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통상 압박 "문재인표 한미FTA 모델 정립해야"

"미국이 한미FTA 재협상 원하면 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연 하게 될까. 협정문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한국이 재협상 추진에 합의하지 않아도, 미국이 요구하면 하게 돼 있다. 재협상 여부를 둘러싼 한국 내 혼선은, 부질없는 거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한국과의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언론은 이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추진'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곧바로 반박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 정상회담 때 양국이 한·미 FTA 재협상에 합의하였다거나 재협상을 공식화하였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워싱턴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관련 발언에 대해 "합의 외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한·미 FTA 재협상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미FTA 협정문 "개방 가속화 요청 있으면 협의에 응할 의무"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재협상에 합의했는지 여부는 의미 없다. 한·미 FTA 재협상은 서로 합의해서 정할 일이 아니다. 한쪽이 재협상을 요구하면, 다른 쪽은 응할 의무가 있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 협정문에는 개방 가속화를 위한 요청이 있으면 협의에 응할 의무가 있으며(2.3조), 이미 한미 FTA 개정을 위한 검토를 한미공동위원회의 권한으로 규정(22.2조)"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개별 조항에도 상대국의 제시사항에 대해 협의를 개시해야 할 의무가 규정(16.7조)"돼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면, 한국은 재협상 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말이다.

"문재인표 FTA 모델을 정립하자"

따라서 지금 논의해야 할 것은, 한·미 FTA 재협상을 할지말지가 아니다. 재협상이 시작될 경우, 어떤 내용으로 개정할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송 변호사는 "문재인표 FTA 모델을 정립"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의 한·미 FTA 협정문은, 문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정책과 상충하는 면이 있다. 재협상 과정에서 그걸 고치자고 요구하자는 게다. 송 변호사는 "경제민주주의와 임금주도성장, 그리고 원청-하청 적폐 청산"을 보장하는 내용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자동차와 철강 무역에서 양보하도록 요구한다. 또 셰일가스 수입 및 한국 대기업의 미국 투자를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한국이 다 받아줘도,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FTA 모델을 들고 나와서 한국을 압박하리라는 게 송 변호사의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새 정부의 정체성에 걸맞은 요구를 먼저 내놓는 게 낫다는 것. 송 변호사는 "우리의 FTA 모델이 없으면, 아무리 셰일가스를 사주고 미국에 공장을 지어 주어도 트럼프를 멈추게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존 협정문을 금과옥조로 선전한 탓에 생긴 혼선"

그런데 한·미 FTA 재협상 여부를 둘러싼 혼선은 왜 생겼을까. 송 변호사는 "2011년 최종 완성한 한·미 FTA 협정문을 금과옥조처럼 선전한 통상 관료들"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그들이 기존 협정문을 완전무결한 듯 포장했던 탓에, 양쪽의 합의가 없어도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쉬쉬하는 분위기가 됐다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