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6일 14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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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5>
큰 집<1>
인격실현의 첫 문이 무참히 닫혀버렸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철제문처럼 그렇게 무참히 닫혀버리는 인생은 없는 법. 생명은 기계와는 전혀 다른 융통성이 있는 어떤 것이다. 여기서 닫히면 저기서는 꼭 조그맣게나마 열리는 법. 그 때문에 사람은 억압에 의해 기형으로 성장하
김지하 시인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4>
손
내 가까운 친구들은 다 잘 아는 일이지만 내겐 지금도 여러 가지 해괴한 버릇이 있다. 내 이마 왼쪽의 눈자위 바로 윗부분은 오른쪽보다 훨씬 꺼져있는데 그 움푹 꺼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누르는 버릇, 아주 진저리가 나도록, 머리가 띵해오도록 누르는 버릇. 또 있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3>
그림
그림, 나의 한(恨).끝끝내 이루지 못한 나의 꿈.평생을 떠나지 않는 좌절한 첫사랑의 깊이 파인 그늘 같은 것.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태생이 시인쪽보다는 그림쟁이다. 두꺼비 흉내를 내고 참새 흉내를 내고 고개숙인 해바라기 모양이며 할미며 온갖 산 것은 다 흉내내려 했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2>
대지<2>
난 원래 얼짜여서 그랬겠지.세 살이나 손아래였는데도 성미가 똑 송곳 같아서 사소한 일에도 바르르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르며 시퍼런 눈자위를 치곤두세우고 막 대들며 청자는 내게 무시로 성깔을 부리곤 했는데, 늘 저만 두둔하는 할머니를 믿고 그랬을까?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1>
대지<1>
내가 처음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간 것은 여섯 살 때 여름 해남 가는 밤배였다. 사리 때였는데 캄캄한 밤바다에 온통 가득가득 차 이리저리 뒹굴며 춤추며 요사스런 재롱을 떨며 난리법석을 치는 붉고 푸른 도깨비들이 참 장관이었다.도깨비란 게 본디 그렇지만 그리 온 바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
종교
외할머니를 따라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한없이 덜컹거리며 무안 어딘가 쬐끄만 절에를 간 적이 있다. 사방이 시뻘건 민둥산이었다. 시뻘건 흙 위에 막대기 꽂은 것처럼 검은 나무등걸이 숭숭 박혀 있었다. 뿌우연 하늘이 낮아직한 그날, 예불이 끝나고 외할머니가 다른 보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
산정국민학교 그 넓은 운동장에 가득히 떨어져 굴러다니던 흰 전단들이 내가 처음 본 정치의 얼굴이다. 덥수룩한 머리에 배짝 마르고 창백하고 키만 덜렁 큰 서른서너 살 쯤 돼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후줄그레한 낡은 두단추 양복을 걸치고 나와 유세하는 모습이 내가 본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
집
괴상한 일인데, 기억이나 환상이나 꿈 속에 빈 집이거나 빈 방이 자주 나타난다. 물론 그건 상징이겠지만 혹시 어릴 적에 본 집들과 관계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두 갈래로 작은 강물이 갈라지는 둔덕에 용마루가 뾰족하게 높이 솟은 남방계같은 이상한 빈 초가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
빛
반딧불을 아는가? 반딧불이 짙푸른 밤하늘에 환한 점점점 불점을 찍으며 그 꿈같은 빛의 포물선의 다리, 다리를 만들며 소리없이 천천히 나는 것을 보았는가? 늘 보아도 그것은 놀랍고 기이하다. 두 마리 세 마리 여러 마리가 이곳저곳에서 한밤의 검은 고요를 끊어지면서 이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6>
친구들
좋아하는 서양음악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포스터라고 대답하면 흔히들 웃는다. “의외로 감상적(感傷的)이네요!” 그러고 나선 미안한지 또 실실 웃는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 넋이 침침해질 땐 가끔 떠오르는 포스터의 노래 한 가지, 그리고 잇따라 떠오르는 영상들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