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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수사권은 인민의 주권이다

[박동천 칼럼] 대한민국 품질을 높이려면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재주는 없고 맡은 일은 많아 여러 달 동안 칼럼을 쓰지 못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겨서 한 마디 보태기로 했습니다.)

용산참사 항소심 재판장은 수사기록 일부를 검찰이 더 이상 은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검찰은 이에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는데, 이것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내 상식으로 당연한 일인데, 이명박 대통령 치하에서 마땅하지 않은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까닭에 특히 다행스럽다고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검찰이 기피 대상으로 지목했던 이광범 판사는 이미 법원의 인사 조치에 의해, 형사7부 재판장을 맡은 지 이례적으로 1년 만에 다른 자리로 전보되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말 한 마디 잘못 뱉었다가 검찰이나 경찰에게 "입건"되는 일들이 하도 많아서 나도 감히 이용훈 대법원장이 강기갑 의원과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벌어진 보수파의 대공세에 양보했다는 단정은 삼가고자 한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적어도 결과로만 볼 때, 법원은 이광범 판사를 전보시킴으로써 검찰을 앞장세운 보수파의 예봉을 피하는 동시에 재판부 기피신청은 기각함으로써 법의 체면도 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결과적인 타협이 계산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를 캐들어 가는 일은 사실 용기만으로도 될 일은 아니고, 법원 관료구조의 내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최근 법원의 판결에 대해 보수파가 저항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초점은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이 겹치면 안 되느냐는 문제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준규 검찰총장. ⓒ청와대

용산참사 항소심 재판부에 대한 검찰의 기피신청을 기각한 서울고법 형사3부는 동시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씨가 제기한 재정신청에 관한 기피신청도 함께 기각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사연들은 생략하고, 내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것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들어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이다.

"...형사 소송과 재정신청을 동일 재판부가 담당해도 법원이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지위를 동시에 지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용산사건' 재판부 기피신청 기각", 2010. 2. 4.)

내 생각에는 수사기능과 재판기능은 당연히 인민의 고유한 주권에 속한다. 그러므로 만약 국회가 인민주권의 일차적인 수임기관이라면 당연히 국회가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직위를 동시에 지녀야 한다. 단, 국회가 강도나 사기 사건을 번번이 재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상적인 재판기능을 담당할 사법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법원이 일상적인 사법기능을 인민의 재가를 받은 헌법과 인민을 대표하는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의해 위임받아 수행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위임받은 사건에 관한 수사권과 재판권이 법원에 동시에 속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사권이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진상을 밝혀내야 할 어떤 일이 있을 때,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문명사회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말한다. 그런데 이때 무엇이 "공익을 위해 진상을 밝혀내야 할" 일인지, "필요한 증거"는 무엇인지, "문명사회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는 또 무엇이며, "강제력"이란 또 무엇인지 등이 저절로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항목들은 모두 수사과정에서 판가름되어야 할 일 즉 "재판"의 대상이며, 이런 재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수사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마침 1984년에 있었던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에 관해 법원이 "타살"로 판정을 내리고, 또 국방부가 이에 불복해서 항소를 한다고 하니, 이 일을 잠깐 살펴보자. 자세한 사정은 생략하고, "재판과정에서 총기사고가 없었다는 당시 내무반원들의 증언과 아침까지 허 일병이 살아있는 것을 목격한 동료 병사들의 증언이 있음에도 법원이 타살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수긍할 수 없다"(연합뉴스, "국방부 '허원근 타살' 판결 불복... 항소" , 2010. 2. 4.)고 한 국방부의 불복 사유에만 집중해 보자.

이 사건은 이미 2002년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타살인데 군내부에서 은폐 조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바가 있다. 반면에 국방부 측은 1984년에도 그랬고, 의문사위원회의 보고 이후 재조사를 통해서도 "자살"이라는 결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타살과 은폐조작"이 있었다고 본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해 국방부가 항소한다고 할 때, 이 일의 진상이 어땠는지를 파고들어갈 수사기관은 어디일까? 국방부 소속 헌병대에 의뢰해서 헌병대가 내린 결론에 따라 판결만 내리면 "재판기관"으로서 법원의 임무가 끝난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이런 일에 관해 "재판" 비슷한 것이라도 하려면 당연히 진상에 관해 서로 다투는 쌍방이 나름대로 수집한 증거를 상식과 과학과 이치에 따라서 저울질하는 과정을 거쳐 가야만 한다.

그런데 1984년에는 쌍방이 나름대로 수집한 증거는 없었고 오로지 국방부 측의 증거만이 있었다. 허 일병의 유족이 "나름대로 수집한 증거와 나름대로 제기한 의문"을 이 나라 정부는 줄곧 일방적으로 체계적으로 무시만 하다가, 2002년에 의문사위원회가 비로소 국방부의 발표와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사건은 겉모습으로라도 공정한 재판이라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국방부가 항소를 해서 항소심이 열린다면, 항소심 재판부는 당연히 재판기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으로서도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현재까지 법정에 제출된 증거들 가운데서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배척할지, 어느 쪽으로든 판결을 내리기에 증거가 빠진 대목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채워 넣을 수 있을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이 판단은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인 만큼, 사건의 진상을 수사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단계가 된다.

용산참사 직후에 내게 수사권이 있었다면 사체를 서둘러 해부한 까닭이 모종의 증거인멸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확인하고자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사망자들의 사인부터 화재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추정이 아니라 공정한 법의학적인 수사에 따라 확립한 다음에 다른 조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확신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수사기관"이라는 허울 아래 검찰이 마치 수사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독점한 결과, 검찰뿐만 아니라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위상이 흔들리고, 이는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가 깡패조직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에 관한 광범위한 의문으로 연결되고 있다. "법 지키면 손해"라는 관념이 초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주입되고 있는 사회 현실을 최근 대통령과 주변 돌격대들이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대법원 핵심부의 계산된 타협책이었든 우연의 일치였든 상관없이 나는 이광범 판사에 대한 전보조치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김석기 씨의 재판부 기피신청을 기각하면서, 마치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지위를 법원이 동시에 지니면 안 된다는 전제를 인정한 점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움은 많다.

우선 최근 법원의 판결 몇 가지에 대해 야만적일 만큼 거칠게 반응하고 있는 여당과 극우 언론인들이 그런 행태가 얼마나 문명사회의 원리에 어긋나는지를 스스로 깨달아 삼간다면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내가 느끼는 모욕감이 많이 줄어들겠다. 다음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좁게는 판사 집단 넓게는 법률가 집단 전체에서, 수사권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재판권의 일부가 아니라면 법치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기본 원리를 실존적으로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들이 확실한 다수라면, 검찰이나 국방부가 개인의 인권을 무시로 짓밟는 데서 지나 법원의 고유한 재판권까지 수사권이라는 미명 아래 탈취해가려는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민의 주권이란 인민이 스스로 챙기지 못하면 절도범이나 강도범의 수중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시민 다수가 떨치고 일어나, 수사권이라는 것 가운데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대목은 모두가 판단의 문제, 즉 재판권임을 깊이 깨닫지 않는 한 저런 일은 언제 끝날지 기약을 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의 김정권 의원과 민주당의 박주선 의원이 검찰개혁을 촉구했다고 한다. 검찰에 가서 수사당해 본 경험이 있으니, 뭔가 부당함을 체감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주로 피의사실공표에 주목한 모양인데, 생각을 조금만 깊게 했더라면 공권력으로 행해지는 수사과정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법률과 상식에 의거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까지 시선이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수사가 "법률과 상식에 의거해서"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를 해당 수사기관이 판정하게 되면 바로 대한민국의 현재 체제가 나온다. 어떤 수사가 "법률과 상식에 의거한" 수사인지는 해당 수사기관 말고 다른 기관에서 판정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판정이야말로 전형적인 재판기능에 속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사과정의 맨 첫 단추에서부터 공론의 감독이 있어야 하고, 공론을 위임받은 제도적인 표현으로서 법원이 감독을 해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얘기 중에 어떤 것을 공표하면 "피의사실공표"가 되는 것인지를 지금처럼 공표한 다음에나 비로소 문제 삼을 수 있다면, 그런 법조문은 전형적으로 힘없는 놈 때려잡는 핑계로밖에는 쓸모가 전혀 없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고발을 해봤자 이미 공표로 인한 손해는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린다. 더구나 그조차도 수사권이 검찰에게 있으니, 허 일병의 "타살" 판결에 불복하는 국방부의 항소를 헌병대에게 맡겨서 수사하는 셈과 똑같은 일이 상습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도록 체제가 짜여져 있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 같은 조문이 명실상부하게 실효를 가지려면 적어도 법원이 어떤 사실을 공표해도 되는지를 사전에 검토해서 여과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김정권 의원과 박주선 의원은 검찰의 수사권이 철저하게 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통제를 받도록 관련법규들을 총체적으로 개정하는 작업에 나서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저 두 의원처럼 검찰에 가서 직접 억울한 경우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현재 대한민국의 품질을 높이는 데 대단히 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 일을 고치는 것이 그 중에서 아주 중요하고 무척 효과도 큰 사항임을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동시에 느끼기를 바란다.

수사권이란 근본적으로 인민주권에서 핵심에 들어가는 몇 가지 사항의 하나이며, 법원의 재판권이란 바로 그와 같은 인민의 주권을 대신해서 모든 일을 실체적 진실에 따라 판정하는 데에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의 제도개선이 인민의 분명한 선택에 따라 이뤄져야만 한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별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서 결단이 안 내려지는 분들은 영국이나 미국의 사법체계가 다 그렇고, 심지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대륙법 체계의 나라들도 이 정도는 기본임을 살펴서 확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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