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5일 1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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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나치에 성공 못한 독일, 그래도 일본과는 달랐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33]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④ 뉘른베르크 재판(下)
뉘른베르크재판을 독일 사람들은 어떤 눈길로 바라보았을까. 많은 사람들은 나치 정권이 저질렀던 전쟁범죄를 전쟁 중에는 잘 몰랐다. '홍보의 귀재'로 알려진 요제프 괴벨스(공식직함은 대중계몽선전국가부 장관)의 치밀한 선전과 언론 검열로 전쟁의 진실을 알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더구나 연합군의 마구잡이 공습으로 생명과 재산을 잃은 상황이었기에 점령군에 대한 반감이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독극물 자살 괴링 "히틀러 믿었을 뿐, 독일인은 죄 없다" 사실일까?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32]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③ 뉘른베르크 재판 (中)
우리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룬 뒤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다.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는 침략행위를 비난했을 뿐 '범죄'로까지 보진 않았다. 전쟁의 통상적인 양상의 하나로 봤다. 이는 강대국들의 법학자들이 (약소국을 늘 침범해왔던 역사를 지닌) 자국의 입장에서 '침략'의 불법성을 모른 체 하거나 묵인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포로를 학대하는 것이 지금은 전쟁범죄
평화 깨뜨린 죄? 감옥 가서 수모 당하느니 그냥 죽겠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31]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② 뉘른베르크 재판 (上)
전쟁 희생자 1500만 명(군인 800만, 민간인 700만)을 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은 그 전쟁을 '큰 전쟁'(Great War)로 불렀다.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젊은이가 뮌헨의 술집에서 생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아! 지난번 그 '큰 전쟁'에서 말이야, 내가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 '큰 전쟁'이 끝나고 21년 뒤
'승자의 재판'이라 분개? '100인 목베기'도 화해로 넘겨야 할까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30] 전범 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①
지난 주 글에서 '누가 용서를 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1995)를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전 훔볼트대교수, 법학)의 '용서'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았다. 본업이 법학자인 슐링크는 그의 책 <과거의 죄>(2007)에서 나치 정권의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다루었다. 슐링크가 강조한 것은 '피해자만이 용
강간 가해자가 갑자기 '위로금' 주며 '강간' 없던 걸로 해달라면?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9]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⑧
인류 역사에서 '명예로운 전쟁' 또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었을까. 대부분의 전쟁연구자들은 '조국방어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 말고는' 그런 전쟁은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런 전쟁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는 논쟁사항이다. 거꾸로, '부끄러운 전쟁' 또는 '더러운 전쟁'(dirty war)들이 자주 벌어졌다는 데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더러운 전쟁'의
'망언-사과' 줄타기한 극우파 아베, "평화헌법 바꿀 필요 없다고?"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8]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⑦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망언을 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자들은 선거 때 낙선은커녕 당선돼 으스대곤 한다. 망언이 오히려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는 것이 일본의 정치현실이다. 일찍이 동양통신 주일특파원을 지냈던 언론인 김용범의 글을 보자. [(망언이 그
김영삼이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겠다"고 나섰지만 헛일이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7]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⑥
지난 주 글에서 1953년 10월에 열렸던 한일회담의 일본측 수석대표 구보다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의 망언을 살펴봤었다. "철도를 놓고 논을 개간하는 등 일본의 한국 통치는 한국에게 이로웠다. 일본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궤변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로 4년 동안 한일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분석한 역사학자 다카사키 소지(
'한국인은 뱃속 벌레'라면서 "한국전쟁=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6]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⑤
뒤틀린 역사인식으로 말미암아 일본 정치인들은 잊을 만하면 망언들을 내뱉어 왔다. "일본의 전쟁은 침략이 아니며, 식민통치는 한국에게도 이로웠다"느니, "한일병합은 합의 아래 합법적으로 맺어진 것이다"느니, "좁은 의미에서의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따위다. 문제는 이런 망언들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고 파급력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인 500만 이주시키자? 하급무사 아들 망언이 일본 패망 불렀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5]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④
지난 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를 비판한 글을 보고 독자 두 분이 이메일로 질문을 보내주셨다. 요지는 '일본인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오해하고 잘못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 물음들이 나오는 배경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 나온 여러 후쿠자와 관련 책들이 후쿠자와
재일 한국청년들은 왜 6.25 반전 투쟁에 나섰나
[프레시안 books]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만에 하나 전쟁이 나길 기도하는 목사가 있다고 치면, 그는 군수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전쟁이 터지길 바라는 탐욕스런 투자가나 다름없는 ‘사이비 목사’일 것이다. 죽음의 무기를 팔아 배를 불리려는 전쟁상인들은 날마다 기도를 드린다. "신이시여, 오늘도 어디선가 전쟁이 터지게 하시고, 한번 터진 전쟁은 되도록 길게 이어지고, 지금 휴전협상이 벌어지는 곳에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