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변이바이러스가 유행하며 다시 감염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이번 유행의 피해는 백신 접종률에 따라 사뭇 다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는 유행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와 사망자가 적게 나오는 반면, 접종률이 낮은 나라는 보건과 경제 상의 지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백신 보급 불균형은 새로운 변이 출현을 용이하게 하여 팬데믹 통제를 지연시킨다. 상품, 서비스, 노동의 이동을 막아 세계경제 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백신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도록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코백스 퍼실리티가 본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한국의 역할 역시 작지 않다. 국내 바이오 산업의 기술력을 통해 백신 위탁생산에 기여하며 다자기구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 백신 도입이 지연되면서 글로벌 백신 불균형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백신 균형 보급이 팬데믹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국내 백신 접종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끊임없이 촉구할 필요가 있다. (필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대치상황이 지속된다. 빠른 속도로 백신이 개발되면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바이러스는 진화를 거듭하며 전 세계 곳곳에 다시 침투하고 있다. 델타, 람다 등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 규모가 커지고 있다(그림 1 참고). 영국, 프랑스, 미국, 이스라엘, 스페인 등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거나 국경을 열면 어김없이 확진자 수가 증가한다.
다만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감염 규모 증가로 인한 부담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고위험군 대부분이 접종을 마친 이스라엘,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은 확진자 수에 비해 중증환자 수나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접종을 마친 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에선 같은 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도 유행을 통제하기 더 수월해진다. 변이의 출현은 새로운 위협이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백신으로도 중증 및 사망을 막는 효과는 유지된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선 소위 ‘출구전략’이 논의가 되고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시대로의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접종률이 낮은 나라에게 ‘공존’은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등 아직 접종률이 낮은 상태에서 유행을 맞은 국가들은 중환자 급증으로 의료체계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고 사망자도 속출한다. 극심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다시 방역의 고삐를 죄는 수밖에 없다. 이미 장기화된 팬데믹 상황 하 봉쇄를 통한 유행 통제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이 나라들이 받을 보건과 경제 측면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 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백신 보급 불균형 때문이다. IMF의 추산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상당수 국가는 올해 말이 되어도 인구의 20%만 접종하는 데 그친다(그림 2, 3 참고). 일부 국가는 2022년 말이 되어도 인구의 60%가 백신을 접종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백신 보급 불균형은 단지 저소득국가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곳곳이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의 촘촘한 가치사슬로 연결된 지금, 한 지역의 감염병 유행은 언제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WHO가 우려변이(Variant of Concern)로 이름붙인 네가지 변이는 모두 특정 국가의 극심한 유행 상황 가운데 진화한 후 이웃 국가로 퍼졌다. 지난해 영국에서 처음 발견된 알파 변이는 유럽의 유행을 주도했고, 각각 남아공과 브라질에서 발견된 베타 변이, 감마 변이는 아프리카 남부와 중남미 지역을 휩쓸었다. 올 상반기 극심한 유행을 경험했던 인구 대국 인도에선 델타 변이가 발생해 주변국으로 퍼져나갔다. 델타 변이는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 상당수 나라에서 우세종이 되어가고 있다. 유행의 통제가 지연되면 거듭된 변이가 현재 백신 접종으로 현성된 면역을 회피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백신 불균형은 또한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곳의 바이러스가 다른 나라로 퍼지는 것처럼, 중저소득국가에서의 경제 회복 지연은 고소득국가에도 손실을 가져온다. 봉쇄조치로 인해 생산기지에서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여행 제한으로 인해 무역이 원활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경제가 타격을 입는다. 외국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 노동시장에 공급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백신 보급의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백신 접종을 마친 고소득 국가에도 최대 2조 6,0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농업 분야와 제조업 분야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력 수급난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백신 불균형 해소는 당면한 최대 현안이다. 위기 상황에 놓인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피할 수 없으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은 초국가적 기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고소득국에서는 접종 주저 현상으로 남는 백신이 폐기될 상황인데 저소득국가에선 그 백신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전염병유행대비혁신연합(CEPI)과 함께 코백스 퍼실리티를 설립하였다. 참여국 중 지불능력이 있는 국가에서 백신 구매 비용을 선입금하여 백신을 확보하는 동시에 백신 개발을 지원하며, 따로 기금을 조성하여 저소득국가에 백신을 공급하는 기구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90여 개 국가가 선입금으로 참여하였고 다른 90여 개 국가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 올라있다.
안타깝게도 실제 집행은 당초 계획에 못 미쳤다. 2021년 상반기 목표는 전세계 인구 3%에게 백신을 공급하는 것이었으나 7월 말까지 약 1억 5,360만 도스(세계 인구의 1.9%)를 공급하는 데 그쳤다. 공급 초기 백신 생산 차질과 자금 부족, 생산국에서의 수출 제한 등이 주요 장애물이었다. 코백스에 지원을 약속했던 고소득국가들은 자국의 수요를 먼저 충당하기 위해 인구수의 배가 넘는 물량을 입도선매했고 자연히 코백스로 들어가는 물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주요 생산기지인 인도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수출제한이 걸려 코백스에 계획대로 물량이 공급되지 못한 이유도 컸다.
여전히 백신 불균형 공급 해소를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과 유럽이 백신 접종을 어느 정도 완료하면서 중저소득국가에 돌릴 물량이 생기고 있다. 지난 6월 G7 회의에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약 10억 도스의 백신을 코백스에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일본, 한국 등은 코백스에 기부금을 확대하였다. 몇몇 국가에서는 주변국에 남는 백신을 직접 나누기도 한다. 내년도 상반기까지 전 세계 인구가 맞을 수 있는 백신이 생산될 예정인데, 그때까지 백신이 고르게 배분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저소득국가의 인프라를 고려하면 백신의 규제, 심사, 운송, 보관, 접종 설비 지원, 접종 인력 교육 훈련, 보건당국의 소통, 이상반응 심사 및 보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지원이 백신 공급에 동반되어야 함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할 역시 작지 않다. 한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력을 통한 백신 위탁생산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백신 보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스푸트니크V, 노바백스 백신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모더나 백신도 위탁생산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 국내외 백신 공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글로벌 허브’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다.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난을 해소할 뿐 아니라 국내 기업이 기술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뿐만 아니라 다자협력체제 안에서 기여도 요구된다. G7(한국 초청), G20, WHO, 국제팬데믹조약 등의 보건협력 논의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경제력과 기술력에서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지난해 팬데믹 대응 성공의 경험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나라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선결조건이 있다. 바로 국내 여론의 지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성적표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좋지 않았다. 7월 30일 현재 1차 이상 접종 비율이 36% 정도로 이미 60~70% 이상 접종을 마친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미국에 비해 뒤쳐졌다. 물론 백신 계약이 진행 중일 때 국내 감염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확실한 백신에 공격적인 투자를 할 여건은 아니었다. 고소득국가임에도 접종률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호주, 뉴질랜드, 대만, 일본 등도 비슷하게 유행을 통제하며 접종이 늦춰진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의 유익을 미리 간파하고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물론 공급의 시기가 조금 늦었을 뿐, 우리나라의 백신 확보 현황은 전 세계에서 수위권이다. 개별 계약과 코백스 선입금을 통해 인구 두배수에 가까운 백신을 확보하였다. 현재 계약대로 물량이 도입되고 있어 올해 11월까지 인구 70%가 2차 접종을 완료하는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접종을 위한 인프라와 인력을 갖췄고 시민들의 백신 수용성도 높은 편이어서 일단 도입만 되면 빠르게 접종률이 올라갈 것이다. [그림 2]에서도 보이듯 한국의 올해 말 예상 접종률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도입 지연에 지나치게 여론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주목을 덜 받았다. 우리나라는 인구 수 이상의 백신을 확보했기 때문에, 남는 백신 활용 방안을 미리부터 준비했어야 한다. 꼭 백신 자체를 지원하지 않아도 코백스에 기여금을 늘리거나 중저소득 국가의 접종 인프라 구축을 지원할 수도 있었다. 국내 생산 분을 통해 백신 불균형을 해소하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보는 방법도 있었다. 여러 통로를 통해 우리 경제력에 걸맞는 기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국내에서 쓸 백신이 부족한 상황에 글로벌 백신 불균형 논의는 외면받았다.
앞서 말했듯, 백신 불균형 해소는 곧 우리를 위한 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행 통제가 지연된 곳에서 발생한 새로운 변이가 유입되면 다시 거리두기의 강도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전 세계적인 유행이 통제되지 않으면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물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국내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만큼 전 세계적 유행의 동시 통제가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 그에 대한 지원도 더 활발해진다. 경제적으로도 이익이지만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IMF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70%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500억 달러이다. 이는 G7 GDP의 0.13%에 불과하다. 이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은 향후 4년 간 약 9조 달러에 이른다. 백신 균형 보급은 팬데믹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국내 백신 접종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끊임없이 촉구할 필요가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