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무인기(UAV=Unmaned Aerial Vehicle) ‘송골매’가 6일 또 추락했다. 지난해 4월 강원도 홍천군의 한 초등학교에 추락하는 사고가 난 것을 비롯해, 5월 1일엔 경기도 양주의 야산에 추락하는 등 UAV의 추락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추락 전문’ 송골매
이번에 추락한 송골매는, 이스라엘과 미국 합작품인 RQ-2를 기반으로 2000년 국산화한 기종으로 현재 육군 군단급에 배치돼 있다. 전장 5m, 폭 6.5m, 중량 300㎏, 항속 150㎞/h, 작전반경 100㎞에 체공시간은 4∼5시간이다. 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어 최고 20km까지 감지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전송할 수 있으며, 자동 귀환기능까지 장착돼 있다.
군은 송골매의 추락이 잦자 “(이 무인기가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신기종 개발에 들어갔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 군은 현재 송골매 외에 ‘서처(searcher)’, ‘스카이락(Skylark)-II’ 등의 정찰용 무인기도 운용 중이다.
이스라엘 국영방산업체 IAI가 개발한 서처는 작전반경 100㎞, 체공시간 14시간으로 2005년 5군단에 최초 배치됐으며 주로 중·동부전선의 포병부대 작전과 기갑부대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엘빗으로부터 구입한 스카이락-II는 전방 감시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9년 실전 배치됐다.
IAI가 제작한 ‘하피(harpy)’도 군이 운용 중인 무인기종의 하나. 하피는 무인항공기와 비슷하지만 주기능은 ‘자폭(自爆)’이다.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대(對)레이더 공격기다. 탄두까지 실을 수 있는 하피는 중량 150kg으로 해발 10만 피트(약 3km)까지 상승할 수 있다.
北 무인기 준동엔 속수무책
문제는 남한이 북한의 무인기 준동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지난 3~4월 북한 기지에서 발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3대의 잔해가 경기도 파주(3월 24일), 인천 백령도(3월 31일), 강원도 삼척(4월 6일)에서 잇따라 발견된 바 있다. 외형적으론 조악해 보이지만, 북한이 지속적으로 무인기를 만들어 남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키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그 중 ‘파주 무인기’의 경우 청와대 상공까지 저공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군의 안보 시스템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북의 무인기 준동과 남의 무인기 추락이 빈발하자, 군은 2018년까지 미 공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global hawk)를 4대 도입할 계획 아래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호크는 고도 20㎞ 상공에서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장비 등을 통해 지상 0.3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어 ‘첩보위성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 비행시간 역시 38∼42시간에 이르며 작전 반경은 3000㎞나 된다.
ADD, 고성능 무인기 개발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인기 기술개발 능력이 없는 걸까? 우리는 계속해서 미국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의 봉(鳳)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1970년대 말 상당 수준의 국산 무인기 개발 기술을 보유한 바 있다. ‘솔개(black kite)’가 그것. 1977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직후 박정희는 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에 무인기의 개발을 극비 지시한다. 공군은 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에 무인기 개발을 의뢰한다.
당시 무인기 개발 책임을 맡았던 홍재학 전 ADD연구부장(전 한국우주연구소장)의 증언.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7월부터 무인기 개발 프로젝트인 ‘솔개사업’이 시작됐다. 1단계 목표는 ‘기만형(deceptive style)’ 개발이었다.”
기만형이란 적의 레이더를 속여 마치 상대방 전투기가 침투하는 착각을 유도하는 무인기를 말한다. 기도비익(企圖秘匿)에 능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정찰과 폭격이 가능한 고급 무인기다. 그러려면 당시 우리의 주력 전투기였던 F-5(freedom fighter)와 같은 수준의 속도(마하 0.8), 고도 3만5000피트(1만m), 그리고 레이더에 찍히는 단면 역시 F-5에 근접한 것이어야 했다.
1981년 기만형 무인기 ‘솔개’ 탄생
이어지는 홍재학 박사의 증언.
“국내 국외로 나뉜 시스템 설계팀 중 국외팀은 영국 크랜필트 공대(CIT)에서 기술교육을 받았고, 기체는 국내팀이 설계․제작을, 소형 제트엔진은 영국 노얼패니터빈(NPT) 것을 썼다. 당초 미국 엔진을 쓰려 했으나 크루즈 미사일에 쓸 우려가 있다며 미국이 거절했기 때문에 택한 차선책이었다. 항공기 제작의 성패 여부를 가늠할 풍동실험 역시 CIT에서 실시했다.”
개발 착수 4년 후인 1981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솔개’의 시험비행은 성공적이었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공군 등 관계 당국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솔개사업은 그러나, 1982년 공군 측의 양도 거부로 폐기된다.
당시는 무인기 개발이 세계적 추세였고, 유인항공기 국산화의 전초 작업으로서도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군, 그것도 ‘솔개’ 실전배치를 고대해 왔던 공군의 납득할 수 없는 태도로 ADD는 이 사업을 접었다. 과연 그 실체적 진실은?
"집권 윤허 받으려 레이건에게 끼워 팔아"
1979년 12월 12일, 직속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구금하고 천인공노할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미국으로부터 집권을 ‘윤허(允許)’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나온 게 ‘핵무기 개발 중단, 장거리 미사일 개발 중단’ 카드였다고 한다.
거기에 솔개사업까지 끼워 팔아먹은 거다. ‘솔개 카드’의 디스카드(discard)와 함께 ADD 인력도 대거 내팽개쳐졌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당시 국방장관 주영복(공군참모총장 출신)을 시켜 미사일 개발을 총지휘한 심문택 ADD소장과 이경서 부소장, 강인구 박사 등 미사일 개발 핵심 30여 명을 쫓아냈다.
1982년 12월 말엔 대대적인 제2차 숙청이 있었다. 전두환의 육사 동기(11기)인 김성진이 ADD소장에 취임하면서 연구원 2400여 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800여 명을 감원한다. 그 중엔 홍재학 박사같은 무인기 개발 책임자도 포함됐다. 국가 안보의 핵심인력이 군 출신 독재자에 의해 졸지에 노숙인 신세로 전락한 아이러니!
‘솔개’ 개발 핵심 인력 대거 노숙인으로
다시 홍 박사의 말.
“당시 추세로 볼 때 무인비행기의 개발은 필연이었고, 우리로선 유인항공기 개발 기반을 구축하는 측면에서도 꼭 성공시키고 싶은 사업이었다.”
지금 각국은 최신형 스텔스 무인기 개발로 혈안이 되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홍 박사 증언의 행간을 읽어 보면, 그때 솔개사업을 계속 발전시켰을 경우 대한민국은 오늘 글로벌호크를 넘어 현재 세계 최강의 항공모함 이착륙스텔스 무인기 X-47B급 이상의 개발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국산 ‘T-시리즈’를 훨씬 웃도는 세계 최강의 전폭기 제작 능력까지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근데 세상사 참 묘하다.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버마 아웅산 사건으로 17명의 고귀한 부하를 하늘로 보낸 후 황망하게 돌아온 전두환은 해체했던 ADD를 부활시킨다. 그리고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율곡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무인기 개발 고급 두뇌들은 이미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난 후였다.
전두환의 헛발질로 무인기 솔개는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다행히 우리 군엔 아직 ‘솔개’가 있다. 공군의 아닌 해군에. 그 이름 ‘솔개-2급’(일명 솔개631급). LSF-2 공기부양형(hovercraft style) 고속상륙정이다. 해군에라도 솔개가 살아 있으니 덜 서운타.
북한 무인기 잃고, 남한 군기밀 잃고
삼척에서 3번 째 무인기 잔해가 발견된 이틀 뒤인 4월 8일, 군은 이례적으로 송골매·리모아이 등 우리 군이 보유한 무인기를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덧붙여 ”금강, RF-16(정찰기) 등이 우리 영공에서 정찰해 남포~함흥 선까지 영상 정보를 수집한다“는 군사기밀까지 마구 떠벌인다.
아울러 “10km 상공에서 100여km 떨어진 지상 목표물까지 식별할 수 있는 한국형 중고도 무인정찰기도 2017년쯤 시제기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호언한다. 북한은 유치한 무인기 3대 추락의 대가로 엄청난 남한 군사기밀을, 그것도 우리 군을 통해 얻는 막대한 성과를 올렸다.
무인기 개발 막아 생긴 손실도 토해라!
전두환, 자신의 영달을 위해 레이건 앞에 무릎 꿇은 거야 그렇다 치고, 우리의 주요 수출품이 될 뻔했던 무인기까지 진상하다니!
지나간 일이야 뭐 할 수 없다지만, 이 기회에 전두환이 내야 할 추징금을 더 올려야 한다. 바로 무인기 개발을 중지하고 ADD 고급인력을 대거 내쫓아 우리 방산 경쟁력을 떨어트린 기회손실비용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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