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1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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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9>
봄은 낮은 데서 옵니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산발치에서 먼저 옵니다. 언덕 위에서보다 밭둑에서 먼저 옵니다. 개울가에서 먼저 오고 담밑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옵니다. 어린 풀들은 그런데서 먼저 푸른빛을 되찾습니다. 나무 둥치 아래 모인 풀들이 푸르게
도종환 시인
봄은 먼데서 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8>
봄은 먼데서 옵니다. 남쪽 먼 섬 비탈 밭이나 거기서 바다 쪽을 바라보며 섰던 매화나무 찬 가지에서부터 옵니다. 바람을 타고 옵니다. 바람을 데리고 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자기만 아는 거인」에 나오는 거인처럼 봄이 오는 정원에 높은 담을 쌓고 지내듯 문
욕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7>
모악산 금산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합니다. 종교가 다른 이들이나 외국인들도 금산사의 절 체험에 많이 참여합니다. 일주일간의 참선을 끝내고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템플스테이를 주관하시는 일감 스님에게 인사를 하며 "스님, 저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6>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습니까? 오늘 하루의 삶, 오늘 하루의 생활은 만족할 만했습니까? 무엇인가를 얻은 하루였는지요? 다른 날보다 훨씬 새로웠던 하루였는지요? 아니면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지루하고 답답했던 하루는 아니었습니까? 서류더미 사이에서 하루 종
새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5>
아름다운 새가 징그러운 벌레를 잡아먹는 걸 볼 때가 있습니다. 거친 털에다 금방이라도 독을 뿜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몸부림치는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그 새는 필사적인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꿈틀거리는 벌레와 새의 부리짓이 너무 처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
저녁의 황사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134>
이 모래먼지는 타클라마칸의 깊은 내지에서 흘러왔을 것이다 황사가 자욱하게 내린 골목을 걷다 느낀 사막의 질감 나는 가파른 사구를 오른 낙타의 고단한 입술과 구름의 부피를 재는 순례자의 눈빛을 생각한다 사막에서 바깥은 오로지 인간의 내면뿐이다 지평선이 하늘
악덕의 씨를 심는 교육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3>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을 갖지 않은 부모나 교사는 없을 겁니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이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은 교사가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전 세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2>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거대한 도시. 수많은 집단. 그 속에 홀로 서 있는 한 개인. 이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의 존재는 한없이 미약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군중들 사이에 서있는 자신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
흐린 하늘 흐린 세상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31>
낮에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는데 저녁에는 밤안개 때문에 시야가 더욱 흐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쟁점 대담을 듣던 택시기사가 얼마나 심한 욕을 해대는지 듣기에 민망하였습니다. 택시기사의 의견에 대체로
겨울 나무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목련나무의 봉오리가 붓끝처럼 휘어진 채 가지 끝에 얹혀 있습니다. 마당을 거닐다가 다가가서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보기엔 붓끝 같지만 실제론 딱딱하였습니다. 손가락 끝에 닿는 느낌이 나뭇가지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산수유나무 꽃눈도 만져보니 마찬가지로 딱딱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