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5일 05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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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에 동상 손가락 넣은 '경성크리차' 731부대, 그 숫자에 '엄지 척' 아베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3] 생체 실험과 세균전쟁 ②
"몸 안으로 페스트균이 주입된 중국인은 고통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양팔로 허공을 쥐어 뜯으며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이 빈사(瀕死)의 절규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일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감옥 건물 바깥으로 끌어내 영하 20도 이하로 인공적으로 바람을 날려 맨손을 얼렸다. 그런 다음 작은 몽둥이로 동상에 걸린 손을 작은 널빤지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얼리고 소금물 먹여 죽이고, 쌍둥이 250명 생체실험한 '죽음의 의사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2]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①
"항일 독립군인가요?" 2009년 11월6일, 여의도 국회에 나온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731부대가 무엇인지요?’라고 한 야당 의원이 물었다. 그때 정총리가 되물어 본 말이 '731부대가 항일 독립군인가’였다. 경제학박사에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국무총리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정총리가 지닌 이른바 '역사인식의 수준’을 의심하게 만든 순
독일과 일본의 '폭격 홀로코스트', 그냥 일어난 일 아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1]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㉒ 드레스덴 공습 下3
스페인내전(1936-1939)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4월26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는 느닷없는 공습을 겪었다. 독일 '콘도르 군단'의 융커스 52형 폭격기들이 하인켈 전투기와 함께 몰려와 250kg의 폭탄을 떨어트렸다. 그 무렵 히틀러는 스페인 공화파(인민전선)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왕당파 프랑코 장군을 도와주려
폭격 말린 미군 장성 "우리가 야만인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0]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㉑ 드레스덴 공습 下2
미국의 논픽션 작가 에릭 라슨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부에 벌어졌던 독일의 런던 대공습에 초점을 맞춰 <훌륭한 사람들과 악랄한 사람들>(The Splendid and the Vile, 2020)이란 책을 냈다. 이 책 앞머리에서 라슨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이미 폭격이 전쟁의 중요 수단으로 사용됐음을 전하고 있다. 관련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한국
스탈린 의식해 60만 희생자 만든 해리스, 처칠에 토사구팽 당하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9]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⑳ 드레스덴 공습 下1
제2차 세계대전 후반부에 독일 도시들을 겨눈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이른바 '지역 폭격')은 전쟁범죄의 한 유형으로 비판을 받는다. '폭격기 해리스'(Bomber Harris) 또는 '도살자 해리스'(Butcher Harris)라 일컬어지던 아서 해리스(1892-1984) 영국 전략폭격기사령관의 주도 아래 영국은 야간 폭격을 맡았다. 영국 주둔 미 육군항공대
'도살자' 해리스는 폭격으로,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입으로 싸웠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8]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⑲ 드레스덴 공습 中
만에 하나, 외계인들이 지구 행성에서 지난 20세기와 21세기에 벌어진 전쟁을 지켜봤다면 어떤 생각들을 할까. 특히 민간인들을 겨눈 무차별 공습 행태를 두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스스로를 인간이라 부르는 저 생명체들은 줄곧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흉을 볼 것이 틀림없다. 1907년에 맺어진 헤이그협약 25조는 방어능력이 없는 도시, 마을, 건물
'독일의 피렌체' 드레스덴을 불지옥으로 바꾼 공습 테러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7]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⑱ 드레스덴 공습 上
연합군의 공습으로 독일의 많은 도시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1945년 초까지만 해도 드레스덴에 대한 공습은 없었다. 그렇기에 독일의 중상층 가운데 일부는 드레스덴을 안전지대로 여기고 그곳을 임시 거처 삼아 많이들 옮겨 갔었다. 또한 그곳에는 소련군의 진격을 피해 많은 난민들이 들어와 있었다. 문제는 누가 봐도 전쟁의 운동장이 기울어 독일의 패전이 멀지 않은 시
오바마도 히로히토도 사과는 없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6]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⑰ 원자폭탄 下4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벌인 침략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침략국인 일본의 사망자는 약 310만 명. 침략을 당한 중국은 적어도 1600만 명, 많게는 21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전선에서 또는 광산을 비롯한 노동현장에서 죽은 조선인 숫자는 적어도 20만 명을 넘는다(본 연재 12 참조). 그 하
"편지 쓴 것 평생 후회한다"는 아인슈타인, 지옥문이 열렸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5]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⑯ 원자폭탄 下3
지난 주 글에 독자 한 분이 메일을 주셨다. '미국이 핵폭탄을 떨어트리지 않았다면, 일본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고 버텼을 것'이란 요지였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두 방의 핵폭탄은 누가 뭐래도 일본의 항복을 이끈 요인이다. 지난 주 글의 요점은 원폭이 일본 항복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히로히토가 서둘러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더 큰 다른 요
일본을 패배시킨 건, 원자폭탄이 아닌 스탈린이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44]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⑮ 원자폭탄 下2
올해 8월, 78년 전 핵폭탄이 떨어졌던 바로 그 날에 맞춰 히로시마(8월6일)에 들렀다가 나가사키(8월9일)에 갔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폭심지역은 '평화공원'이란 이름으로 잘 가꿔져 있다. 여러 종류의 추모비와 기념관, 자료전시실 등이 방문객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보여준다. 해마다 피폭 당일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 모두 옥외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