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날 총회는 오후 3시에 시작하여 6시 반 너머까지 장장 3시간 반에 걸쳐 이사장과 사무총장 직선제 시행, 단체의 비민주적 운영을 두고 집행부와 이를 성토하는 회원들이 격론을 벌이는 등 전에 없는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올해의 작가회의 총회가 격년으로 임원 개편이 이루어지는 총회인 데다, 촛불 혁명 후 전체 회원들이 처음으로 공론을 주고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성폭력 이슈 묻히고 비판을 거부하는 총회
마침 작가회의 회원들이 연루된 성폭력 문제 등에 대하여는 최원식 이사장과 고문단이 모인 자리에서 특정인에 대한 제제 아닌, 문단 등단 및 신인들의 작품 발표를 둘러싼 성폭력 문제는 일체 용납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날 총회에서는 성명서가 별도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결국 이날 총회 쟁점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반복되어 온 이른바 '총회준비위원회'(약칭 '총준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간접선거제 개편 및 운영의 민주화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동안 총회를 몇 달 앞두고 급조된 총준위에서는 집행부 추천, 나아가 지회 지부 등의 추천으로 이사장 후보와 사무총장 후보를 물색, 결정한 후 총회에 보고해 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객관적인 임원 선출을 위하여 대부분의 시민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부재함은 물론 일반 회원들을 상대로 한 입후보자 모집 공고 등이 전무한 것 등이 회원들 사이에서 큰 문제로 제기되었다. 사정을 모른 채 작가회의에 입회한 신입회원들 사이에서는 진보 문학 진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적폐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원식 이사장과 안상학 사무총장은 전국 13개 지회와 14개 지부장들을 단상으로 불러올려 인사말을 하게 하거나, 자유실천위원회와 문인복지위원회 위원장 등 분과 위원장들로 하여금 미리 준비된 문건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는 보고를 하는 것으로 1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는 등 임원 개선 총회에 어울리지 않는 진행으로 참석 회원들의 불만을 샀다. 급기야 감사 보고 후 홍기돈 대변인이 2017년 전체사업 평가를 문안에 있는 대로 10여 분 이상을 읽어나가다가 회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집행부의 일원인 이사장과 사무총장 및 대변인들은 평가를 받을 대상이지, 작가회의 사업에 대해 평가를 할 위치에 있지 않음에도 자화자찬식의 평가를 읽어 내려가다가 여러 회원들의 거듭된 지적 끝에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2017년도에 작가회의 이사회에서 여러 차례의 논의가 이루어진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의 경우, 작가회의 본회에서는 언론 공표도 생략한 채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특별하게 강제하지 않지만, 심사 및 수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하여 적잖은 회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대전․충남작가회의와 충북작가회의에서는 작가회의 본회의 불분명한 처신을 비판하며 친일기념문학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 없이 사실만을 나열함으로써 회원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이른바 '셀프 비판'과 '셀프 평가‘라는 핀잔을 자초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인 권위상 씨가 임원 개선 총회답게 유인물로 제출된 보고 안건 등은 간략하게 처리하고, 임원 선출이 신중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회의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에 집행부가 회원들의 발언권을 묵살하고, 마이크를 주지 않아 김자현 시인 등 여러 회원들부터 여기가 무슨 가부장 모임이냐, 편파적으로 집행부에 우호적인 회원들에게만 발언권을 준다는 항의를 받은 끝에 마지못해 마이크를 건네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다.
총회준비위원회라는 권력의 배후에는
임원 선출 순서에 들어간 최원식 이사장은 기존의 정관대로 임원을 뽑을 수 없다며 총준위에서 추천한 이경자 소설가를 회장 후보로 올려 박수로 가결되었다가 말하다가 김창규, 김광철 회원들의 반론에 부딪혀 거수 표결을 다시 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결국 230여 명의 이날 참석자 중 100여 명 정도의 회원들이 거수로 찬성하여 총준위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이른바 거수기로 전락한 데 모멸감을 느낀 수많은 회원들이 손을 들지 않는 등 집행부의 일방적 진행에 반대 의사를 묵시적으로 표현했다.
다음 사무총장 선출 순서에서는 한 회원이 '사무총장은 총회에서 선출한다. 단,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가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찬반투표를 우선적으로 실시한다'는 정관 10조 2항을 거론하며 사무총장 후보를 총회에서도 내고 토론을 거친 다음 투표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최원식 이사장은 현재까지의 정관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표결을 강행하려 하였다. 한편으로 다음 임기 이사회에서 지역 지부 추천 인사를 포함한 '30인 총준위'로의 개편, 직선제 개편 등을 포함한 정관 개정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발언도 내놓았다.
이규배 <문학과 행동> 발행인은 발언권을 얻어 그동안 30년 내리 임원 직선제를 비롯한 작가회의의 민주적 운영을 회원들이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부되었다며, 진보문학 단체답게 회원들의 총의를 물어 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중립적 '정관 개정 소위안' 거부되다
이날 기타 안건으로 오른 것은 총준위 확대 개편을 골자로 한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 준비위원회 규정'과 '정관 개정 소위' 구성안이었다. 최 이사장은 앞의 안건을 그동안 총준위가 고심 끝에 준비한 안이라며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조삼현 회원 등은 '새로 개정한 총준위 규칙은 공표한 날로부터 시행한다'는 부칙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총준위 개정 규칙은 아직 공표하지 않았기에 규칙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어서 김광철 회원, 김창규 회원 등이 나서서 표결 등에 반대했지만 이사장은 박수로 강행 처리하였다.
마지막 '정관 개정 소위원회' 설치 안건은 장우원 회원 등이 발언권을 얻어 촛불 혁명 대처 부족, 작가회의 회원 가운데 성폭력 연루자에 대한 제제 불충분, 친일 문인 기념문학상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처 등 집행부의 처신이 불신을 사고 있으므로 정관 개정에 즈음하여 이번 총회에서 중립적 인사를 소위 위원장으로 선출하자는 중재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총회 막판에 이경자 신임 이사장이 이시영 고문이 '정관 개정 소위는 새 이사회에서 꾸리자'는 취지의 쪽지를 건넸다며 읽어주는 등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 끝에 흐지부지 묵살하려 들었다. 이에 한 회원이 일어나 "일단 동의가 들어왔고 재청, 삼청이 들어왔으므로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발언한 끝에 변변한 표결 절차도 없이 신임 집행부로 일임하는 것으로 봉합되었다. 실로 민주적인 절차가 철저하게 무시된 광경이었다.
오후 6시 반 가까스로 신임 이사장과 사무총장의 인사말을 들으며 제31차 한국작가회의 총회는 끝나고, 사람들은 한 군데 모이는 대신 세 군데로 흩어졌다. 이경자 이사장은 '할머니의 마음으로 회원들을 포용하겠다', '작가회의는 뜻있는 문인들이 함께하는 친목단체이니만큼 잘 꾸려 나가겠다'고 밝혔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시절 한 차례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하차한 전력이 있는 한창훈 사무총장은 '뭔가 잘못한 듯한 부끄러움을 떨치고 잘해보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신임 임원들이 선출 과정에서 회원들에게 아무런 공약을 밝힌 적도 없고, 총회 수락의 말에서도 작가회의의 위상 변화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작가회의는 문인 단체이기도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민주주의 위기가 닥쳤을 때는 가장 선두에 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외친 진보적인 시민단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창립 정신에 걸맞은 민주주의 실천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74년 11월 18일 월요일 오전 10시 시인 고은, 소설가 이호철, 문학평론가 백낙청, 소설가 이문구, 소설가 황석영 등 문인 20여 명이 광화문 네거리 의사회관(지금 교보빌딩) 앞에 모여 첫 깃발을 들었다. 결성 당일 발표한 '문학인 101인 선언'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투옥과 해고의 위협을 무릅쓰고 분연히 일어선 문인들은 '문학인 101 선언'을 통해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김지하를 비롯한 긴급조치 구속 인사 석방,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 사상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기습 시위까지 벌였다. 시인 고은이 17일 밤 화곡동 집에서 소설가 박태순과 함께 만든 옥양목 현수막 두 개에는 '우리는 중단하지 않는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시인 석방하라-자유실천문인협의회'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대표간사는 시인 고은이 맡았으며, 회원은 모두 101명이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외쳤던 이 선언은 유신독재의 암울한 어둠을 깨치는 빛이 되었으며, 1980년대 전두환 군사 독재를 타파하기까지 문학은 깨어 있는 정신의 표상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저 빛나는 6월항쟁에 힘입어 1987년 9월 17일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꿨다. 2007년 12월에는 '한국작가회의'(약칭 '작가회의')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그동안 박정희 독재를 풍자한 시 <오적(五賊)>을 발표한 김지하, 시 <겨울공화국>을 써서 민중들이 직면한 춥고 엄혹한 현실을 고발한 양성우, 군부독재의 장기 집권을 조직적으로 혁파하고자 했던 '남민전‘을 주도했다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시인 김남주, 1980년대 전두환 군부 독재에 저항하였다는 이유로 투옥된 시인 고은 등 수많은 문인들이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살아있는 정신의 표상이 되었다.
이번 총회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40년에 이르는 동안 사회 환경이 급변하였음은 물론 문학 지형이 크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도층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구성원들만 하여도 2300여 명에 이르고 조직도 전국화되었지만 예전의 열기에는 크게 못 미치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용산 철거민 강제 철거, 불평등한 한미 FTA 조약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도 정작 한국작가회의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젊은 문인들이 따로 '젊은 문학인 선언' 등을 하는 등 느슨한 대응을 보여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민주를 지향한다면, 비민주적인 운영체제부터 혁파하라!
그 저변에는 한국작가회의의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집행진이 회원들의 총의를 반영하지 못한 채 '총회준비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서 결정되는 비민주적 구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도 참석한 수백 명의 회원들은 임원 개선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의 소견 한마디 듣지 못한 채 이른바 '총회준비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통보받아야 했다. 어느 조직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때로는 해고와 투옥도 마다해온 조직이, 자신들을 이끌어갈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임원을 가장 비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만장일치'의 박수로 선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바뀐 규모에 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데서 오는 반시대적 행위이다.
새 집행부는 이번 총회를 통해 표출된 민심의 소리를 뼈아프게 들으며, 작가회의의 민주적 개혁에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작가회의 총회를 통해 적잖은 작가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외침이 분출되었고, 새 집행부도 그 같은 움직임을 함께 듣고 본 만큼 차기 한국작가회의 총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바라면서 회원들은 어두운 밤길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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