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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지방대학 죽이기', 그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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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지방대학 죽이기', 그 대안은?

[좋은나라 이슈페이퍼]<38> 구조조정과 대학평가에 내재한 더 큰 문제들

1. 논과 대학의 경제학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은 논에서 생산된다. 중국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어 쌀이 자유롭게 수입된다면, 가격경쟁력이 약한 우리의 쌀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논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논이 필요 없게 되면, 그저 부동산 가격이나 조금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논의 기능을 한번 생각해보자. 논은 생태계를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논에는 동식물 곤충 등 갖가지 생물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장마철 전국의 논은 춘천댐 수량의 약 18.5배에 달하는 빗물을 가둠으로써 홍수발생을 막아준다. 고맙게도 논은 이 물을 조금씩 증발시켜 달궈진 대기 온도를 낮춘다. 논은 지하에서도 활약하는데, 매년 54억5000톤의 물을 지하수로 저장하고 있다. 이는 1년간 전 국민이 사용하는 물의 약 80%에 해당한다. 논에서 자라는 벼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연간 1028만 톤(1ha당 연간 9톤가량)의 산소를 발산하여 대기를 맑고 신선하게 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논의 공익적 기능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된다면, 쌀과 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말하려고 하는 지방대학도 논과 같은 공익적 기능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수언론이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상당수 대학인조차 대학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으니 일부 좋은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문 닫게 해야 사회적 낭비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학생들이 많이 등록하는 대학, 취업을 잘 시키는 대학,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오로지 교육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아래에서는 대학구조조정과 평가정책을 통해 현실적 손해를 입고 있는 지방대학의 기능과 역할을 살펴보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대학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바로잡힐 것을 기대해 본다.

2. 논보다 대학

우리나라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세계 6~7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높으며, 인구대비 대학생 수 또한 많다. 그래서 대학이 너무 많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1) 교육부를 비롯하여 대학 구조조정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학을 취업훈련기관으로 여기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취업률이 낮은 대학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대학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학은 단순 교육기관 이상의 다양한 기능과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하나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떤 지방도시에 우리나라 평균수준의 4년제 대학이 하나 있다. 그 학교는 1년에 155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대학원이 있어 학생 수가 모두 8000명쯤 된다. 교수 200여 명과 직원 150명, 그리고 조교 100명 정도가 이 대학에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지역출신 학생들은 서울에서 하숙비 등을 부담하지 않고도 대학에 다닐 수 있다. 이 대학 때문에 큰 경제적 부담 없이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대학 기숙사에는 타지출신 학생 2000여명이 입주해 있어서 매일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학생이 학교 근처 하숙집과 자취방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생은 시내에서 책이나 옷을 구매하고 식사도 하며 개강파티나 학과축제도 열고 있는데 그 소비규모가 제법 크다. 지역에는 대학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학이 되어 학생들이 떠나버리면 상가 매출이 급감하고 택시손님까지 매우 줄어들지만, 개학이 되면 지역 경제는 다시 활기를 띤다.

지역주민은 이 대학 평생학습원에서 인문학 강좌나 생활에 필요한 강의를 들으면서 원하는 지식을 얻고 있고 취미생활도 즐긴다. 매일 아침 인근주민이 이 대학 운동장에서 조기축구 등의 활동을 한다. 이 대학 교수들은 시정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고,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는 등 지역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멋있는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니까, 보기에도 좋고 최신 유행도 알 수 있다.

이 대학에는 2학년을 마치고 수도권대학으로 편입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지방대를 나왔다고 하면 취직할 때 불리하다고 해서 편입을 간다고 한다. 그 결과 이 대학의 학생 충원율은 수도권대학보다 좀 낮다. 남은 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업률은 수도권대학보다 낮다. 물론, 이 대학 학생들이나 교수들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런데 대학평가가 시작되더니, 이 대학이 문을 닫게 생겼다. 교수·직원들이 그렇게 뛰어다녔는데도 취업률이 낮아서 등급이 낮게 나왔다고 했다.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3. 지방대학이 문을 닫으면?

첫째, 지역경제가 초토화될 것이다. 모집정원 1550명이면 1년 예산이 800억 이상 되는 대학인데, 예산 대부분이 지역에서 지출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해 왔다. 학생 한 명이 매달 30만 원씩 용돈을 써왔다고 계산하면 매년 약 300억 원에 육박하던 학생들의 지출도 동시에 사라진다. 대학인근 상가는 문을 닫을 것이며 하숙집과 자취방은 주인을 찾지 못해 텅 비게 될 것이다. 대학 기숙사가 문을 닫으면, 지역농산물의 대량소비처가 사라져 농민의 시름이 커질 것이다. 수도권 등 타지로 자녀를 유학 보내야 하는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도 증가하게 된다. 지역의 대중교통기관도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여러 가지 효과를 고려할 때, 대학 하나는 초대형기업의 파산과 같은 경제적 타격을 지역에 주게 될 것이다.

둘째, 지역문화가 쇠락할 것이다. 대학을 통해 전파되던 새로운 풍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대학에서 하던 각종 공연과 전시회, 저명인사의 강연도 들을 수 없게 된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이 제공하던 강의들도 사라진다. 창업을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대도시로 가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이 위축되고 지역민의 정치의식도 낮아질 것이다. 젊은이가 떠난 도시에서는 더 이상 활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진취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생활문화도 사라져 정적이 감도는 도시가 될 것이다. 떠들썩하던 지역 거리가 조용해질 것이지만, 어둡고 적막한 밤거리가 조성되고 주민의 생활공간이 매우 축소할 것이다.

셋째, 지방이 창의력 없는 도시로 전락할 것이다. 대학졸업자 가운데 상당수는 졸업 후에도 지역에 남게 되는데, 이것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대학과 대학졸업자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경기침체 국면에서 보스턴시는 지역에 소재한 대학들의 창의적 역할에 힘입어 경제를 회복했지만, 자동차산업 중심의 디트로이트는 불황 늪에서 빠져나올 활력이 없어 침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실례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체들은 원활한 노동력공급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이 소재한 지역에서 조업하기를 원한다. 대학이 사라지면 기업도 빠져나갈 것이다. 이제 누가 지역 발전을 견인해 나갈 것인가?
넷째 수도권 집중이 심화할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지방은 인구가 감소하고 수도권은 인구가 더욱 증가하여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화할 것이다. 지방은 주거시설이 남아 주택가격이 하락하겠지만, 서울 등 수도권의 주거부족 현상도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방에서는 심각한 인구유출 현상이 발생할 것이며,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도 더욱 커지게 되어 국토의 불균형 발전이 심화할 것이다.

4. 구조조정과 대학평가에 내재한 더 큰 문제들

첫째, 대학의 등급화는 서열화보다 더 큰 질곡이 될 것이다. 교육부는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을 통해 “(대학서열 타파) 지방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와 특성화 분야에 대한 인지도 제고를 통해 대학 서열이 아닌, 학과 경쟁력이 대학 진학선택의 기준이 되도록 유도한다.”2)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대학평가는 대학서열화보다 더 무서운 대학등급화 시도다. 서열이 낮은 대학은 생존할 길이 있어도, 등급이 낮은 대학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어려움에 부닥친 지방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을 한다고 발표해 놓고선, 수도권대학을 위해서도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필자는 모든 대학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을 함께 지원하면서, 지방대학 경쟁력이 강화되어 수도권대학에 뒤떨어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는 발표는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단언컨대,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으론 지방대학을 살릴 수 없다.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은 126개 지방대학에 연 191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방대학 60~70개가 혜택을 받을 경우, 대학당 평균 지원액은 30억 원 정도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수준의 지원으로 “동 사업이 끝나는 5년 뒤 지방대학은 교육경쟁력과 인지도에서 수도권대학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출 것이며”, “지방 학생뿐 아니라 수도권 학생도 대학의 서열이 아닌 자신의 꿈과 끼를 실현하기 위해 지방으로 유입되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3)고 예상하고 있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문제의식이다.

둘째, 대학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대학의 학문연구와 교육은 문학·역사학·철학 등 인간정신을 직접 탐구하는 분야가 핵심이 된다. 그런데 이 인문학분야가 취업률이 낮다고 통폐합하는 등 대학교육과 학문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학에서조차 순수학문 분야가 퇴출하는 등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개별대학의 근시안적인 경쟁력 강화가 오히려 한국 고등교육 전체의 중장기적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가지원 유형(유형Ⅱ)에서 “창조경제의 근간이 되는 인문적 소양과 문화 융성을 위해 인문, 사회, 자연, 예체능 계열 및 국제화 분야를 별도로 지원”4)한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방대학의 인문학 분야는 극소수 국립대학을 제외하고 이미 모두 사라진 상태이며, 수도권대학들과 국립대학들도 인문학 분야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인문학 우대방안으로는 이미 효과를 거둘 수 없고 보다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셋째, 소통 없는 일방적인 추진이 대학을 멍들게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면서, 중요한 내용은 모두 정부가 제시하고 있다. “특성화를 위한 철학, 목표, 방향 등은 정부가 제시하고(Top Down), 특성화 분야 및 추진계획은 대학이 스스로 정하여 추진하는(Bottom Up) 방식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5)한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대학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마저 의심이 든다.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직선제를 평가대상으로 삼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크게 침해하는 내용이다. 국립대 구성원들이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구성원들이 결정할 일이며 외부에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사립대학 평의원회 구성여부는 법률(사립학교법) 준수여부의 문제로서 처벌조치가 필요한 것인데 점수를 삭감할 문제가 아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학 내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당사자인 학과(전공) 학생과 교수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방식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경우, 중장기적인 계획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고 보는 식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하는 것과 같은 비민주적 억압행위가 대학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다.

넷째, 대학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평가와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은 지방대학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는 양대 사업들이다. 개별 지방대학은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면서 동시에 평가에서 보통이상에 속해야 한다. 만일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에 일부 선정된 대학이라 하더라도 대학평가에서 매우 미흡이나 미흡 판정을 받을 경우, 그 대학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평가’와 ‘사업’의 구성 지표가 동일하지 않아, 대학으로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취업률이 여전히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지방대학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써 지방대학은 생존이 더욱 힘겨워졌음을 의미한다. 지난 10년간 광역시도별 대학정원 추이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수도권 대학은 정원감소율이 미미했지만 주로 도와 광역시에서 정원감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방대학 정원만 줄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된 결과여서 ‘지방대학 죽이기’ 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6)

다섯째, 대학 운영비가 매우 증가하고 있다. 대학은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고 명성을 얻으려 경쟁하기 때문에 교수-학생비율, 전임교원확보율, 교원 연구실적 등의 지표를 개선하고 기타 교육·연구시설들을 확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한 비용증가가 수업료 인상을 초래하게 된다고 한다.7) 대학의 자발적인 노력에도 이렇게 비용부담이 큰데, 대학구조조정정책의 시행으로 지표개선 노력을 하게 되면 비용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등록금인상은 다시 지표의 값을 낮출 것이기 때문에, 사립대학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5. 구조조정으로 인한 피해규모의 예상

새누리당 김희정 제6정책조정위원장은 "대학 학령인구 감소로 고등 교육기관이 과다해진 문제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대학구조 개혁이 꼭 필요한 조치라는 데에 당정이 뜻을 같이했다"고 하면서, 구조조정의 규모가 “입학정원 16만 명 감축, 약 110개 대학이 될 것”으로 발언하고 있다.8) 그렇다면 어느 대학이 폐쇄의 운명으로 몰릴 110개 대학에 포함될 것인가? 현재의 평가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지방대학과 인문학・예술체육 분야가 주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지방대에 불리한 지표들, 특히 취업률이 핵심 평가지표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들이 소재한 지역과 지역민 역시 이 정책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지방대학에 대한 배려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9)

ⓒ박정원

교육부는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학을 5개 등급으로 나누어 구조조정을 시행하고자 한다. ‘매우미흡’ 대학은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고, ‘미흡’ 대학은 상당한 정원감축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수·보통 그룹에 포함된 대학에도 일부 또는 평균 수준의 정원 감축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교육부의 애초 계획은 단계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결과가 발표되고 여기에서 '미흡'내지 '매우미흡'에 포함된 대학은 단계적으로 몰락하지 않고 한 번에 몰락하게 될 가능성 크다. 교육부 구상은 연초에 발표한 구조조정계획과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 및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 계획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바,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126개 지방대학의 절반가량이 줄어들어 입학정원 12만 명(재학생 총수 48만 명)이 감축될 것이다. 나머지 입학정원 4만 명(재학생 총수 16만 명)은 69개 수도권대학 가운데 일부의 감축으로 이를 달성하는 계획이라 할 수 있다. 수도권대학에 정원 외로 입학한 학생 수가 현재 8만 명을 웃돌고 있으므로, 언젠가 이를 반납한 것을 정원감축 조치로 받아들여 줄 경우 수도권대학의 실제 감축규모는 입학정원 2만 명(재학생 총수 8만 명)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구조조정 피해는 고스란히 지방대학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지방대학은 입학정원 조정용 저수지 이상의 가치가 없는가?
6. 합리적인 대학구조조정방안

대학구조조정은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한 후 발생가능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을 자세히 세우고 난 이후에 시행해야 참담한 결과를 피할 수 있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전국 모든 대학이 고통분담의 원칙에 따라 조금씩 입학정원을 감축하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현재 교수·직원 수를 유지한 채, 입학정원을 20%씩 감축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된다면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크게 낮아져 우리나라 모든 대학의 고등교육 여건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이를 한 번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2~3%씩 10년에 걸쳐 입학정원을 줄이면 무리 없이 연착륙이 가능하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 심각한 문제점도 발생하지 않고, 지역경제가 타격을 받지도 않는다.

정부는 최우수대학(말 그대로 최우수대학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에 대해서 자율적 정원감축을 유도한다고 하나, 등록금수입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학들은 정원감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10) 모든 대학이 공정하게 고통을 분담하도록 법률을 만들고 이에 따른 일괄 정원조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에 그와 같은 내용을 삽입하면 된다. 여기에 지역별로 대학입학정원을 배정할 수도 있다.11) 여야 합의로 가칭 ‘사립대학구조개선 촉진법’에 추가하면 된다. 수도권 사립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경우, 그 보상의 일환으로써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특별지원을 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공존을 위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구조조정방안이다.

7. 자치단체가 대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일부 대학의 구조개선을 통해 국민에게 양질의 교육을 공급하는 일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와 문제의식이 구조조정정책에 바르게 반영된 것 같지 않다. 대학을 지원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솎아내기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대학 살리기가 아니라 대학 죽이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이 고등교육을 공공재 또는 준공공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본질에서 다른 접근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부실대학을 무조건 정리할 것이 아니라, 부실대학의 공영화를 통해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평가지표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대학을 무차별적으로 폐교할 수는 없지만, 사학을 일방적으로 국공립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사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는 그 방법으로 공영대학(=정부책임사립대학: Government Dependant Private University)의 형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12) 정부책임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의회에서 결정되며, 교수연구비 등 대학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 주는 시스템으로서 일종의 준국립대라고 할 수 있다. <표 2>에 주요국의 정부책임사립대학 비중이 명시돼 있다. 만일 현재의 대학운영자가 보상을 원한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준 후 운영권을 완전히 인수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지역에 소재하는 전문대학들을 미국의 Community College처럼 다기능을 가진 공립대학으로 전환하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Community College는 지역민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종류의 교육훈련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수한 제도로 보인다. 현재, 한국 고등교육에서 국공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학 수에서 15%, 학생 수에서 1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공립대학이 학생의 50%를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책임사립대학으로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립에서 공립으로의 전환에는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등록금 격차는 약 35-40% 정도로 광역지자체가 지원을 차츰 확대해 나가 현재의 국립대학 운영조건에 도달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립대학에 공적 자원을 지원하는 경우,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사학들은 이사의 수가 많아, 편법과 불법운영이 불가능하며 밀약이 어렵다.13) 대부분 사학이 본교와 타교의 교수, 직원대표와 학생대표, 지역의 고용주 대표,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공익적 이사구성이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신장하기 위해 바람직하다.

ⓒ박정원


1) 우리나라의 4년제대학 가운데는 학부 재학생이 15,000명을 넘는 곳이 많다. 참고로, 미국의 4년제대학들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재학생 수가 공립대학은 7,145명이며 사립대학은 1,149명으로 규모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작다. 2년제 공립대학인 Community College도 3,174명에 불과하다(2010년). 총인구를 대학의 수로 나눈 값이 미국은 68,835명, 일본은 103,949명, 한국은 130,671명으로서(2003-2004년), 인구대비 대학 수에서 미국과 일본이 한국보다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거대규모의 대학들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미일과 비교한 우리나라 대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 교육부(보도자료, 2014. 2. 6)
3) 교육부 보도자료(2014. 2. 6)
4) 교육부 보도자료 (2014. 1. 28)
5) 교육부 보도자료 (2014. 1. 28)
6) 유기홍의원실, 대학구조개혁(정원) 평가와 전망(2013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2013. 10
7) 이를 Revenue Theory of Cost 라고 하는데, 처음 주장한 아이오와대학 전 총장 Howard Bowen의 이름을 따서 Bowen’s Law라고 부른다.
8) 새누리당 김희정 제6정책조정위원장은 "대학 학령인구 감소로 고등 교육기관이 과다해진 문제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대학구조 개혁이 꼭 필요한 조치라는 데에 당정이 뜻을 같이 했다"면서 "23년 전에 비해 초과정원 규모가 16만 명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 110개 정도 규모에 달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14. 1. 13일 보도)
9) 새누리당 김희정 제6정책조정위원장은 "대학 학령인구 감소로 고등 교육기관이 과다해진 문제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자 대학구조 개혁이 꼭 필요한 조치라는 데에 당정이 뜻을 같이 했다"면서 "23년 전에 비해 초과정원 규모가 16만 명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 110개 정도 규모에 달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14. 1. 13일 보도)
10) 이들의 행동은 수도권대학 특성화사업 신청단계에서 이미 드러났다.
11) 대학입학예비고사 실시 초기(1970년대 초)에는 지역별 합격정원이 있었으며, 지원자는 총 두 개의 지역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12)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정부(자치단체 포함)가 대학예산의 50%이상을 지원해 주거나, 교직원의 임금을 부담해 주는 대학. 영국의 대학들이 이에 해당된다. 영국에서 순수사립은 Buckingham대학 하나에 불과하다.
13)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는 각각 32명씩이고, 코넬대학은 64명이다.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이사회에는 설립자 가족이 아예 포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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