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 중 1번 과제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이후 부처별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 4대강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국토교통부(국토부)도 지난해 11월 관행혁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발족하여 주택, 교통, 수자원분야에 관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3월 끝자락에 위원회는 공식적으로 경인운하가 실패했다고 밝혔다. 모두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수군거리는 것을 왕궁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꼴이랄까. 운하에 배가 다니지 않는 것을 실패라고 인정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논평을 썼다.
"임금님 아니 장관님, 이제 벌거벗은 사실을 인정하고 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여전히 경인운하를 놓지 못하는 국토부 수자원국
경인운하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과 함께 시작한 4대강사업의 쌍둥이사업이다. 애초에 굴포천 유역의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방수로로 계획되었지만 한반도대운하를 염두에 둔 이명박 정부는 한강 하류에서 서해바다까지 선박을 통한 물류수송, 친수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레저 기능을 제공하겠다면서 내륙운하로 확대, 2011년 완공됐다.
경인운하 관련 관행혁신위의 권고문 전문은 다소 오묘하다. 위원회는 △경인운하가 물동량 계획대비 8.7퍼센트에 불과하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채로 추진되었으며, △수자원공사 직접시행방식의 전환 결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졌고, △타당성조사 결과가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토부가 수긍한 '개선방향'과 위원회가 권고하는 '추가의견'이 나란히 권고안에 정리되었다.
국토부는 경인운하가 급격하게 추진되었다고 인정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실적이 계획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적극적인 활성화 방안과 기능전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초중량 화물을 지속적으로 발굴 및 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경인운하에 혈세를 쏟아 부어보겠다는 다짐이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정책결정자들의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백서를 제작하고 대형 SOC사업 추진 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며, 경인운하의 지속적인 운영을 전제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다. 또한 경인운하의 존치 여부까지도 검토해야 한다며 공론화 기구 구성 및 운영을 제시했다.
완강히 버티는 국토부를 과연 얼마나 혁신할 수 있을까.
경인운하를 놓아주기 아쉬운 이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시는 지난 4월 16일 서울시와 경기도에 공문을 보내 경인운하를 한강까지 연결해서 유람선을 운항하자며 정책 공조 강화를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에 대한 서울시와 경기도의 반응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일 것이다. 2015년 박원순 시장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한강관광자원화 사업을 합의하면서 여의도에 대형 선착장을 만드는 사업이 경인운하 연장용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서울시가 그동안 아라뱃길과의 연관성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해왔지만 인천시의 이번 제안으로 실제로는 얼마든지 경인운하 연장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증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보궐선거에서 철거를 시사한 한강 신곡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반면, 한강 개발에는 적극적인 모양새다. 하지만 한강 개발과 경인운하 연장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다시 묵묵부답이다. 내심 경인운하를 연장하고 크루즈를 띄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경인운하 공사를 맡았던 수자원공사는 어떤 입장일까. 수자원공사 관계자들도 경인운하의 실패를 인정한다. 물류도 관광도 목표치 대비 형편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방은 엉뚱하다. 수자원공사 등 경인운하를 추진하고 싶은 측은 경인운하가 실패했으니 서울로 연결해서 성공시키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물동량 예상 대비 0.08퍼센트라는 실적을 보여주는 경인운하가 100배가량 물동량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계획 대비 8퍼센트의 실적이다. 이를 성공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월 수자원공사가 파기하려고 했던 문서 중에서 경인운하 사업으로 1조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보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2010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는 사업비가 4301억 원 증가하고, 수입은 4조759억 원 감소한다며 국고 지원이 있어도 1조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결국 수자원공사는 사업 초기부터 경인운하가 적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추진한 것이다. 수자원공사는 경인운하를 서울로 연장해도 적자가 난다는 보고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신입 시절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생들로부터 청계천 안내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청계천을 함께 걸으면서 청계천 복원이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이들은 청계천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예산투입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청계천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의아해했다. 학생들과 함께 온 교수에게 이미 지하수가 말라버린 서울에 청계천이 인공 펌핑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일부 불가피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녹지 축으로 복원했다면 어땠을까?"는 답이 돌아왔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청계천 건설 당시 우리 사회는 고가도로를 없애는 데 합의해도 흐르는 물을 보고 싶은 욕심은 내려놓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의 혹독한 대가를 치룬 2018년의 대한민국이라면,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금 지원이 아니면 유지가 불가능하고, 인공적인 준설과 한강물을 퍼가야만 하는 경인운하를 과감하게 포기하자. 경인운하는 이제라도 주운수로 기능을 포기하고 오히려 녹지 축을 복원하고 홍수 시에만 방수로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역시 한강을 경인운하를 통해 바다로 연결하는 대규모 유람선을 포기하고 카약처럼 작은 무동력 선박을 타고 남북협력시대에 한강하구를 통해 예성강을 거슬러 개성까지 연결하는 생태관광은 어떨까. 한강 하구를 가로막는 신곡보도 훌훌 털어버리고 말이다.
꼼수에는 정수로
국토부 장관은 아직 관행혁신위의 권고안에 대해서 공식적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토부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 내 반발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방향이 잡히지 않은 것일까. 서울과 인천, 경기에 출마한 지방선거 후보들도 아직 경인운하에 대해서 구체적인 공약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자원공사는 문화체육관광부, 해양수산부, 인천시, 서울시 등 다양한 부처를 찾아다니며 경인운하 활성화를 위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미 실패한 경인운하에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가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꼼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인운하에 대해서 내려야 할 결론은 자명하다.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 같은 엉터리 대형국책사업이 더 이상 횡행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고, 더 이상의 예산 낭비를 막아 지속가능한 대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꼼수에는 정수로 받아친다.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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