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 중 약 40%가 20~30년 후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공평하고 빈부격차가 별로 없는 복지국가'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복지담론이 확산되었고, '복지국가' 의제가 선거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올랐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가 2012년에 설립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복지국가가 정치권이나 전문가 의제뿐 아니라 청년을 포함한 대중적 의제로도 형성이 되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복지국가 담론에 있어서 청년 의제는 지금까지 제대로 찾아보기 어렵다. 너도나도 '복지'를 외치지만, 청년들에게 '복지국가'에 대해 물었을 때, 답을 할 수 있는 청년이 많지 않을 뿐더러, '복지국가' 담론에서도 청년을 위한 정책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왜 청년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청년들은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표가 되는 세대인 '노인', '4~50대 직장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정책이 이슈 자리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청년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이며, 실제로 복지재원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이다. 그럼에도 청년은 정치적으로 가진 힘이 없기 때문에 복지 담론에서 배제되어 왔고, 또 한편으로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아픔을 사실상 외면당했다.
청년들은 충분히 아프다
혹자는 청년들을 향해 어린아이가 칭얼대는 듯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청년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청년실업이 10%까지 치솟고, 등록금, 주거비 등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극복할 수 없는 현실들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최근에는 청년들의 부채 문제까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이 없는 청년에게 남은 선택지는 빚을 지는 것뿐이다. 한국장학재단에 대한 대학생들의 채무는 8조 4000억에 육박하고, 채무불이행 때문에 신용유의자가 되는 비율도 상당하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청년들도 2014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7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빚까지 지면서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졸업한 후에 든든한 일자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무한경쟁사회는 옆에 있는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었고, 스펙을 쌓지 않으면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몰리게 했다. 그 가운데서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가 던지는 메시지는 청년들을 더 절망하게 한다.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지', '요즘 애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어', '우리 때는 더 힘들었는걸' 이라는 말로 청년들을 가볍게 대한다.
청년들의 망설임, 작은 움직임
그러나 기성세대의 인식과는 달리,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 보면 청년들에게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청년들도 청년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들이 각자의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누군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지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청년들의 미약한 움직임은 좀처럼 모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함께 청년들의 움직임이 줄어든 이유, 또 '요즘' 청년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당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과거 운동방식과 현재의 청년운동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청년이여
앞서 청년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는 행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등록금, 취업, 부채, 주거 등 청년들이 직면해 있는 많은 문제들에 혼자 대처하려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세대가 연대할 때, 그 문제에 공감하는 다른 세대와 연대할 때 변화의 가능성은 커질 수 있다.
청년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감당하기에도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빈곤율은 50%에 육박하고, 청년들은 3포 세대에서 5포세대로 포기할 것이 두 가지나 늘었다. 이것이 청년들의 노력 부족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발걸음은 무엇이 돼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처음 복지국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질까, 미래에 이러한 활동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말이다. 그러나 운동에 참여하고, 변화의 경험이 축적되었을 때 모든 두려움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청년 문제에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제안한 정책이 받아들여졌을 때의 뿌듯함과 보람은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작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기쁨이다. 경험을 축적하고 공유해 나갈 수 있도록, 청년들은 사회 문제에, 다른 청년들의 움직임에 응답해야 한다.
20년을 바라보는 복지국가전략
복지국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은 ‘조급해하지 말자’이다. 현재 서구 복지국가들이 건설되어온 과정은 지금 우리와 너무나도 많은 면에서 다르다. 그렇기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복지국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국가 운동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20년 계획을 세웠다.
첫째로, 복지국가 개념에 대한 대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담론이 대중화되기는 했으나, 복지국가 개념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둘째, 복지국가 담론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담론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전문가 집단은 아닐지라도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주역인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어떤 복지국가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회와 동떨어져 이상만을 제시해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적합한 복지국가 모델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넷째, 세대 내 연대와 세대 간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복지는 ‘연대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서로의 위험을 나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청년세대부터 기성세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눔으로써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섯 째, 세계화와 지식정보사회 그리고 탈산업 시대에 걸맞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현실과 맞는 복지국가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선진 복지국가들의 경험을 면밀히 관찰하고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위의 다섯 가지가 복지국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지향하는 복지국가전략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다섯 가지 전략에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지국가 전략을 가지고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노력한다면 20~30년 뒤 미래에는 ‘공평하고 빈부격차가 별로 없는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 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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