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역사적 사실 왜곡과 연출 문제가 심각하게 지적된 <조선구마사>(SBS)가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실제의 역사적 배경 및 인물에 구마 소재를 결합한 판타지 사극이다. 첫회 방송 직후 논란이 시작되어 2회 방영 후 상황이 심각해졌다. 방영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이 있었고, 시청자의 분노는 해당 드라마 후원사 제품의 불매운동 움직임으로 연결되었다. 그 결과 제작 후원사는 제작 지원을, 주요 광고주는 광고를 철회했다. 해당 방송사는 방영을 잠정중지하고 재정비하여 방송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방송 철회를 결정하였다. "판타지에 무슨 역사문제냐"는 일부 견해도 있었지만, 그대로 보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이번의 경우는 그 문제를 지적하며, 시청자가 직접 움직인 결과였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노정하는 적지 않은 문제들에 시청자들의 적극적 반응이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 낼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글에서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 그 상상들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살펴본다. (필자)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의 바다
2019년 이후, 한국의 주간-주말 텔레비전 드라마는 월평균 7.22편이 방영되었다. 2006월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월평균 5.48편과 비교하면 급격한 증가이다. 방영 드라마 편수의 증가는 편당 방영횟수가 적어진 이유도 있지만, 드라마 방영 채널이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유를 무엇에서 찾던, 코로나19 펜데믹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
채널별로 지난 2년간 드라마 방영 편수를 보면, 드라마 방영의 주도권이 tvN과 JTBC로 넘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KBS1은 <대하 드라마> 같은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를 2010년 이후 편성하지 않았고, KBS2에서 주말 드라마의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MBC는 2019년 3월 이후 주말 드라마를 폐지했으며, 2021년에는 월화 드라마도 편성하지 않았다. SBS는 현재, 월화/금토 드라마만 방영하고 있다. 폐지나 미편성 슬롯의 증가는 지상파 드라마의 녹록하지 않은 경쟁 환경을 보여준다.
지난 2년간 방영된 드라마의 시청률 순위를 보면, 한국 시청자들이 노출된 드라마가 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드라마 시청 플랫폼이 다양하고 OTT서비스를 통한 시청이 늘고 있기 때문에 시청률이 과거만큼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적 편향성과 시청자의 기호를 가늠할 수 있는 여전히 의미있는 지수이다.
지상파 주간 드라마에서 1위는 <펜트하우스>인데, 이 드라마는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으며 많은 상을 받았던 <동백꽃 필 무렵>을 시청률 면에서 앞섰다. 비지상파에서는 tvN의 드라마가 최고시청률 10% 이상으로, 1․2위에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주간 드라마 시장에서 JTBC가 주춤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지상파의 주말 드라마에서 1~6위까지는 ‘가족’이 주제인 KBS2의 드라마였다. KBS2 주말 드라마는 탄탄하고 충성도 높은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7~9위는 SBS의 드라마인데, SBS 드라마 중 1위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막장’논란이 있는 <펜트하우스>의 시리즈 2이다. 비지상파의 주말 드라마에서 1~2위는 JTBC의 드라마로, 이들 드라마 또한 자극성과 막장성 논란이 있었다.
2019년~2021년까지 통틀어,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지상파 KBS2의 가족극, SBS의 막장극, tvN의 판타지, JTBC의 현실적 주제의 통속극이 주도한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 시장은 비지상파가 주도하며, 비지상파 주도의 제작 및 시청환경이 드라마 콘텐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텔레비전 드라마, 그 상상력에 대한 문제제기
상업적 성공과는 별개로, 2019~2021년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정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중이다. 파괴적인 욕망의 본능화, 일상성의 원칙이 사라지며 들어온 판타지, 그 판타지를 타고 들어온 잔혹성과 폭력성, 점점 강해진 일탈성의 자극들이 시청자 앞에 넓게 펼쳐졌다.
1. 혐오와 갈라치기
<펜트하우스>(SBS)는 겉으로는 돈(부동산)과 학벌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 욕망이 주요 서사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스카이캐슬>의 부동산 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카이 캐슬>과 달리 <펜트하우스>의 기본 정서는 혐오이다. 가난, 저학력,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이루는 능력주의를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가난한 사람의 절박함은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그들에 대한 혐오는 학교폭력, 살인으로 이어진다. 혐오는 ‘비루한 애들이 때마침 죽어줘서’(10회)라는 대사로 축약되었고, 돈과 권력을 이루는 뒷배의 힘은 ‘탕물 갈아’(7회)의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졌다. 이러한 드라마는 이야기 안에서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혐오를, 그 바깥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계층에 대한 증오를 만들어내며, 시청자를 ‘갈라치기’하는 중이다.
2. 일상 속의 빌런, 악의 일상화와 공포
2021년 3월 22일 현재, 방송 중인 주간-주말 드라마 13편 중 3편이 연쇄살인 혹은 대량살생을 다룬 소재이다. 그 중 <괴물>과 <마우스>에는 사이코패스적 살인자가 등장한다. 사전적 의미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사람’이 드라마 악역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빌런으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악함의 본능화와 살인의 일상성이 표현될 수 있었다. <괴물>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살해하여 살아있는 채로 매장하였고, 그는 다른 살인에서 손가락을 잘라서 전시품으로 진열하는 잔혹성이 보였다. 사이코패스 기질은 유전이며 태생적이라고 주장하는 <마우스>에서는 종종 상황을 설명하는 살인자의 내레이션이 전개되며 시청자를 살인자의 청중으로 만들어버렸다. <빈센조>(tvN)의 실질적 빌런은 하키채로 사람을 ‘패서 죽이며’ 웃는 잔혹한 인물이지만, 평범한 일상인 속에 섞여져서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범죄의 본능과 필연성을 보여주는 이러한 서사는 시청자에게 쫄깃한 긴장을 줄 수는 있지만, 일상 속 빌런에 대한 공포, 경계와 불신감을 함께 전달하고 있다.
3. 장르 관습을 타고 재유입된 성차별의 서사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판타지, 미스터리, 범죄극이 많아지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차별적 재현도 드라마 속으로 재유입되는 중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드라마의 성차별적 요소를 분석․비판해왔다. 그 요소들이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의 성차별적 재현과 묘사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하지만 판타지, 서스펜스, 미스터리, 범죄 드라마의 장르관습을 타고 그러한 차별적 재현이 재연되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서스펜스․범죄 드라마에서 약자 혹은 희생자는 주로 여성이었다. <괴물>에서는 여성의 주검, 잘려진 신체가 반복적으로 보여졌고, <루카: 더 비기닝>에서는 여성의 자궁이 초월적 인간의 대량생산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여성의 신체를 통한 대량 출산이 실패하고, 마지막 회에서는 복제인간의 기계적 탄생으로 대체되었지만, 여성을 도구적으로 묘사한 드라마의 재현에는 불편함 이상의 문제가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히어로에 대한 기대
방영 철회로 결론난 <조선구마사>는 첫회 ‘19세 이상 시청가’로 출발하였다. 칼로 목을 베는 피가 낭자한 살육 장면과 피웅덩이를 직접 보여준 연출은 충격적이었다. 시청자에게 피를 보여주는 것은 암묵적 금기였으나, 최근에는 깨지는 빈도가 늘었다. <펜트하우스>가 그렇고 <빈센조>도 그렇다.
2021년 현재,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의심과 경계, 불안, 불안정과 부정한 갈망이 느껴질 뿐 온기가 덜 느껴진다.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이들 드라마는 한번 쓰고 버려지는 제품으로 인식될 뿐, 우리 시대의 감정과 정서를 대변하며, 때로는 살아낼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던 과거의 그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해당 기간동안 방영된 드라마에는 <동백꽃 필 무렵>, <눈이 부시게>, <이태원 클라쓰>와 같이 내용도 따듯하고 시청률도 좋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들은 공동체와 삶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고, 청년의 고민에도 공감하게 했다. 불가사의한 판타지 소재를 찾는다면 <경이로운 소문>같은 드라마도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평범한, 보편적인 다수의 정서적 양식이다. 가끔은 자극적이고 짜릿한 것을 찾지만 독약을 먹을 수는 없다. 보편적인 이야기 텍스트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동시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윤리의 기준을 함부로 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 최불암 시리즈에서 그 시대의 허무감을 읽어내었듯이, 오늘날 유행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분명 우리 시대만의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각자도생, 승자독식, 능력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상이 만들어내는 소외, 불안, 공포, 결핍의 부정적 감정의 과잉에 대한 점검과 진단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판타지적 영웅 소재의 드라마를 통해 보듯,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사회의 문제점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초인적인 능력이나 히어로에 대한 갈망도 반영되어 있다. 현실적 제도적 차원에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다양성과 공익적 가치를 상기시키며 이야기 바다의 오염을 막으려는 초(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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