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과 통일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연초부터 '통일은 미래다'라고 선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화답했습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신(新) 햇볕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대북정책과 통일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것일까요?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하고 희망찬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햇볕정책을 동네북 취급하는 것도, 그렇다고 온실 속에 두는 것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 차례에 걸쳐 햇볕정책을 평가해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글을 싣고자 합니다. <편집자>
햇볕정책이 때아닌 논란이다. 발단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이미 현실이 돼 있다"며 "이제 새로운 사고와 대책, 국민 통합적 대북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에서 비롯됐다. "(햇볕정책 추진) 당시엔 북이 핵을 갖췄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았다.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구체적인 사안으로 "북한의 인권과 민생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민생법을 당 차원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날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장인 변재일 의원은 "햇볕정책은 대북 교류·협력·지원을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북은 핵을 개발했다"며 "상황이 바뀐 이상 대북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들은 민주당이 햇볕정책이라는 '성역'을 건들기 시작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이간계의 의도도 엿보인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는 섣부른 햇볕정책 수정론이 당의 정체성을 흔들고 보수 진영의 프레임에 말려들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김한길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 통합적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원칙을 고수하며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햇볕정책의 3대 원칙인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남북화해협력 추진은 유지하면서도 "시대 상황과 국민의식의 변화에 따라서 대북정책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조선일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조선일보>는 호재를 잡았다고 여겼는지 15일자 사설에서 "민주 '햇볕정책 검증'을 초당적(超黨的) 대북정책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기본적인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면서 햇볕정책을 비난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사설에선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은 1·2차 핵실험과 거듭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장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1차례(2006년 10월), 이명박 정부 때 2차례(2009년 5월과 2012년 2월) 있었다. 위성 발사를 포함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각각 1차례씩 있었고, 이명박 정부 때에는 2009년 4월, 2012년 4월과 12월 3차례가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한 "정치 선진국들은 정치·경제·사회 현안을 놓고 다투다가도 외교·안보 이슈에서는 국익을 위해 하나로 뭉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북한 문제가 여야, 좌우가 갈리는 이념과 갈등의 경계선"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된 책임이 전적으로 민주당과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현 야권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말한 정치 선진국들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은 국제뉴스만 제대로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가령 작년 11월 미국이 이란과 합의한 핵협정을 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은 사생결단식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조선일보>야말로 햇볕정책 기간 동안 '퍼주기'와 '색깔론'을 앞세워 대북정책에 관한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가장 어렵게 만든 당사자였다.
신문은 북한이 햇볕정책에 호응해 "개혁·개방에 관심을 보였던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검증이 필요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지상군의 핵심 지역인 개성을 남측 기업에 내준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개방이다. 도로와 철도를 연결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는 '북한 인민군이 경의선을 타고 쳐 내려올 것'이라는 식의 황당한 보도를 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최근에는 "북한과 철도·도로를 연결하는 것은 휴전선 때문에 섬처럼 갇혀 있던 우리나라에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품에 안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며 통일 대박론을 펴고 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에 담긴 장밋빛 미래의 상당 부분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되거나 논의되었던 사업들과 판박이이다. 조선일보가 그토록 비난했던 10.4 남북정상선언과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평가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에 바란다
사설은 "각 정파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각자의 비전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면서도 국익을 위해서는 손잡는 초당적 협력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며 "대북 정책이 이념과 정략에서 자유로워져야만 제대로 된 통일 논의도 가능하다"고 끝맺는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고, 그래서 <조선일보>에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나는 <조선일보>의 야심에 찬 기획인 '통일은 미래다' 시리즈의 배경과 의도에 대해 추측하고 싶지 않다. 추측은 대개 오해를 낳고 그래서 소통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을 보더라도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특히 '반통일 언론'이라는 오명을 받아왔던 언론이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통일은 미래다'가 햇볕정책의 콘텐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면서, <조선일보>가 햇볕정책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역설한 "이념과 정략"에 스스로 갇혀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에 당부하고 싶다. 부디 색안경을 벗고 햇볕정책을 평가해달라고. 햇볕정책을 헐뜯기만 하려는 '악화(惡貨)'가 '통일은 미래다'라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상황을 <조선일보>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조선일보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늘어날수록,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에 기초한 대북정책과 통일정책 수립도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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