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생태계는 다양한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는데, 우리 사회 내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았다. 대회가 취소되고 선수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행정 조직과 미디어는 막대한 재정 손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운동이 최고의 면역력'임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점은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물론 대면접촉이 줄어들고 신체활동이 위축되면서 장기적으로 특히 어린 세대들의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우려스럽다. 어쨌든 스포츠 세계는 늘 그래왔듯이 놀라운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일 것인데 스포츠의 재구성을 위한 몇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스포츠 격차(sports divide)'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스포츠는 기본적인 인권 중의 하나지만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수록 극단적으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또 운동을 계몽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즉 '스스로 동기를 찾아내 운동 하도록 설득(persuasive encourage to regularly exercise)'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운동은 습관이 되기까지가 어려운데 이 과정에 '슬쩍' 개입해 옆구리를 '툭' 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음으로 스포츠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을 더욱 더 껴안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포츠가 디지털화될수록, 디지털이 스포츠를 잘 이해할수록 상호확장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 주로 이용됐던 스포츠의 가치를 교육적 측면에서 적극 확대해야한다 '날 것 그대로'의 스포츠 경험을 통해, 스포츠는 더욱 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지구라는 이름의 구체(球體, ball) 위에 살고 있는 78억 명의 인류는 2020년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견뎌야만 했다. 이중 지름 72cm에 불과한 작은 구체, 야구공으로 인해 행복했던 단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NC 다이노스 김택진 구단주다. 엔씨소프트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어린 시절 꿈꾸던 세계를 현실에서 이뤄낸 행운아다. '택진이형'으로도 불리는 그에 앞서 한국사회에는 '테스형'이 있었다. 그러나 나훈아라는 시대의 가수가 소환한 테스형은 세상에 대한 좌절과 정답 모를 질문과 관련있지만, 택진이형은 좌절보다는 성취를, 질문보다는 대답을 보여줬다. 택진이형은 어린 시절 ‘거인의 별’을 보며 야구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몸에 스프링 기브스를 했던 주인공 성호처럼 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커브 던지는 법도 익혔단다. 그렇게 한 어린이는 야구라는 꿈을 먹고 자라나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고, 야구단을 만들어 마침내 ‘진짜’ 야구부원들의 헹가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삶이 우리 사회에 보여 준 상징은 두 가지.
개인의 꿈과 시대의 상징
우선,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스포츠를 통해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다 끝내는 목표에 도달한 신화를 보여줬다. 꽤 오래 전 한 기업인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평생 아마추어 골퍼로 산 그는 인생 황혼기에 오롯이 자신이 번 돈으로 골프장을 완성했다. 그때 그가 보여 준 자부심과 기쁨, 감격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택진이형은 '스포츠 꿈'을 이룬 것이다. 운동선수가 아닌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 스포츠를 매개로 자신만의 꿈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인데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일 아닐까. 택진이형이 상징하는 것은 또 있다. 국내 10개 프로야구팀 중에서 우승을 거머쥔 그의 구단은 굴뚝산업이 아닌 신생 산업에 속한다. 설탕과 나이론, 음료수, 건설을 모태로 성장한 기업이 아니다. 창단 당시 NC는 연 매출이 채 6000억 원이 안됐지만 지금은 2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 순위 18위의 시가총액(약 20조 원)은 야구단 중 SK텔레콤과 기아차에 이은 3위다. 우리 산업 지형의 변화를 보여 주고 달라진 프로스포츠 풍경을 증명한다.
지금은 백신과 치료제로 인해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펼쳐질 새로운 스포츠 세계에 대해 제안할까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코로나 19 시대에 스포츠계에 벌어졌던 일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위축된 산업, 지연된 성장
스포츠생태계의 구성요소는 복잡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같은 거대한 행정 조직부터 각 나라의 리그, 클럽, 선수, 스폰서, 미디어, 교육 그리고 팬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고 스펙트럼이 넓다. 이들 각 분야가 모두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표적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며 1만1000명의 선수들이 출전기회를 잃었고 NBC는 12억5000만 달러의 중계료를 날렸다. '3월의 광란'이 취소되면서 TV와 마케팅의 기회 손실은 9억 달러에 달했고 플로리다와 켄터키, 조지아, 미주리, 밴더빌트, 어번, 텍사스 A&M 대학이 속한 SEC 리그는 1700만 달러의 수입을 놓쳤다.
한국의 2020년 스포츠산업 전체 매출은 53조592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대비 33.8% 감소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위력을 발휘한 지난 9개월 간 한국의 스포츠 산업 중 시설업은 전년 동기 대비 1.8배 폐업이 늘었으며, 용품업은 2.0배, 서비스업은 2.3배가 늘었다. 매출 또한 평균적으로 40~6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체의 87.9%가 4주 이상 휴업했다고 보고됐다. 스포츠 시설을 이용하거나 용품을 구입한 스포츠소비액은 전체적으로 8.5% 줄어들었으나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5월에는 대폭 늘어나 정책적 효과를 보여줬다. 물론 자전거(57.4%), 낚시(25.9%), 실내 골프장(19.2%), 실외 골프장(15.7%) 등은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에서 즐기는 친환경적인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감염의 위험이 적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작용했겠지만, 한때 자연 속에서 살아왔던 인간이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서 자연스럽게 추구한 결과로도 보인다.
전 세계 스포츠 산업 규모는 2019년 1290억 달러였고, 2020년에는 135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730억 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절반이 약간 넘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스포츠경기가 취소 또는 연기되면서 사라진 스포츠 관련 일자리만 130만 개라고 한다. 메이저리그야구(MLB)는 60경기로 축소되며 손실액만 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프로농구(NBA)는 최소 10억 달러의 손실을, 미국풋볼리그(NFL)은 경기장 손실만 5억 달러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세계의 스포츠 리더들을 조사한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스포츠 서베이 2020'을 통해 스포츠 산업이 지역에 관계없이(중동지역은 예외) 침체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산업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을 2022년으로 보는 비율이 43.4%로 나타났고 27.1%는 2023년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들 중 20% 이상은 2024년 이후나 돼야 회복되거나 아예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쏟아졌던 많은 기사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놀라웠고 나중에는 걱정과 불안을 넘어 공포에까지 이르렀다. 그중에서 가장 안타깝게 읽었던 기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라진 놀이문화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사는 학교에 입학한 후 많은 날 재택수업을 하다 가까스로(?) 등교한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신체 접촉을 전혀 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아이들은 술래가 몸만 스쳐도 잡힌 것으로 스스로 규칙을 바꿨다는데 서로 몸이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류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절대 필요한 것이고, 몸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꽤나 충격적이었다. 몸을 통한 교류의 부재와 소통 경험의 상실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막연하지만 확실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최근 Z세대인 12세에서 17세의 어린이 중 96%가 스스로를 스포츠 팬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도 했다. 그러나 열혈 스포츠팬이라고 여기는 비중은 34%로 10년 전에 비해 10% 정도 줄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종전염병으로 인해 더욱 더 스포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확실히 팬데믹은 기존 사회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형성한다.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로 이 기회에 새롭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스포츠를 위한 제언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왜곡되고 위축됐던 스포츠 세계는 늘 그래왔듯이 놀라운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일 것이다. 이럴 때 '좋은 위기를 낭비하는 것은 죄'다. 스포츠의 재구성을 위한 몇 가지 정책 방향을 제언하고 싶다.
우선 '스포츠 격차(sports divide)'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지식과 소득 격차를 의미한다. 스포츠 격차는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계층과 없는 계층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소득 격차를 넘어 생존의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불평등 문제'다. 예를 들어 택배노동자를 생각해 보자. 요즘의 쇼핑은 곧 온라인 쇼핑이고 택배산업을 온전히 떠받치고 있는 것이 이들의 노동이다. 그러나 택배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은 있어도 운동은 없다. 그리고 노동은 결코 운동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면역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면역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이라는 사실을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택배노동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마켓컬리나 쿠팡 같은 회사는 이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가능한 운동법을 개발해 제공해야 한다.
스포츠는 기본인권 중의 하나지만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수록 극단적으로 소외돼 있다. 또 스포츠정책을 고려 할 때 정부가 유의할 것은 운동을 계몽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스스로 동기를 찾아내 운동 하도록 설득(persuasive encourage to regularly exercise)'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은 습관이 되기까지가 어려운데 이 과정에 '슬쩍' 개입해 옆구리를 '툭' 치는 것이다. 요즘에는 개인이 일정 금액을 내고 운동을 지속하면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앱이 유행이다. 만일 정부가 내가 수행한 운동만큼의 금액을 매칭해 주고 이 금액을 내 마음대로 기부할 수 있다면 운동을 해야 할 이유는 두 배가 된다. 이때 나만의 개인운동은 곧 사회를 위한 운동이 된다. 일종의 '넛지효과(nudge effect)'인데 정책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군대에서의 전투체육도 확실히 위에서 시키면 재미가 없었다. 다음으로 스포츠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을 더욱 더 껴안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홈 피트니스, 스포츠 코칭, 스마트 경기장, 다양한 중계방송 등 테크놀로지가 적용돼 개척할 스포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인간의 스포츠 경험이 확대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앎과 느낌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다.
스포츠가 디지털화될수록, 디지털이 스포츠를 이해할수록 상호확장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정치적으로 주로 이용됐던 스포츠의 가치를 교육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대부분은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드론과 가상현실의 미래를 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 아닌가 질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 이외에 타인의 가치를 알고, 존재를 느끼며, 동시에 나의 한계를 깨닫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스포츠 체험이다. 스포츠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이 더욱 소중해 지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스포츠의 역할은 더욱 커져야 한다.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을 통해 더욱 더 인간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스포츠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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