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같은 인간을 합법적으로 사고 판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이다. 시대와 문명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원칙적으로 노예는 인격이 부인된 존재, 자유와 권리가 원천적으로 부정된 존재, 증여와 매매가 가능한 존재였다. 노예는 신체의 자유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노예주에게 전적으로 예속되었다. 한 마디로 노예는 말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인류가 이룬 빛나는 성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노예제도의 폐절이었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인간자체'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대신 특정인이 자유로운 의사에 기해 다른 사람(자연인 혹은 법인)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반대급부를 받는 고용계약이 일반화되었다. 고용계약이 그 속성상 일신전속(一身專屬)적인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계약이 체결됐다고 해서 사용자가 해당 근로자의 인격권-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 즉 생명·신체·자유·정조·성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권(私權)-을 침해할 권리를 취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람이 있으니 재벌2세인 최철원 전 M&M사 대표(41)다. 운수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후 맷값이라며 7000만 원을 건네 세인들의 공분을 자아낸 최 전 대표의 과거행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폭로되고 있는데, 최 전 대표의 행적은 듣고도 믿지 못할만큼 충격적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평소에도 회사직원들을 삽자루와 골프채로 폭행했는가 하면, 심지어 사냥개로 여직원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설혹 근로자가 고용계약에 어긋나는 잘못을 했다고 해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인사규정 등에 근거해 해당 근로자를 징계-징계의 종류에는 해고, 정직, 감봉, 견책 등이 있을 것이다-할 수 있을 뿐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지배되는 법치국가를 운위할 필요도 없이 그건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최 전 대표는 근로자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손수 매를 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근로자들의 인격은 고사하고 신체마저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없이는 차마 할 수 없는 행동인 셈이다. 근로자들이 최 전 대표가 대표이사로 있던 M&M사와 체결한 고용계약 안에 대표이사에게 폭언-때리는 마당에 욕하는게 대수랴-과 폭행을 당해도 좋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을리 만무다. 혹시 최 전 대표는 근로자들과 체결한 고용계약을 노예계약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근로자들에게 사형(私刑)을 가한 최 전 대표의 행동은 운수노동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최 전 대표의 범행과 마찬가지로 범죄를 구성하며 이는 명백히 처벌의 대상이다. 단지 추문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최 전 대표처럼 타인에게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하고도 징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을 때리고도 돈이 많다고, 권력이 있다고, 힘이 세다고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인격화한 자본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최 전 대표에게는 인격화한 자본의 그림자 보다는 고대 로마의 표한(剽悍)한 노예주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검찰과 법원은 최 전 대표에 대한 엄정한 수사 및 기소, 재판을 통해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이 고대 로마가 아님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힘이 세건 약하건, 돈이 많건 적건 법을 어기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게 국가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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