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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현장]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낭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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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불령선인 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왜놈의 피로 손을 물들인 채 살았다
놈들은 할아버지를 마적이라 불렀다
할머니는 열아홉에 남편을 잃었고
과부의 세월 속으로 아편이 흐르고
알콜이 피가 되어 흘렀다
삶도 피 내음에 취해 광기든 세월
평북 의주 이름도 해맑은 청수동의 옛집은
놈들에 의해 세 번씩이나 불 질러졌다

할아버지는 밤을 도와
도막궁이를 타고 언 강을 건넜다
갈대도 귀를 쫑긋이며 엿듣는 위태로운 밤
연자방아 같은 달빛도 구름에 가리우면
삵이 보다 몸 빠른 대열이
노략질 당한 기억을 물어뜯으며 강을 건넜다
달 없는 밤에도 순결한 눈빛이 총구에 닿아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키면
언강이 쩌렁쩌렁 울며 갈라지고
눈 덮인 산맥이 내달리며
후드득 몸 떨어 숨결 푸르게 토해낼 때
오랜 침묵의 시간을 넘어
내 핏속으로 흘러오는
산맥의 서늘한 숨결을 느낀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작노트

우리 집안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사돈에 팔촌까지 독립운동으로 온통 풍지박살이 난 집안이다. 할 말이 너무 많으나 예전 어느 분의 글을 메모한 것이 눈에 띄어 대신한다.

1929년 생 나의 엄마는 정신대 관련 피해자다. 몇 년 전 어느 날 엄마와 티브이뉴스를 보던 중 소녀상으로 인해 소란한 장면이 나왔다. 귀가 어두운 엄마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정신대 할머니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했다. 엄마가 갑자기 치마를 걷어 자신의 두 발을 가지런히 맞추었다. 두 발 길이의 차이가 심했다. 오래 전 관절염을 앓았기에 그것 때문인가 나는 무심상하게 보았다.
"너거 외할배가 우리 형부(의사) 시키가 내 발목을 끊았다. 붕대를 얼매나 마이 감았던지 내 다리가 짚단만 했다. 이장캉 높은 놈들이 자꾸 찾아와사가 붕대를 밤낮 감고 있아노이 고름이 차고..."
"그 이야기를 왜 이제 하는데?"
"야야, 이 이야기는 절대 니캉 내캉만 알아야댄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안 한 나는 죄인이다. 죄가 어디 가나? 지금이라도 남들이 알아바라. 무신 일이 있일지...알았제? 너거 외할배가 내보고 죽는 날까지 비밀로 해야댄다캤는데...절대로 니만 알고 남들한테 카지마래이."
나는 비밀보장을 다짐받으며 아득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친구들이 열 하나랐는데 둘이 돌아오고 나머지는 모린다. 어데서 죽았는지 살았는지. 우리 황남 살 때 건네집 할매 알제? 그 할매 큰 딸캉 작은 딸캉 둘이가 만주 어데로 붙들리 갔는데 몬 왔다. 아매 죽었지. 살았이믄 안 올 리가 있나. 저거 엄마가 얼매나 기다맀는데, 하도 울아가 눈이 다 짓뭉캐지고..."
그 할머니가 장독대에 물 대접을 올리고 달에게 무어라 빌며 하염없이 손을 부비던 모습을 자주 보았다. 1943년 경주시와 월성군에서 대규모의 정신대 모집이 이뤄졌다. 몇 명이 아니어서 월성국민학교 운동장에 줄을 세워 실어갈 정도였다. 나는 일제의 만행을 엄마에게 낱낱이 일러주었다.
"나도 울아부지가 아이랐이먼 그래댔을 꺼 아이가. 아이고오~~~ 아부지요~~~내 친구들은 다 우째 댔이까. 내만 살자꼬...아이고오 이 일을 우짜꼬오~~~"
그 날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친구들 이름을 불렀다.

<출처불명의 메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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