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 정책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 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그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이런 문제 의식에서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한다. 이 기획은 추상적인 논쟁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정책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비용을 추산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세 번째 기획이었던 MB의 '기업비리와 특혜'에 이어 네 번째로 MB 정부의 '원자력 발전소 비리'에 대해 살펴보겠다. 편집자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 비리와 연관하여,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불량 케이블을 납품한 JS전선 등을 상대로 1200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1) 이는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 결과 후 정부 측 대응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 비리 수사단을 설치하고 99일간의 강도 높은 수사 끝에 검찰은 2013년 5월 29일 원전 부품의 시험 성적서 위조, 대규모 금품로비, 한수원 등의 인사 청탁 등 고질적인 비리 구조를 상당부분 파헤쳤다. 이 과정에 부품의 제조업체, 검증기관, 승인기관 모두가 조직적으로 가담했던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2)
원전 비리에 연루되어 기소된 사람은 모두 126명으로, 이 중 74명에 대한 1심 선고가 2014년 2월 20일 있었다.(3) 일부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가 있었지만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납품청탁과 함께 1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송 모 한수원 부장이다. 그는 신고리 1·2호기에 납품된 JS전선 케이블 시험 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수뢰 사건으로 징역 15년과 벌금 35억 원, 추징금 4억3000여만 원을 선고받았다. 엄 모 JS전선 고문은 징역 12년,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징역 7년, 오희택, 윤영, 이윤영 씨 등 브로커는 징역 2년에서 3년6월에 처해졌다. 박영준 전 차관에게도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였는데, 이는 다른 사건으로 징역 2년이 선고된 것을 고려한 결과였다.
이러한 총체적인 비리는 여러 가지 손실을 초래하였지만, 실제로 손해배상 청구는 케이블 교체와 직접 연관된 비용뿐이었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한수원의 손해배상 청구는 케이블 교체비용에만 국한됐을 뿐 전력판매 손실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못한" 것이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추가로 2조8000억 원을 더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법 상 원전 사업자의 유한 배상책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원전 사업자의 배상책임을 5000억 원 유한책임으로 규정하고 그 손해배상 조치만 의무화했을 뿐 추가적인 비용적립이나 대책이 없다"고 지적하였다.(5)
불량 케이블 원전 비리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경제적 손실은 케이블 교체 비용을 포함하여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불량 케이블 교체와 직접 관련된 손실. 둘째, 케이블 교체로 인해 원전 가동 중지에서 생겨난 손실로, 원전 3기,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케이블 교체로 원전 완공이 지연되어 발생한 비용이다. 원전 2기, 신고리 3,4호기의 경우 2014년 8~9월경 완공 예정이었으나 완공이 지연되어 막대한 손실을 보아왔다. 발전 중지와 완공 지연으로 인한 손실에는 전력을 생산 판매하지 못하여 생긴 손실과 부족한 대체 전력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포함된다. 위 손실 이외에도 국제적인 신인도 추락과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은 금액으로 계산하기 불가능하지만 치명적인 손실이다.
케이블 교체 관련 직접 비용 1200억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3년 5월과 6월 각각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의 제어케이블을 모두 교체하도록 하고,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에 대해서는 케이블 성능을 입증하기 위한 재시험을 거치도록 하였다. 한수원은 "새한TEP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로 재시험을 추진 중이던 신고리 3·4호기 JS전선 케이블이 재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이미 설치된 케이블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케이블로 전면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였다.(6) 또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해당 케이블이 원전 사고 같은 극한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불량품임을 확인하였다.(7)
그동안 한수원이 JS전선에 지불한 불량 케이블 구매대금은 182억 원이었다. 이들 불량 케이블을 철거하고 교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예정에 없던 케이블 교체 작업으로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는 완공이 최소 1년 이상 늦어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케이블 철거·설치비용이 3000~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8) 이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200억 원을 청구한 것은 정확한 비용 계산이 어렵고, 손해배상 소송에 필요한 인지세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전 가동 중지로 인한 손실 1조5706억
2013년 여름 이상기온 영향으로 예년보다 이른 6월부터 무더위가 찾아왔고 냉방수요가 급증해 일찌감치 전력난이 예상되었다. 이 시기에 원전 비리 관련 불량 케이블로 인해 국내 원전 23기 중 10기가 가동을 멈춰 최대 1000만 kW에 달하는 전력공백이 발생하였다. 이 전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력당국은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민간발전소와 비상용발전기까지 급하게 가동해야 했다.(9)
전력거래소는 2013년 7월 30일 비용평가위원회를 열어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호기 등 원전 3기의 발전 정지로 추가 발생한 비용 가운데 9600억 원을 한수원이 부담하도록 한 안건을 가결했다.(10) 한전 측은 원전 3기 정지로 모자라는 전력을 메우기 위해 발전단가가 40% 이상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체 전력을 사들임에 따라 2조1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한수원 측에 손실 부담을 요구해왔다. 비용평가위원회가 결정한 한수원 부담액은 한전이 추정한 손실액의 45%에 해당한다. 한수원은 향후 한전에 판매하는 전력 판매비를 깎아주는 방식으로 9656억 원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한수원이 원전 가동 정지 기간(2013.5.29-2013.11.30) 동안 전력을 판매하지 못해 생긴 손실은 6050억 원이다.(11) 따라서 불량 케이블로 인한 원전 가동 중지로 한수원에 발생한 손실은 1조5706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손실은 손해배상을 통해 극히 일부 보전하겠지만 나머지 부족분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충당한다.(12)
원전 완공 지연에 따른 손실 3조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전력시장 모의분석 프로그램에 의하면 100만 kW급 원전 1기가 정지할 때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하루 전력구입비 상승분은 42억 원이다. 100만 kW급 2기가 정지하면 87억 원, 3기가 정지하면 135억 원이 된다. 여러 설비가 동시에 정지했을 때 지출이 단순 합산보다 큰 것은 전력 계통 한계가격이 비선형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13) 이를 염두에 두면, 2014년 8~9월 준공 예정이던 원전 신고리 3,4호기의 준공이 지연되는 데 따른 피해액이 1년간 3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비용량 합계 280만 kW인 신고리 3,4호기가 발전하지 못할 경우 전력구입비 상승분은 하루 126억 원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35일씩 2회 계획예방정비를 받는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년간 준공 지연이 될 경우 피해액은 126억 원 × 295일 = 3조7170억 원으로 계산된다.
불량 케이블로 불안해지는 원전의 안전성
만에 하나, 불량 케이블로 인해 원전 사고가 일어날 경우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사고 처리 비용만 보더라도 가히 천문학적이다.(14)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사고 처리 비용으로 최소 81조 원이 예상되지만, 사고 처리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그 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상하기 힘들다. 사고 처리가 종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 체르노빌 원전의 사고 처리 비용은 무려 265조 원에 달한다. 이들과는 달리 원자로에는 문제가 없었던 스리마일 원전 사고 처리 비용은 2조 원이었다. 환경 처리 기준이 보다 강화됨에 따라 원전 사고 처리 비용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원전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가 생긴다면, 이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이다.
한수원 – 고비용, 비효율의 비리 백화점
불량 케이블 원전 비리와 다른 여러 비리는 한수원이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수원의 문제는 단지 불량 케이블이라는 1회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히 비리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비리 사건이 빈번했으며 이는 한수원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수원은 2001년 한국 공기업 중에서 가장 큰 기업의 하나인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을 6개 자회사로 분리할 때 생긴 가장 큰 자회사로, 수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담당하고 있다. 한수원이 분리 창립된 2001년 이후 2013년 9월까지 한수원의 징계대상자는 387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15) 이는 2013년 3분기 기준, 한수원의 정규직 임직원 9517명의 41%에 해당한다. 주요 비리 유형에는, 자재납품 및 공사수주 편의 제공, 직원의 업체 운영 및 상사/동료의 묵인, 특정업체 입찰포기 종용, 특정업체 밀어주기, 금품수수, 원전 자재 빼돌리기, 품질보증서, 시험성적서 위조 등 그야말로 한수원이 할 수 있는 비리 행위는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절반이 넘는 인원에 대한 주의 처분과 단 1명뿐인 파면은 한수원의 징계가 솜방망이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1년 이후 구속·불구속·약식 기소된 한수원 현직(수사당시) 직원 총 58명 중 금품수수로 징계를 받은 인원 중 42명이 2012년, 2013년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한수원 창립 이후 원전비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내부감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2011년 9월 15일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경질을 불러온 대정전 사태가 일어났으며, 이후 한수원 등 전력 관련 사업체에 대한 대규모 감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2012년 이후 징계가 대폭 늘어난 것은 그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원전 수선 유지비와 잦은 고장으로 인한 불시정지는 원전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3년간 원전 수선유지비 1조9288억 원을 집행하였다.(16) 이는 원전 2기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에 육박한다. 국내 가동 23기 원전 중에서 20년 이상 가동한 노후 원전 9기 대부분이 높은 수선 유지비가 필요한 상황이며, 가동 10년이 넘은 원전이 9기임을 고려하면 원전 전체의 수선 유지비는 지속해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높은 수선 유지비는 원전의 고장, 나아가 원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한다.
예상되는 UAE 원전 수주의 손해
한수원과 같은 공기업은 실익 없는, 정부의 전시 행정에 휘둘리기 쉬운 결점이 있으며, 이를 보여주는 예는 상당한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UAE 원전 수주 사업이다.
2009년 12월 27일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UAE)의 400억 달러 규모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폐기물처리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하였다.(17) 전체 수주 규모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과 발전소 운영과 연료 공급, 폐기물 처리 등 추가로 200억 달러 규모의 사업도 수주함으로써 총 수주 금액은 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해외에 원전 플랜트를 수출하는 첫 기록에 해당한다. 한수원은 이 컨소시엄에서 건설 종합관리 및 시운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주가 밑지는 덤핑이라는 주장이 수주 성공 보도 후 바로 제기되었으며,(18) 그 후에도 수주 욕심에 덤핑으로 낙찰 받았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GE 컨소시엄은 한국보다 82%나 높은 가격이었다고 한다.(19) 이 차이를 금액으로 따지면, 328억 달러로 33조 원이 넘는다.
원전 부실 경영,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불량 케이블의 직접 교체 비용으로 예상되는 금액은 어림잡아 3000억 원 이상이며, 가동 가능한 원전의 발전 중지로 인한 손실은 1조5706억 원에 달한다. 또한 건설 중인 원전 완공이 늦어짐에 따른 손실이 3조7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계산 가능한 어마어마한 손실 이외에도, 불량 케이블로 인한 국제 신인도 추락,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은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다. 원전은 국민 경제에 필수불가결한 공공재인 에너지를 생산하며, 그 안전과 관련하여 달리 강조할 말이 없다. 따라서 한수원의 경영에 국가적 관심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공기업 경영 혁신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외치는 구호이지만, 그 성과는 그리 뚜렷하지 않다. 민영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대책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가장 실효성 큰 대책은 내부 승진을 통한 책임 경영과 시민 단체 등 내‧외부 감시를 제도화하는 일일 것이다. 덤핑 수주 같은 전시효과를 위한 경영이 아닌, 5년짜리 정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낙하산 인사들의 무능력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자유로운 경영이 가능한 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원전의 부실 경영과 비리는 일차적으로 비용의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더 중요한 것은 원전의 안전은 국민의 생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아무리 되새기며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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