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임금계층이 양산되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어떻게 정할지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해마다 노사 간 힘겨루기로 협상이 파국에 이르고 공익 위원 안으로 정해지는 파행이 반복되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관한 합리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통계적 기준과 인상률에 관한 대안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는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조정분’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공약했고, 근로감독 강화와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201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는 ‘합리적인 최저임금 인상률 가이드라인 마련, 중장기적인 적정 최저임금 수준 목표치 설정’을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는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2012년 5월 30일 문재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2017년 적용 최저임금이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50% 이상이 될 수 있도록 단계적 인상을 추진하고,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50%에 도달하기까지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합산의 3년 평균치를 하회할 수 없다’라 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①중장기적인 최저임금 수준 목표치는 평균임금의 50%로 하되 단계적 인상을 추진하고, ②평균임금의 50%를 달성할 때까지는 매년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조정분’을 하한선으로 하여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향에서 합의 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합의한다 해도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평가와 대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50%에 크게 못 미친다고 보는데 비해, 정부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50%에 근접한다고 주장한다. 임금불평등과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엄밀한 국제비교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여 어떤 통계를 어떤 기준에서 사용할 것인지 합의해야 한다.
임금불평등과 저임금계층 비중의 국제비교
OECD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임금불평등(D9/D1, 하위 10% 임금 대비 상위 10% 임금)은 4.85배로, OECD 33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다. OECD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멕시코까지 감안하면 한국이 네 번째로 높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멕시코(2008년 5.71배), 미국(5.03배), 이스라엘(4.91배) 세 나라다.
하지만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2011년 한국의 임금불평등은 5.98배고,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는 월 임금 기준으로 5.43배,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5.07배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멕시코가 한국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의 임금불평등은 OECD 국가 중 가장 심하다.
임금불평등이 심하면 그만큼 저임금계층(중위임금 2/3 미만)이 양산된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저임금계층은 25.1%로 25개 회원국 중 가장 많다. 한국 다음으로는 미국(25.1%), 이스라엘(22.1%), 아일랜드(21.1%), 폴란드(20.7%), 영국(20.6%) 순으로 저임금계층이 많다.
임금불평등과 저임금계층의 비중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최저임금이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임금불평등과 저임금계층이 적다. 즉 최저임금과 임금불평등 및 저임금계층 사이에 (-)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최저임금이 임금불평등과 저임금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책수단임을 말해준다(Metcalf 1999). 우리나라의 경우는 낮은 최저임금 비율이 높은 임금불평등과 저임금계층 비중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국제비교
OECD 국가 풀타임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000년 35.5%에서 2011년 37.8%로 높아졌다. 중위값 기준으로도 45.0%와 49.5%로 높아졌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저임금계층이 늘고 임금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ILO 2008).
한국도 2000년 22.0%에서 2011년 33.5%로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조사에 응한 25개 회원국 중 20위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보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낮은 나라는 일본(33.3%), 에스토니아(32.1%), 체코(28.7%), 미국(28.4%), 멕시코(18.4%) 다섯 나라다. 중위값 기준으로는 41.3%지만, 24개 회원국 중 20위로 순위에는 변함이 없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단순 비교하여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낮은 편에 속한다. 2012년 OECD 회원국의 최저임금 평균은 6.6달러로 한국(4.0달러)보다 2.6달러 높다. 한국은 26개 회원국 중 17위에 불과하다. 호주(16.0달러), 룩셈부르크(13.4달러), 프랑스(11.7달러), 벨기에(11.0달러), 아일랜드(10.9달러), 뉴질랜드(10.7달러), 네덜란드(10.5달러)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0달러가 넘는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포르투갈(3.5달러), 터키(2.7달러), 폴란드(2.6달러), 슬로바키아(2.4달러), 체코(2.4달러), 헝가리(2.3달러), 칠레(2.2달러), 에스토니아(2.1달러), 멕시코(0.6달러) 아홉 나라다. 구매력 평가지수를 사용해도 한국은 4.9달러로, OECD 평균(5.9달러)에 못 미친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에 스페인과 그리스 두 나라가 추가될 뿐이다.
어떤 자료를, 어떤 기준에서 사용할 것인가?
평균값? 중위값?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에서 평균임금은 평균값(mean)으로 계산할 수도 있고, 중위값(median)으로 계산할 수도 있다. 평균값으로 계산할 때는 ‘평균임금의 50%’를 목표로 정하면 되고, 중위값으로 계산할 때는 저임금 기준선인 ‘중위임금의 2/3(또는 60%)’를 목표로 정하면 된다.
하지만 ‘중위임금의 2/3’보다는 ‘평균임금의 50%’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① 임금수준 통계인 사업체노동력조사(구 매월노동통계조사)가 평균값만 조사 발표하고 있고, ② 한국에서 중위값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개념이며, ③ 저임금 노동자가 광범위할 때 ‘중위임금의 50%’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고스란히 반영하게 되어 ‘저임금 노동 일소’라는 최저임금 목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대상과 사용통계
지금까지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계산할 때는 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구 매월노동통계조사)에서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임금’ 자료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정부 일각에서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 임금’ 자료를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형식 논리상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 임금’과 비교하자는 주장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①5인 미만 사업체는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비공식 부문인데, 과연 5인 미만 사업체 임금통계를 신뢰할 수 있는가, ②저임금 부문인 5인 미만 사업체와 임시직, 일용직 임금은 포함하면서 고임금 부문인 공무원과 교원 임금은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③저임금 일소, 임금격차 해소, 분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최저임금 수준을 정함에 있어 굳이 ‘5인 미만 사업체, 임시 일용직 임금’을 포함해 비교하는 게 바람직한가1)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일본은 5인 이상 사업체 조사, 유럽연합 각국은 10인 이상 사업체 조사결과를 OECD에 제출하고 있다.
시간당 임금? 월환산임금?
최저임금위원회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결정할 뿐, 월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간당 최저임금에 209시간을 곱해 월 환산임금을 구한 뒤 참고지표로 활용할 뿐이다. 2013년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노동시간이 월 165.6시간인데도 209시간을 곱하는 것은, 한 달 177시간 근무에 유급주휴 4일 32시간을 더해 209시간 분의 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용직, 호출근로 등은 유급주휴수당 적용대상조차 아니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계산할 때는 시간당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을 사용해야 한다.
정액급여? 통상임금?
노동부의 각종 임금조사는 임금총액을 정액급여, 초과급여, 특별급여로 구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을 논의할 때 임금구성항목 중 정액급여를 사용한 것은, 정상근로시간 일해서 받는 통상임금 개념에 정액급여가 가장 가깝다는 판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2013년 말 대법원 판례에 따라 통상임금을 ‘정액급여+(고정적) 특별급여’로 정의하고, 정액급여 대신 통상임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종합
노동계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시간당 정액급여(또는 통상임금) 평균값을 사용하고, 정부 일각에서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서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의 월정액급여 평균값 또는 중위값을 선호한다.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 2013년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시간당 정액급여는 1만5567원이고 통상임금은 1만8807원이다. 2013년 최저임금 4860원은 정액급여의 31.2%, 통상임금의 25.8%다. 따라서 평균임금의 50% 목표를 달성하려면 상당 기간에 걸쳐 대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서 2013년 1인 이상 사업체 전체 근로자의 월정액급여 평균값은 217만 원이고 중위값은 174만 원이다. 2013년 월환산 최저임금 101만 5740원은 정액급여 평균값의 46.8%, 중위값의 58.5%다. 따라서 이미 평균임금의 50% 목표에 근접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현행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과도 배치된다.
최저임금 인상 하한선 =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α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은 연평균 7.4%다.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5.6%로 매년 1.8%p 덜 올랐다. 한국은행 국민소득 통계에서 계산한 피용자 1인당 보수 인상률은 4.5%로 매년 2.9%p 덜 올랐다. 이처럼 경제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은 분배구조의 악화로 이어져,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 91.5%에서 2013년 84.6%로 6.9%p 떨어졌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명박 정부 때는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은 연평균 6.5%인데,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3.2%로 매년 3.3%p 덜 올랐고, 피용자 1인당 보수 인상률은 3.4%로 3.1%p 덜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률마저 5.7%로 매년 0.8%p 덜 올랐다. 그 결과 조정 노동소득분배율은 2008년 90.1%에서 2013년 84.6%로 5.5%p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 때 악화된 분배구조를 개선하려면 앞으로 5년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은 매년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3.1~3.3%)’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이보다 높게 책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1) OECD는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을 계산할 때 파트타임을 제외하고 풀타임 노동자 임금을 비교한다. 이는 최저임금 수준을 정함에 있어 비정규직(파트타임) 임금을 포함시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과 임시, 일용직 노동자 임금을 포함시켜 최저임금 비율을 계산하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높아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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