 제도다. 이를 통해 총리에게 장관 제청권·해임건의권, 내각통할권 등 헌법상 실권을 부여해 대통령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국회 추천 총리제는 총선결과로 형성되는 국회 정당정치 지형에 따라 유동적인 가변성을 보일 것이다.

현 여대야소 국회인 경우 국회 추천 총리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혹은 친여성 인물)일 것이다. 민주당이 대통령의 통제 하에 있을 경우 민주당 추천에 따라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총리가 과연 장관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며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을지 자못 회의적이다. 이렇게 볼 때 현 여대야소 국회에선 총리 국회 추천제는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

2024년 총선에서 만일 민주당이 국회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될까? 여소야대 정국에서 이재명 소수파 대통령이 야당(들)과의 연정협약을 체결하고, 과반의석을 확보한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면, 총리를 연정 파트너 야당에게 양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야당 출신 총리는 적어도 자신의 소속 정당에게 주어지는 각료 지분에서는 각료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면 총리 추천 총리제는 청와대 중심의 폐쇄적 국정운영을, 국회-총리-대통령 관계를 유기적으로 가교시키는 공치(co-governing, 공동 국정운영) 시스템으로 바꾸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여소야대 정국 속 이재명 소수파 대통령이 과반 집권연정 구성에 실패하고, 예컨대 국민의힘이 국회 다수파가 되는 경우 국회 추천 총리는 국민의힘 출신 인물이 되어, 대통령-야당총리 사이의 동거정부(cohabitation)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이 경우 소수파 대통령이 야당 총리를 경질하면 국민의힘이 다수파인 국회는 또 다른 야당 총리를 추천하는 반복적 악순환이 지속되는 등 대통령-야당 충돌이 빈발할 것이다. 민주당-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의 양극적 블록화 현상을 고려할 때 소수파 대통령은 총리·국회와의 충돌로 통치불능, 국정마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정국 혼돈은 소수파 대통령과 다수파 야당 총리로 구성된 프랑스 좌우 동거정부(1986~88, 1993~95, 1997~2002)에서 발생했다. 나아가 국회 추천 총리는 정치적으로 대통령·국회 중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하는가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셋째, 이재명의 ‘4년 중임 대통령제’다. 국정의 연속성·책임성을 담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4년 중임제는 사실상 8년 임기 대통령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4년 중임제 국가에서 연임 실패는 드물게 나타나는 예외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4년 중임제는 중앙권력 정점인 대통령직을 쟁취하려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대 패권 정당의 양극적 블록정치와 정치투쟁을 현행 ‘5년 단임제’에서보다 더 살벌하게 할 것이다.

설령 여야 후보들이 4년 중임제 개헌에 합의하고, 향후 헌법상 대통령 권력을 규범적으로 분산시켜 놓아도 현실에서는 잘 작동되기 어렵다. 헌법규범과 헌법실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거대 양당 국회권력 독과점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한, 4년 중임제는 승자독식-양극화 정치를 확대 격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대통령 권력이 분산될 수 있는 제도가 요청된다. 즉 다당제-연합정치와 조합하는 연정대통령의 제도화를 유인하는 국회의원 비례제 및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설계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안철수의 ‘책임총리제’다. 총리가 장관 제청권·해임건의권, 국정통할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제도다. 그런데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을 겸하고, 총리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다. 따라서 총리는 헌법상 정부의 책임자가 아니다. 만일 대통령이 재량으로 총리를 정부의 책임자로 격상시키면 위헌이다. 총리의 국정통할권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사하는 종속적 권한에 불과하며, 국무위원 제청권도 대통령에 대한 구속력이 없다. 결국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고, 본시 의원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의 제도로서 현행 우리 헌법과는 양립할 수 없다.

대선 후보들에게 권고

개혁보수도 동참했던 ‘촛불항쟁’ 정신을 계승한 진보적 문재인 대통령, ‘촛불 연정대통령’으로 가는 길이 순리였다. 이념연합-내각연합-입법연합-개헌연합으로 ‘87년 헌정체제’를 교체하는 합의제 ‘2017년 헌정체제’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야말로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었다. 그러나 승자 권력독점으로 촛불혁명은 분노-열망-실망 사이클을 그리며 미완에 그쳤다. 작금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적 궤도를 이탈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해방공간에서 찬탁과 반탁 좌우충돌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듯, 진보-보수 충돌로 우리 사회엔 ‘남남분단’ 징후가 어른거린다.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민주당은 ‘촛불혁명의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민주화 제단에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렸던 자랑스러운 영웅들이 포진한 민주당이 아닌가. 민주당은 압도적 국회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당·정의당에게 연정 시그널을 보내면 안 된다. 대선판의 초박빙 승부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해는 가지만, 공동정부 구성 운운하면 선거공학적 ‘잔머리’ 굴린다는 인상만을 줄 수 있다. 일방적 입법 독주가 가능한 180석 거대 민주당에겐 그들 소수당은 필수 불가결의 절박한 연정 파트너가 될 수 없는 ‘잉여정당’에 불과하다. 설령 그들 소수당이 공동정부에 참여한다고 해도 집권당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결별·배신당하기 십상이다. 과반을 훌쩍 넘는 절대 다수 의석을 거느린 거대 정당과 랑데부하는 소수당의 운명이 그런 수순으로 가는 건 어쩌면 연합정치의 법칙과도 같은 경로일 것이다. 통상 연합정치란 집권당이 과반의석 미달인 경우에만 지속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룰라처럼 인생 스토리가 드라마틱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 대신 대한민국 ‘경국대전’을 바꾼다는 스탠스로 연정대통령의 제도화를 유인하는, 순도 100% 독일식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제 및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 크게 공약하면 어떨까. 특히 소수당의 표심을 사실상 약탈하는 ‘준연동형 비례제’의 ‘제도적 불순물’을 제거하겠다고 공약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없는 민주당’이라는 항간의 조롱에서 자유로운 ‘민주당다움’으로 돌아가,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 정치양극화의 골을 개탄하는 중도층의 집단지성과 표심을 뒤흔들 ‘신의 한수’가 되리라. 이렇게 해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고 선거제 개혁 공약을 이행하면, 연정대통령 제도화의 길이 열리고, 이는 ‘포스트 87년 헌정체제’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게 이 후보가 절규하는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교체’의 단초이고, 촛불혁명의 제도화로 가는 1단계 로드맵이다.

반면 야권으로 정권교체가 현실화되면, 대선 후 정계개편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여소야대 대통령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소수파 대통령은 공약 입법은 물론, 당장 총리 인준에 거대 야당의 제동이 걸리는 등 험로, 아니 국정마비 사태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이런 ‘외통수 정국’을 돌파하는 전략적 옵션은 권력을 분점·공유하는 연정대통령의 포용적 국정 거버넌스다. 이 해법은 극도의 여소야대 국회 지형 속에서 그나마 소수파 대통령의 국정 리스크를 줄이는 정도(正道)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2024년 총선 전까진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야권의 공동 연립정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국민의힘-국민의당 연립정부다. 그러나 그런 보수블록 연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힘-국민의당-정의당 연립정부인데,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상정은 해 볼 수 있다. 이 가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국민의힘의 양보와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 국민통합이란 대승적 명분으로 보수-진보 이념연합-내각연합이 실현될 수 있다면 보수 정당사, 아니 대한민국 헌정사에 신기원(新紀元)이 열릴 것이다. 권력이란 나눌수록 총량이 커지지만, 독점하면 그 원심력이 커지는 속성을 지니는 법, 권력을 분점·공유하는 연정대통령 없는 국민통합 담론은 공허하다. 국민의힘은 이 권력의 역설을 진지하게 반추·성찰해야 한다.

정의당이 이념블록을 뛰어넘는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건 결코 ‘정치적 불륜’이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고 ‘가능성의 예술’이라 하지 않았던가. 노동 친화적인 정책적 반대급부·양보를 끌어낼 수 있고, 자신들의 정책 패키지를 국정에 반영해 정치적 신뢰성과 책임성을 검증받게 해주는 정권 견습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더욱이 보수-진보 연합은 노사정 대타협의 공간을 열어 줄 수도 있다. 바라건대 정의당은 고유의 이념적 정체성을 견지하되, 이를 실현하는 방법엔 유연한 전략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 “정치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를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연정대통령 공동정부의 필수 전제조건은 연정협약 체결이다. 연정협약 없는 ‘야권 후보 단일화’는 선거공학적 야합이기 때문이다. 연정 협상은 단순히 야당 총리 헌법적 실권 보장, 각료배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파트너 정당 간 정책적 교집합을 찾고, 양보-화답-보상 사이클로 정치적 대타협을 성사시키는 포지티브섬적 스몰딜→빅딜 수순으로 혁신성장, 복지정책, 연금개혁,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한반도 반전·반핵·평화, 특히 연동형 비례제 및 대통령 결선투표제 등을 포괄하는 국정의 종합적 비전과 정책의제들을 집대성해야 한다. 그 밑그림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의 소수파 대통령 국정 불안을 잠재우며 표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묻지마 정권교체’식 대선 프레이밍만으론 대국민 설득력도, 표심에 감흥을 줄 수도 없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진통제로 다스릴 수는 없다. 개척자의 발길을 기다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적 오지’로 남아 있는 연정대통령의 제도화,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 프로젝트 1호다. 정당연합에 토대를 둔 연정대통령의 이념연합-내각연합-정책연합-입법연합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례성-다양성-포용성, 연합성-호혜성-통합성, 대표성-책임성, 정당성-효과성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제도적 앙상블이고 정치적 기예이다. 이는 경제양극화 해소, 갈등완화, 복지국가, 사회통합, 국민통합의 길로 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적 최고 규범이고 인프라다. 대선 주자들의 원모심려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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