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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 누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함께 사는 길] <균> 작가 소재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우리의 은인들"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 2016), <소원>(이준익 감독, 2015) 등의 원작자인 소재원 작가는 '아들 바보'다. 그는 이제 한 살이 된 아들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말한다. 아이가 없었던 총각시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단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 아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날들에 감사하면서도 잊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다. 아들의 백일과 돌을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돕는 온라인 모금행사를 진행해 환경연합에 기부했다. 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겪은 내용을 담은 소설 <균>(새잎 펴냄)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없었다면 자신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우리 아들의 은인"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 2012년 2월 말 현재 환경부에 접수된 피해자는 5463명이며, 이중 사망자가 1143명에 이른다.

지난 3월 9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단체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옥시 불매 시즌 2'를 선언했다. 그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해결하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소재원 작가의 책 <균>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사진 오른쪽은 작가의 아들. ⓒ함께사는길

-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관심 두게 된 계기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처음 사건이 알려진 후 뉴스에서 반짝하다가 사라지지 않았나. 나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임신을 했고, 필요한 게 가습기더라. 가습기를 구입하고 가습기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알아보다가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다시 접하게 됐다. 가습기살균제로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우리 아들의 은인이다. 그들 때문에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에 대해 알게 됐고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중지될 수 있었으며 우리 가족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소재로 <균>이라는 소설도 발간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를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해서 소설을 내게 됐다. 흥행이 안 될 것이라고 출판사에서 출간을 반대했지만 다행히 뜻이 맞는 출판사를 만나 발간하게 됐다. 흥행보다는 누군가가 읽어야 할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 소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록물로 읽혔다

소설을 쓰기 위해 피해자들,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 활동가들, 정치인들을 만났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은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이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고 언론이 조명하지 않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백날 떠들어봤자 언론에서는 집중하지 않았다.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슈를 쫓는 정치인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했다.

▲ 소재원 작가. ⓒ함께사는길(이성수)
- 지난 1월 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또 국회에서도 피해구제법이 통과됐다.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참 부족하다. 아이 잃은 부모의 슬픔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는가. 고작 1년밖에 안 된 아들이 제 삶의 전부가 되었다. 총각 시절은 기억도 안 난다. 일 년밖에 안된 아이가 내 삶의 전부가 되었는데 그 전부를 빼앗긴다는 상상만으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가습기살균제 집회에 함께 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욕하는 사람이 있더라. 도대체 몇 년 전 일인데 그러냐고 그만 좀 하라고 하더라. 그런 분들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더 억울하고 황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 정말 그런 분들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가습기살균제를 팔아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나.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그들이 내놓은 보상금은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죽었지만, 그 누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유대인들이 하는 말 중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란 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나치 시절의 일을 다시 겪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를 겪고 가습기살균제 사태까지 왔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세월호가 있다고 본다.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은 정치인과 정부는 그 책임에서 다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가습기살균제 누가 허가 내주었나. 다 정부다. 근데 자기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때 그 책임을 정확히 짚고 기억하고 있다면, 가습기살균제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잊지 않고 감시해야 했다. 환경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고 안전불감증을 가진 정치인들을 퇴출시키면 되는 것이다. 근데 우리는 그걸 잊고 있다. 지금도 롯데 제품을 구입하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을 붕괴시킨 기업은 여전히 건물을 짓고 있다.

- 그동안 쓴 소설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그늘지고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초기엔 흥행 위주의 작품을 쓰려고 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봉사활동을 해도 내 명예를 위해 했다. 그러다가 아동성범죄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진짜 부끄러웠다. 내가 작가로서 성공하려는 이유가 내 글이 아니라 내가 빛나려고 했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내가 이들을 보고도 모른 척하면 내가 믿는 신을 위배하는 것이며, 위선이며, 가식이며, 사람들을 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아동성범죄 아이들의 만남이 내 삶의 터닝포인트였다.

- 약자를 대변하는 소설가로도 불리는데 어떤가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이야기, 나의 친구들, 나의 이웃의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밥 먹고 산다고, 누울 공간 있다고 약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약자로 살아가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나라는 상위 10퍼센트 빼고는 다 약자다. 스스로 약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때 부정부패에 대해 태연해진다.

▲ 2014년 가습기살균제 3주기 서울역 앞 퍼포먼스. ⓒ함께사는길(이성수)

- <균>을 영화화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가습기살균제를 판 롯데 측에 함께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 롯데뿐만 아니라 투자가 안 들어온다. 솔직히 제 작품은 어떤 작품이든 출간 전에 영화 계약하자고 먼저 제안이 온다. 또 균은 영화 <터널>에 비해 제작비가 훨씬 적다.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 대기업에서 마음만 먹으면 던져줄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런데 <균>은 투자를 해주지 않더라. 롯데 때문이다. 롯데는 배급사와 극장을 갖고 있다. 다른 데서 투자를 받고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롯데가 롯데시네마에 걸어주지 않을 것을 안다. 롯데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그럼 우리는 영화로 볼 수 없는가

국민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 수익금 전액을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조만간 실행될 것이다.

- 앞으로 계획은?

사실 이민을 생각했었다. 아이를 위해 평등한 세상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촛불집회를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나와 같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대가 생겼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모임을 만들었다. 작가로서도 흥행과 상관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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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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